[Dispatch=정태윤기자] "조심하지 않으면 현실의 틈에서 미지의 세계인 백룸으로 떨어지게 된다".
지난 2019년 5월 14일 미국 미스터리 게시판에 괴담이 올라왔다. 노란 벽면에 형광등 켜진 공간, 그리고 경고 문구 하나. 핵심은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
인터넷 괴담은 대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영화 '백룸'(감독 케인 파슨스)은 그 중 하나를 붙잡아 스크린 위로 끌어올렸다. '백룸'이라는 괴담을 단순한 설정이 아닌 하나의 상태로 확장해냈다.
이 낯섦은 곧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그 공간에 들어가게 되는가. 단순 괴담을 실존적 질문으로 풀어낸 방식에 전 세계가 반응했다.
개봉 6일 만에 글로벌 누적 1억 달러를 넘겼고, 배급사 A24 설립 이후 최대 오프닝 성적을 냈다. 국내에선 개봉 21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외화 호러로서는 7년 만의 기록이다.

그 중심에는 2005년생 감독 케인 파슨스가 있다. 그는 16살 때, 유튜브에 9분짜리 페이크 다큐 영상을 올렸다. 인터넷 괴담 백룸을 푸티지와 VHS 필터로 구현한 영상이었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정규 영화 교육 없이, 블렌더(3D 그래픽)와 애프터 이펙트를 독학으로 익히며 괴담을 입체화했다. 세계관 설정집만 70페이지.
그는 오랜 시간 블렌더로 이 공간을 직접 구축해왔다. 완성된 백룸은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그렇게 구축된 세계는 영화 속에서 한 인물의 이야기로 구체화된다.

백룸의 기이한 공간을 스크린에 옮겨 왔다. 클락(치웨텔 에지오포 분)과 메리(레나테 레인스베 분)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주인공 '클락'은 가구점 사장이다. 건축가를 꿈 꿨지만, 해적 코스튬을 입고 광고나 찍는 처지가 된 인물. 매장 지하실 틈새로 미끄러지며 백룸에 들어가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공간을 탐색하고, 가구점 직원들까지 대동해 본격적인 탐방에 나선다.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객을 백룸 안으로 밀어 넣는다.

특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인물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제3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눈과 거의 동일한 시선으로 공간을 마주하게 한다. 이는 체험형 공포에 가깝다.
출구 없는 구조, 반복되는 복도, 기이한 형태로 쌓여 있는 가구들. 미묘하게 어긋난 공간감은 인물을 넘어 관객의 감각까지 압박한다.
단순히 괴담을 스크린에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익숙한 장르 문법을 따르기보다, 그것을 비틀고 이어붙였다.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다시 크리처물. 과감히 장르를 전환하며 미끄러지듯 이야기를 전개했다.
클락은 초반, 일종의 생존자처럼 읽힌다. 그러나 영화는 그 기대를 비튼다. 그는 더 이상 선택하는 존재가 아닌, 백룸 속에 놓인 하나의 장기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다면?

"개를 모르는 사람에게 개를 그려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처럼 작동한다. 백룸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각자의 기억과 감각으로 어설프게 재현한다.
후반부에 이르러야, 이 공간의 정체가 선명해진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공간은 반복되며 익숙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다. 이곳은 하나의 심리 상태에 가깝다.
영화에서 클락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명확하다. "여기 그대로 있어도 된다.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속삭임.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상처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이다.

결국 백룸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클락이 안주를 선택하는 순간, 그 세계에 붙잡힌다. 백룸은 탈출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머물기를 택한 대가다.
이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아니다. 기억을 어설프게 복제한 채, 익숙함을 가장해 인물을 붙잡아 둔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크리쳐들 역시 외부의 존재가 아니다. 결국 지워지지 않은 감정과 회피된 기억,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파편이다.
치웨텔 에지오포와 레나테 레인스베의 활용법도 눈에 띈다. 에지오포는 '노예 12년'으로 영국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레인스베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제7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두 배우를 세계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신, 공간이 그들을 압박하게 했다. 레인스베는 "케인이 그 공포감을 본인 스스로 깊게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새, 창문 등 영화가 심어놓은 상징들은 흥미롭지만, 설명보다는 암시에 가깝다.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미완의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선명하다. '백룸'은 단순히 새로운 괴담을 영화화한 작품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 멈추고 싶은 마음,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
영화는 그 모든 것을 하나의 공간으로 압축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사고일까, 선택일까.
"05년생 감독의 영리한 괴담 활용법" (백룸 ★★★☆)

<사진출처=바이포엠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