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정태윤기자] "초반 40분을 저 혼자 끌고 가야 된단 말이죠.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는 영화 초반 40분을 사실상 황정민 혼자 이끈다. 조인성도, 외계인도 없이 관객의 궁금증을 끌고 가야 하는 건, 오롯이 황정민의 몫이었다.
"400미터 계주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 기분이었어요. 첫 스타트만 잘 끊어주면 성애(정호연 분)와 성기(조인성 분)가 등장하니까. 그 부담이 정말 컸죠."
'디스패치'가 프랑스 칸에서 황정민을 만났다.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관객에게 영화를 처음 선보인 소감과, 그의 노력을 들었다.

황정민과 나홍진 감독은 2번째 만남이다. 영화 '곡성' 이후 다시 손을 잡은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는 나홍진에 대해 "나보다 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보다 집요한 사람을 만나면 끌리게 돼요. 동종업계에서 집요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사실, 두 사람의 만남은 다른 작품이 될 뻔했다. 나홍진 감독이 먼저 스릴러물을 제안한 것. 그러나 아쉽게 영화화가 되지 않았고, 몇 년 뒤 대본을 받았다.
"대본을 읽기도 전에 재미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까 너무 놀랐죠. '나홍진이 SF를 한다고?' 정말 새로웠어요."

그는 "단순히 외계인을 잡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에게도 명분이 있어야 되는데, 그 서사를 잘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황정민이 맡은 '범석'은 호포 출장소장이다. 지원 인력도 없고, 통신도 끊긴 오지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 미친놈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초반 40분 오롯이 혼자서 프레임을 꽉 채워야 했다. 그는 "관객의 궁금증을 끌고 가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연기 톤을 찾는 게 되게 중요했다"고 털어놨다.
외계인이 등장하고나서도 문제였다. 상대가 없이 오직 상상력으로 연기해야 했다. 그는 "맹탕에 연기를 해야 하니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 채 달려야 했다"고 떠올렸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범석과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 분)가 좇고 쫓기다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에 나도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바미기르도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눈이 2개인 나라에서 눈이 하나인 나라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공포는 어떨까. 그런 상상들을 해봤어요."
황정민은 영화 초반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 변주를 주면서, 동시에 외계인이 등장하는 순간의 이질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관객이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물의 에너지로 먼저 길을 닦아놓은 것.

그 길의 끝에는 나홍진이 있었다. 그는 "감독님은 카메라 렌즈의 밀리 강도까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촬영감독이 물어볼 정도니까. 그리고 정말 집요하다"고 말했다.
"곡성 때. 별 것 아닌 것 같은 신 하나를 일주일 동안 찍었어요. 새벽에 해 뜨기 전 하늘, 그 색깔을 찍으려고요. 처음에는 짜증났는데, 화면을 보고 나니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찍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에게는 너무 근사한 사람이죠."
'호프'는 올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