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정태윤기자] "이런 기쁨을 얻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홍진은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추격자', '황해', '곡성' 3편 모두 개봉작을 들고 칸 영화제에 초청됐다.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홍진 감독은 "이렇게 떨리고 이렇게 기분이 좋고 영광스럽고 다 끝난 것 같다. 칸 영화제 경쟁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좋다"며 웃었다.
'디스패치'가 영화 '호프' 월드 프리미어 다음 날, 칸에서 나홍진 감독과 마주앉았다.

# "온 세상이 불길했다"
'호프'의 출발점은 불안이었다. 나홍진 감독은 "뉴스를 보면서 뭔가 불길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사는 이 행성에 불길한 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 같고, 그런 조짐들이 있었잖아요. 이 시나리오를 쓸 때도 딱 그랬거든요. 온 세상이 불길했고, 폭력이 무자비하게 세상을 덮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불길함이 영화가 됐다. 그는"'곡성'을 하면서 그 이유를 인간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는데 못 찾을 것 같더라. 그래서 신이나 초자연 같은 것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우주로 가게 됐다"고 털어놨다.
'추격자'에서 범인을 쫓고, '황해'에서 배후를 쫓고, '곡성'에서 외지인의 정체를 쫓았다. 나홍진은 늘 실체를 향해 달려왔다. 이번엔 그 실체를 우주로 옮겼다.
"모든 비극의 원인은 퍼스펙티브에 있다고 생각해요. 입장을 다 살펴보면 사실 아무 의도도 없었어요. 쌍방이 다 이해 되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개체들 간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인 거죠."

# "희망은 성사되는 순간 기능을 상실한다"
제목 '호프'는 영화 속 비무장지대 인근의 마을 '호포항'의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호프'(HOPE)와의 연결성을 생각하고 작명했다.
나홍진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작든 크든 작은 희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충돌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희망이 충돌한다는 말 자체가 재미있는 게, 희망은 성사되는 순간 희망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잖아요. 더 이상 희망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이 충돌은 결론이 날 수 없는 이야기예요."

# "뻔한 건 싫으니까"
나홍진은 실험을 좋아하는 감독이다. 늘 장르의 문법을 따라가는 척하다가 그 기대를 배반한다. 이번에도 관객이 미스터리에만 집중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에서 유머가 돋보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홍진은 "미스터리를 벗겨가는 구조라는 게 너무 착하고 쉬워보이지 않나. 그걸 자꾸 딴짓을 하면서 교란시키고 싶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물들이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잖아요. 관객들이 미스터리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이상한 데 데려다 놓는 거죠."
공간도 의도적으로 비워뒀다. 일례로, 도로에서 펼쳐지는 추격신. 일반적으로는 차들이 엉키고 부딪히며 화려한 볼거리를 만든다. 그러나 '호프'는 텅 빈 도로 위,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나홍진은 "'라인언 일병 구하기'도 텅 빈 공간에서 소수가 뛰어다니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지 않나. 우리 영화도 그런 느낌으로 실체를 찾아가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숲과 마을의 대비도 의도적이었다. 그는 "숲은 그들(외계인)의 공간, 읍내는 이쪽(인간)의 공간이다. 읍내에서 시작된 일은 결국 숲속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이야기의 끝은 그 숲에서 다시 마을로 향하게 했다"고 부연했다.

# "영화는, 아직 진화 중"
칸에서 상영된 버전은 4일 전 완성한 따끈따끈한 편집본이었다. 나홍진 감독도 칸에서 완성본을 처음 확인했다. 완성본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 중이다.
그는 "칸에서 상영하고 그날 밤에 CGI 회의를 다시했다. 각 파트 별로 더 세밀하게 손을 보고 있다. 편집도 손을 볼지 말지는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확신은 있었다. 나홍진은 "이 영화는 여전히 진화 중인 영화"라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양파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가는 구조로 기획했다"고 강조했다.
"그 미스터리가 계속 전진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 나갈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만의 신작, 처음으로 하는 프리미어, 그리고 아직 진화 중인 영화. 나홍진은 그렇게 칸의 밤을 보냈다.
'호프'의 칸 영화제 수상 결과는 24일 발표된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