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이런 영화는 많은 분이 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영)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미 있다. 정지영 감독 역시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 매료돼 2년간 시나리오를 고쳤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름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접근했다. 정지영 감독은 "제주 4.3사건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를 수도 있고, 아니면 굉장한 폭력일 수도 있다. 역사를 생각하면서 찾아갈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영화 '내 이름은' 측이 2일 오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정지영 감독,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 등이 자리했다. 김경식이 진행을 맡았다.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 한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번엔 영화 '내 이름은'으로 제주 4.3이라는 비극적 현대사를 이름이라는 소재로 풀어냈다. 대중 상업영화로는 최초로 4.3을 정면으로 다뤘다.
영화는 1998년, 촌스러운 이름이 최대 콤플렉스인 18세 아들 영옥(신우빈 분)과 반세기 넘게 잊고 지냈던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의 궤적을 교차한다.
1948년, 비극이 태동하던 봄부터 현재까지, 총 3개의 타임라인이 스크린 위에서 치밀하게 맞물린다.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공식 초청돼, 전 세게 관객들에게 먼저 공개됐다.
현지 평단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상기시키는 팽팽한 긴장감"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베를린 포럼 수석 프로그래머는 "세대를 아우르는 수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은 "4.3을 다루며 하면 남북전쟁, 이데올로기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데,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될까봐 피하려 했다"며 "그런데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니 달랐다"고 말했다.
영화는 학교폭력과 국가폭력을 교차시켜 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본다. 그는 "학교도 국가도 폭력의 구조는 다르지 않다"며 "학교폭력을 완충제로 삼아 4.3의 끔찍한 폭력을 단계적으로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폭력의 세습도 보여준다. 정지영 감독은 "뺨을 때리는 행위가 어린아이에게 또, 1998년 제주까지 대물림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염혜란이 정순 역을 맡았다. 그는 "커다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잊고 살아도 괜찮은 지금 우리와 닮은 인물이었다"면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입체적인 인물이라 매력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정순은 염혜란을 생각하며 쓴 인물이다. 정 감독은 "염혜란과 '소년들'에서 처음 만났다. 며칠 촬영을 안했는데, 연기에 반했다. 저런 연기자라면 더 큰 역할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전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할 때 염혜란 배우가 먼저 연락을 해왔어요. 그래서 주인공을 염혜란으로 놓고 시나리오를 고쳤습니다. 다만 젊은데 나이 많은 역할을 줘야해서 미안했죠. 그래도 주인공의 매력 때문에 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지영)
넷플릭스 '폭싹속았수다' 광례에 이어 다시 한번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게 됐다. 염혜란은 "광례와 정순 모두 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강인한 어머니라는 건 비슷했다"고 말했다.

정순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무지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의 자리에도 선다. 영화는 정순의 삶을 통해 광주 5.18, 베트남 전쟁도 스쳐 지나간다.
정지영 감독은 "정순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 폭력의 역사를 훑었다. 그게 살아온 우리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며 "배우에게는 의식될까지 말하진 않고 의미를 숨겨 두었다"고 전했다.
극 중 정순이 한시도 벗지 않는 선글라스는 핵심 메타포다. 학살의 현장에서 쏟아지던 햇빛에 대한 트라우마이자,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방어 기제를 상징한다.
염혜란은 "선글라스는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는 상징적 도구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그 고통의 장소에 갔을 때 마주하겠다. 직면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도구"라고 부연했다.

신인 신우빈이 아들 영옥으로 첫 스크린에 나섰다. 그는 "4.3 영화라는 말에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시나리오를 읽을 수록 4.3을 겪은 한 가정에 집중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정숙과 영옥 모자가 사는 집은 실제 4.3을 겪은 분의 곳이다. 그곳에서 촬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심스러워지더라. 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특정 투자자 없이 9,778명의 시민 크라우드펀딩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역대 영화 펀딩 최고 수준이다. 엔딩 크레딧에는 후원자들의 이름이 5분간 이어진다.
정지영 감독은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시민의 힘을 출발했다. 4.3의 비극은 소수만 슬퍼할 일이 아니다. 더 많은 국민이 보고 토론하고 공감해야 한다. 많은 분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내 이름은'은 오는 15일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