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오케이 컷 소리에 털고 일어나셔서 '다들 연기 좋았어'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영철)
배우 이순재(91)가 영면에 들었다. 故 이순재의 영결식과 발인이 27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엄수됐다. 후배 배우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최수종, 정준호, 정일우, 정준하, 이무생, 유인촌 전 장관, 박상원, 이원종, 김나운, 정태우, 방송인 장성규,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자리했다. 91송이의 헌화로 거장의 생을 기렸다.

사회는 배우 정보석이 맡았다. 고인의 약력을 보고했다. 그의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2024 KBS 연기대상' 대상 수상, 금관문화훈장 추서 등을 언급했다.
정보석은 "선생님은 배우뿐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활동하며 후배들을 위해 공헌했다"며 "늘 제일 앞에서 길을 만들어주셨다. 큰 족적을 남긴 유일무이한 국민 배우"라고 말했다.
추도사는 김영철과 하지원이 낭독했다. 하지원은 이순재 팬클럽 회장으로서 깊은 애정을 드러냇다. 그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재 선생님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드라마 '더킹 투 하츠'로 선생님을 뵀다. 조용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항상 봐주셨다. 연기에 대해 담담히 나눈 대화 속에는 연기 인생이 담겨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제가 흔들렸던 시기에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렵냐'고 여쭌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임마 지금 나도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수십 년 연기를 해도 아직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겸손함이 큰 위로이자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연기 앞에서 끝까지 겸손을 잃지 않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은 진정한 예술가셨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마음과 자세를 잃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 (하지원)

김영철이 추도사를 이었다. 그는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지울 수 있다면 그날 새벽을 지우고 싶다. 오늘 이 아침도 지우고 싶다. 거짓말이었으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며 울먹였다.
그는 "'오케이 컷' 소리에 털고 일어나셔서 '다들 연기 좋았어'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선생님은 저희에게 연기 전에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신 분이셨다"고 밝혔다.
이어 "누가 힘들어하면 말없이 다가와 등을 두드려 주셨다. 미묘하지만 그 온도가 많은 후배들의 인생을 바꿔놨다. 그간 수고 많으셨다.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하게 쉬시길.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도 상영했다. 생전 남긴 인터뷰들을 통해 고인의 70년 연기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이순재는 한 인터뷰에서 "현장에 한 시간씩 일찍 간다. 대본을 본다. 나를 보러 온 관객들을 위한 책임이지 않냐"며 성실히 임해온 그의 마음가짐을 전했다.
"태어나는 조건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 의미를 찾아 나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확신과 자신을 가지면 이루어질 겁니다" (이순재)
지난 2022년 88세 나이에 연극 연출에 도전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끝이다 하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도전한다. 연기가 아직도 재밌다. 그래서 아직도 하고 있지 않냐"며 미소 지었다.

이순재는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활동을 멈추기 전까지도 영화, 드라마,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에만 KBS-2TV '개소리', 영화 '대가족',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에서 활약했다.
예술계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 이순재는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연기예술학과 석좌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고인의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사진=디스패치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