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 | 도쿄(일본)=정태윤기자] "부끄럽지 않아도 돼. 꿈꿔도 돼'라고 건네는 위로 같았어요." (허윤진)
도쿄돔 공연이 확정되기 전이었다. "어쩌면 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도쿄돔은 잊고 있던 꿈이었다. 아니, 포기했었다. 다시 꿈을 바라봐도 될까. 그리고 19일, 그 꿈이 드디어 피어났다. 피어나(팬덤명)와 함께 꽃 피웠다.
"꿈을 꿔도 된다는 걸 다시 믿게 해준 피어나니까, 가장 멋진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허윤진)
르세라핌이 18~19일 일본 도쿄돔에서 '2025 이지 크레이지 핫' 앙코르 공연을 펼쳤다. 양일간 8만 명을 모았다. '디스패치'가 마지막 날의 새 챕터를 봤다.

◆ (Not) EASY
도쿄돔 입성까지 걸린 시간은 3년 6개월. 빠르기도, 더디기도 한 여정이었다. 멤버들은 지난 6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도쿄돔 입성 소식을 직접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피어나들도 고대한 꿈의 무대였다. 11월 쌀쌀한 날씨도 소용없었다. 도쿄돔 주변은 팬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굿즈샵 줄은 공연장 한바퀴를 감았고, 무대 의상을 따라입은 팬들, 챌린지 촬영하는 팬들까지. 열기와 설렘이 가득했다.
"저희는 대학교 친구입니다. 르세라핌을 계기로 더욱 친해졌어요. '스파게티'의 파격적인 콘셉트가 좋아서 챌린지를 찍고 있었어요. 도쿄돔에서 무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자랑스럽고 기분 좋습니다." (에레나·안지)
"저는 데뷔 때부터 르세라핌 팬이에요. 지난 6월 사이타마 공연에 마사키를 데리고 가서 입덕시켰죠. 무대에서의 프로페셔널함. 그리고 그 뒤의 끈끈한 멤버들의 관계성을 좋아합니다." (란·마사키)

◆ I'm burning HOT
"하나의 불이 태어났다"
앨범마다 수록되는 인트로곡처럼 이번 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멤버들의 내레이션으로 긴장감을 쌓으며 시작했다. 미니 5집 '핫' 수록곡 '애쉬'(Ash)로 이어갔다.
'핫'(HOT), '컴 오버'(Come over)까지. 미니 5집에 담긴 곡들을 이어갔다. 절제된 사운드 속에서 밀고 당기는 느낌을 뽐냈다. 팬들은 응원 구호를 외치며 무대를 함께 했다.
'핌봉'으로 도쿄돔을 가득 채웠다. 그 다음은 강렬한 무드로 달궜다. 먼저 사쿠라가 능숙한 일본어로 호응을 이끌었다. '이지'를 록 사운드로 편곡해 선보였다.
멤버들은 핸드 마이크를 들고 라이브 사운드를 극대화했다. '플래쉬 포 워드'(Flash forward)는 도쿄돔 공연에서 새롭게 추가된 곡이다.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노래했다.
르세라핌은 토롯코를 타고 피어나를 바라보며 '블루 프레임', '쏘 시니컬' 등을 열창했다. 바주카포를 이용해 사인볼을 날리며 멀리 있는 팬들에게도 마음을 전했다.

◆ Make it look EASY
"여러분 오늘 즐길 준비되셨나요? 어제도 정말 뜨거웠는데, 오늘은 마지막 날이잖아요. 더더더 즐겨요!" (사쿠라)
마지막날인 만큼, 후회 없이 즐기자고 약속했다. 피어나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장을 뚫을 듯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채원은 "여러분의 함성이 인이어를 뚫고 들어와서 불륨을 높였다"며 놀랐다.
이번 콘서트에선 팬송 '펄리즈'(Pearlies / My oyster is the world)를 새롭게 추가했다. 허윤진이 작사한 곡이다. 멤버들은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서서 가사에 집중해 진심을 다해 열창했다.
공연 전 만난 허윤진은 "고통 끝에 진주가 만들어지듯, 어떤 일이든 좋은 경험이 되고, 결국 나에게 좋은 진주가 될 거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 그 진주가 바로 피어나"라고 설명했다.
'스마트'(Smart)는 알앤비 소울 장르를 빠른 템포로 편곡해 신나는 분위기를 더했다.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됐다. '파이어 인 더 벨리'(Fire in the belly)는 트로피컬하게 변주했다.
다함께 뛰며 싱어롱 완성했다. 김채원은 시그니처인 "내 동료가 돼라"를 외치며 분위기를 더욱 단결시켰다.

◆ bon appétit
보는 맛, 듣는 맛, 즐기는 맛을 제대로 충족시켰다. 머릿속에 박히는 히트곡 무대를 이어갔다. 하이라이트는 '스파게티'였다. 팬들이 가장 보고 싶은 무대로 꼽기도 했다.
멤버들 역시 도쿄돔의 가장 '킥'한 무대로 '스파게티'를 선택했다. 도쿄돔 규모에 맞춰 메가 크루와 함께 압도적인 스케일의 무대를 준비했다. 댄스 브레이크를 더해 웅장함을 더했다.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크레이지'(CRAZY), '1-800-핫 앤 펀'(1-800-hot-n-fun) 등. 히트곡과 수록곡 할 것 없이 떼창이 쉬지 않고 터졌다.
데뷔곡 '피어리스', '언포기븐', '안티프레자일'로 이어지는 구간은 밴드 라이브 사운드가 돋보였다. 멤버들은 핸드 마이크를 들고도 고난도 안무를 소화했다.
멤버들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메들리에도 더욱 파워를 올렸다. 애드리브로 구호를 넣으며 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피어나도 지지 않았다. 한몸이 되어 뜨겁게 즐겼다.
핌봉을 이용한 파도타기도 만들었다. 도쿄돔 전체가 커다란 파도를 완성하며 잊지 못할 이벤트를 완성했다.

◆ "가장 멋진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앙코르 구간에선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멜로디 & 쿠로미' 주제가인 '카와이'(Kawaii) 무대도 만날 수 있었다. 마이 멜로디와 쿠로미가 공연장에 등장해 곡의 귀여운 매력을 배가시켰다.
공연의 마지막, 사쿠라는 11년 전 첫 도쿄돔 무대를 떠올렸다. "11년 전에는 이 무대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11년이 지나, 그때 선배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이돌로 14년간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도 있었어요. 내가 아이돌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4년간 포기하지 않고 해내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여러분의 아이돌을 하고 싶습니다."
윤진은 도쿄돔 공연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을 회상했다. "대기실에서 '도쿄돔에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정이 아닌데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이었다"고 털어놨다.
"여러분은 잊고 있던 것의 가치를 누군가 알아줄 때의 기분을 아시나요? 삶에 지쳐 잊고 있던 밝은 모습일 수도 있고, 부끄러워 꺼내지 못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도쿄돔 공연 소식이 '꿈 꿔도 돼'라고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르세라핌과 피어나는 도쿄돔에서 다음 꿈을 약속했다.
"속도는 달라도 같이 달려준 멤버들에게 고맙고, 같은 꿈을 꿔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 꿈을 꿔봐요. 이번에 새 챕터라고 느껴집니다. 절대 부끄럽지 않은 여러분의 아티스트가 되겠습니다. 꿈을 꿔도 된다는 걸 다시 믿게 해준 피어나니까, 가장 멋진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공연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피어나는 지칠 줄 몰랐다. 르세라핌도 마찬가지. 앵콜곡 '크레이지'를 클럽 버전으로 편곡했다. 토롯코를 타고 무한 반복으로 선보였다.
끝나지 않는 도쿄돔의 밤이었다.





<사진제공=쏘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