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저는 교과서적인 걸 지향합니다."
변성현 감독하면, '스타일리시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에게 연출 주안점을 물었다.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양을 지향이라고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변성현은 전형적인 감독이 아니다. 정박보단 리듬감이 살아있고, 화려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연출로 주목받았다. 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굿뉴스'도 그 연장선에 있다. 1970년, '요도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다소 익숙한 '하이재킹 영화'의 틀을 완전히 새로 썼다.
영화는 시작부터 과감했다. 익숙한 주인공 대신, 낯선 일본인 배우들이 처음을 이끈다. 여기에 '아무개'(설경구 분)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투입했다. 감독의 시선 같기도, 관객의 분신 같기도 한 묘한 이질감을 만든다.
늘 공식을 깨고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그러나 변성현 감독은 "교과서적인 기본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형식은 새롭게, 그러나 기초는 단단히.
'굿뉴스'는 그 원칙 위에 세워진, 가장 대담한 실험이다.
◆ '굿뉴스', 영화 같은 실험
'굿뉴스'는 블랙코미디다. 1970년, 일본 공산주의 무장단체 '적군파'에 의해 여객기가 납치돼 평양으로 향하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그는 "최근에 느낀 권위적인 것들, 관료주의와 계급주의, 이념 대립 등 지겨운 뉴스들에 대한 피로를 냉소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트루먼 셰이디)
영화는 그럴듯한 명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없는 명언이다. 트루먼 셰이디라는 인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것을 있다고 속이는 구상을 '요도호 사건'과 맞물렸다.
"이 사건에 대해선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되게 영화적이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죠. 하이재킹하는 비행기의 목적지를 속이잖아요. 그 과정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주제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 낯선 얼굴, 낯설지 않은 연기
영화에는 일본 배우들도 대거 등장한다. 초반 역시 낯선 일본 배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화의 인상을 좌우하는 도입부를 다수의 낯선 얼굴들에게 맡긴 건 과감한 시도였다.
변 감독은 "물론 (새로운 시도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뻔한 클리셰대로 하기 싫었다. 보통 주인공이 사건에 대한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가지 않나. 그건 관객들도 이미 너무 많이 봤다"고 강조했다.
"교과서처럼 하기 싫었습니다. 애초에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이재킹 영화의 룰을 바꾸고 싶어서 하이재킹 과정을 과감히 색략하는 방식을 선택했죠."
한국 감독이 일본 배우들과 작업하거나, 한국 배우들이 일본 감독과 협업할 때 종종 이질감이 생기곤 한다. 그러나 '굿뉴스'의 일본 배우들은 마치 자국 감독의 연출을 받는 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변 감독은 "일본 배우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관객들에게 이런 반응을 이끌고 싶은데 이 대사가 맞을까?'라고 하나하나 물어봤다. 특히 카사마츠 쇼(덴지 역)가 한국어를 엄청 잘해서 도움을 많이 줬다"고 전했다.
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설경구를 제외한 모든 배우를 오케스트처럼 지휘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천의 얼굴을 믿지 않는다. 그 배우를 관찰하며 그 얼굴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또 설경구, 그러나 다르게
이번에도 설경구와 함께했다. 벌써 4번째 호흡이다. 최근 10년간 한 배우와 함께한 것. 영화 '불한당', '킹메이커', 넷플릭스 '길복순'을 연달아 찍었다.
변 감독은 "'길복순'을 마지막으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 조합 이제 지겹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개구리 심보가 올라오더라. 선배님께 하나만 더하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누군가는 "또?"라고 말했지만, 이번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불한당'과 '킹메이커'에서 반듯한 설경구를 그렸다면, 이번엔 제대로 구겼다. 정체불명의 해결사 '아무개'로 이질적인 얼굴을 완성했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과 리듬, 템포, 모든 것이 다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오아시스'의 홍종두를 변주한 캐릭터였다.
변 감독은 "아무개는 관객이 이 영화를 들어가서 보는 게 아니라 밖에서 지켜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인물이다.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하길 바랐다"며 "홍종두인데, 종두를 연기하는 사람 같은 모습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 NEW 홍경, 류승범
'굿뉴스'의 최대 수혜자는 홍경이다. 홍경은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 역을 맡았다. 출세에 대한 욕망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변 감독은 "약한영웅 클래스1'에서 눈에 띄었다. 또래 배우들과 다른, 섬세한 결이 느껴졌다"며 "이번에 작업하면서 홍경의 팬이 됐다. 정말 치열하게 했다"고 치켜세웠다.
홍경은 '질문왕'이었다. 한 신을 가지고도 치열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그는 "홍경이 '제가 고명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거다'라고 말한 부분들을 참고하며 같이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엔딩에서 고명이 아버지의 시계를 차요. 홍경이 '고명이라면 못 찰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마음으로 차달라'고 했죠.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시나리오에선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정도였는데, 경이가 '너무 서럽다'면서 엉엉 울었죠. 그 감정은 또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 버전으로 넣었죠."
그렇다면 류승범은 '굿뉴스'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영화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구간에서 약간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필요했다. 그건 류승범밖에 못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류승범 배우가 당시 쿠팡플레이 '가족계획'을 촬영 중이었어요. 너무 지쳐서 '굿뉴스'는 못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12시간을 설득한 끝에 승낙을 받아냈죠"
◆ 서사를 좋아하는 감독
그가 그간 시도해 온 장르를 응집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풀어냈다. 이번 영화에서 화려한 연출보다 돋보인건, 이야기다. 고증을 충실히 따르며 유머러스한 풍자극을 완성해냈다.
변 감독도 공감했다. 그는 "저는 제 영화를 스타일리쉬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면서"오히려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스타일리시한 감독'이라는 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변 감독은 "편집에서 리듬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멋지게 꾸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외의 답변도 내놨다. "교과서적인 연출을 지향한다"는 것. 그는 "제 영화가 화려하다고 하는데, 보다 보면 클래식한 샷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컷수를 잘게 나눌 때는 많이 쪼개지만, 결국 그 리듬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저는 교과서적인 연출을 지향해요. 아, 이 교과서는, 위에서 말한 교과서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웃음)"
◆ "100% 쏟았다"
블랙코미디는 변 감독에게도 낯선 장르였다. 영화계에선 가장 어려운 장르로 꼽힌다. 자칫하면 웃기지도, 의미도 없는 어정쩡한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 감독은 "빵빵 터지는 유머보다, 피식거리면서 웃다가 마지막에 '내가 이렇게 웃어도 되나' 하는 감정을 주고 싶었다"며 "돌다리를 두들기듯 조심스러운 느낌으로 고민하면서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영화는 변성현의 100%를 보여줬다. 그는 "그전에는 즐기면서 했다면, 이번엔 정말 열심히 했다. 현장에서 여유를 부린 적도 없고, 너무 순조로우면 의심했다"고 떠올렸다.
"너무 일사천리로 가면 '이게 맞아? 더 좋은 방식 없을까?' 하면서 촬영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100 가까이 쓴 것 같아요."
자연스레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그는 "제가 24살, 늦은 나이에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쌓아놓은 아이템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항상 건 바이 건으로 했다. 생각나면 쓰고 찍고, 편집 끝나면 다음 아이템을 생각한다. 저축해 놓은 게 없다. 차기작이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저는 안 해본 거 해보고 싶어요. 뒤를 알 것 같은 이야기는 싫어합니다. 예상이 안 되는 것들을 좋아해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이야기가 있다면… 또 돌아오겠죠."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