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소정·박수연기자] 2024년 11월 29일, JTBC ‘사건반장’. 유명 의료기기 제조사 대표(A씨)의 성매매 의혹이 전파를 탔다.
방송은 충격적이었다. 의료기기 대표가 20살 이상 어린 40대 여성 L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이 사건의 제보자는 L씨의 약혼자였다. 그는 방송에서 “A대표가 성매매의 대가로 (약혼녀에게) 돈을 줬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불과 며칠 뒤에 사라졌다. JTBC는 "A대표 와이프가 방송을 보고 몸져누웠다는 말에 삭제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2025년 7월 29일, 8개월이 지났다.
A대표는 여전히 의료기기 회사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ESG 보고서를 발간, “윤리경영을 준수하고 있다”고 자찬했다.
반면, 제보자는 1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회 지도층 비위에 대해 수차례 제보, 고발을 거듭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러다, ‘디스패치’를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전 여친의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사회 유력 인사들이 전 여친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습니다. 이 다이어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한 보도는 쉽지 않더라고요.” (제보자)
‘디스패치’가 L씨의 다이어리를 공개한다. 의료기기 기업 A대표, 드라마 제작사 B대표, 레저그룹 C부회장, 벤처 캐피탈 D대표, 변호사 E씨, 요식 프랜차이즈 F회장, 포천 유명 골프장 G회장 등 총 25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돈을 주고 성매매를 나눈 사람은 최소 10명 이상이다.
# 약혼녀는 VIP 접대부
L씨는 문화예술업계 종사자다. 한국무용 전공자로, 문화예술대상도 받았다. 공연을 하고, 또 학생도 가르친다.
L씨의 또 다른 직업은 VIP 접대다. 그는 강남에서 가장 비싼 고깃집으로 유명했던 ‘코리아하우스’ (지금은 불법 영업 등의 이유로 폐업했다)에 비정기적으로 출근했다.
(식당) 사장 : 오늘 저녁 가능해? 정말 돈 많은 오빠 회장님
(식당) 사장 : 오늘 백만원줄게. 얼른 와
(식당) 사장 : F회장님(치킨 프랜차이즈)이 여자 2명 준비해달래.
L씨는 VIP 손님이 방문할 때, (고깃집 사장의 호출을 받고) 나간다. 회장님 옆에서 고기를 자르고, 술을 따르고, 전통춤도 춘다.
L씨의 역할은 식당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돈을 받고 2차 술자리에 따라간다. 그러다 조건이 맞으면 호텔까지 동행한다.
아래, KH그룹 C부회장도 이 경로를 통해 L씨를 소개받았다.
# 부르면 나갑니다
2024년 10월 21일. L씨는 코리아하우스 여사장의 호출을 받고 출근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C부회장. KH그룹 배상윤 회장의 오른팔이다.
C부회장은 그날 식사 자리를 끝내고 호텔로 향했다. L씨와 하룻밤을 보냈고, 그 대가로 300만 원을 건넸다. L씨는 호텔방 전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C부회장은 26일에도 L씨를 불렀다. 코리아하우스에서 만나 고기를 구웠다. C부회장은 “중요하게 접대할 사람이 있다”며 단란주점 동행을 요청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L씨가 이날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은 경찰 고위 인사. 제보자는 “C부회장이 청탁을 목적으로 L씨를 동원해 향응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경찰 고위 인사는 공수처에 고발됐다. 하지만 향응접대 의혹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 검찰은 “술자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종료했다.
C부회장은 전과 5범으로 알려진다.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감방에서 만나 우정을 쌓았고, 출소 이후에는 김성태의 소개로 배상윤의 일을 도왔다.
그는 지난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롯데호텔에서 미팅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도망자’ 배상윤과 ‘실세’ 권성동의 통화를 주선했다는 의혹이 있다.
제보자는 “C씨가 술접대 자리에 L씨를 부른 이유가 의심된다”며 “그는 L씨를 성상품으로 봤다. 물론 그날 성접대는 이루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성매매의 대가는?
제보자는 약혼녀의 문란한 사생활을 알게된 뒤 파혼했다. 그리고 유력 언론사에 사회 지도층의 불법 행위를 제보했다.
‘사건반장’은 당시 A대표의 성매매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L씨와 A대표가 나눈 카톡, 사진 등도 증거자료로 공개했다.
A대표는 국내 최대 유통 그룹 부회장 출신이다. 2020년 치과용 의료기기 회사로 옮겼다. 현재 대표이사 직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 속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 JTBC에 방송 삭제를 요청했다. 실제로 해당 영상은 며칠 뒤에 사라졌다.
‘디스패치’가 L씨의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둘은 2019년 ‘코리아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4년 이상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
A대표는 (L씨와) 관계를 가질 때마다 100~300만 원을 줬다. L씨는 다이어리에 증거를 남겼다. ‘날짜’, ‘장소’, ‘금액’ 등을 기록했다.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호텔이었다. 가끔 L씨의 집에서 만나기도 했다. ‘디스패치’는 현관 비번을 공유하는 카톡도 입수했다.
제보자는 약혼녀의 부정행위를 참을 수 없었다. A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나이(66)가 L씨 아버지와 비슷한 걸 알고 있냐”며 질타했다.
A대표는 뻔뻔한 행보를 이어갔다. (사건이 불거지자) L씨에게 “기자들이 연락 오면 ‘가끔 만나 식사한 게 전부’라고 말하라”며 거짓 인터뷰를 요구했다.
‘디스패치’는 A대표를 만났다. 그는 “유통그룹을 그만두고 힘들 때, L씨를 만났다”면서 “L씨에게 건넨 돈은 성매매 대가는 절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 다이어리의 기록
L씨의 2021년 12월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가 12월에 만난 남자는 대략 5명 이상. 밥자리, 술자리, 잠자리 등을 가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하트’ 이모티콘이다. L씨는 남자 이름 위에 하트(♡) 모양을 그렸고, 그 옆에 장소와 돈을 표기했다.
L씨가 12월에 가장 많이 만난 남성은 B대표. 투자회사 부회장이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 C미디어를 인수, 대표직을 맡고 있다.
L씨는 B대표에게 받은 대가도 기록했다. 그는 다이어리에 200만 원(3일), 100만 원(15일), 100만 원(25일) 등을 적었다.
L씨가 B대표에게 보낸 카톡도 입수했다. 한남동 자택 주소를 확인하는 문자였다. (이 주소는 B대표가 과거 살던 곳과 동일했다.)
B대표는 ‘용돈’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디스패치’에 “L씨를 재혼 상대로 소개받았다. 사귀는 사이니까 용돈을 준 것”이라 반박했다.
하지만 석연찮은 부분도 있다. B대표와 L씨의 나이차는 20살 이상. 제보자는 “사귀는 사이인데 왜 관계를 맺을 때마다 돈을 주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은 2022년 1월에도 3차례 이상 만났다. B대표는 5일과 30일에 각각 200만 원을 줬다. L씨는 다이어리에 ‘하트’를 그렸다.
제보자는 ‘디스패치’에 “(약혼녀에게) 하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면서 “L씨는 (내게) 성관계를 의미한다며 실토했다”고 설명했다.
단, B대표는 성매매에 대해선 끝까지 부인했다. “단지 무용하는 여자로 소개 받았을 뿐”이라며 “잠깐 사귀었다. 오해가 풀리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 은밀한 거래들
‘디스패치’는 L씨의 카톡도 입수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돈을 받고 관계를 맺은 내용 등이 성매매의 증거로 남아 있었다.
D씨는 유명 인베스트먼트 대표다. 그는 투자업계에서도 기부천사로 통한다. 대학, 병원, 단체 등에 20억 원 넘는 돈을 기부했다.
그리고 L씨에게도 돈을 줬다. 지난해 8월, 둘은 일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날을 기념해,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인증샷도 찍었다.
L씨가 다음날 새벽 6시, 호텔에서 카톡을 보냈다. “용돈 보내주기 약속해”. D씨는 “ㅋㅋ 그려”라고 답한 뒤에 200만 원을 보냈다.
E씨는 유명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다. 자본시장에 정통한 변호사로, 국내외 기업간의 대형 M&A를 서포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E씨 역시 코리아하우스에서 L씨를 만났다. 그 다음은 ‘단골손님’의 수순(?)을 밟았다. 둘은 카톡으로 호텔 및 날짜를 조율했다.
L씨는 이 외에도 F&B 기업 F회장, 포천 골프장 G회장, 중소기업 H대표, 중견 건설사 I부회장, 재벌 2세 J회장 등 수많은 인사를 접대했다.
코리아하우스는 일반음식점이다. 고기만 팔아야 한다. 하지만 VIP를 대상으로 여성을 붙여줬다. 식당 간판을 걸고 룸살롱 영업을 한 것.
그곳에서 불법 접대가 이루어졌다. L씨와 같은 여성들이 (고깃집에서) 받는 테이블 비용은 20만 원. 2차, 3차 비용은 흥정하기 나름이다.
현재 코리아하우스는 제보자의 불법 영업 신고로 폐업된 상태다. 업주는 처벌을 받았지만 VIP 손님들은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