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당황스럽네요." (LG트윈스 구단 관계자)
프로야구 선수들도, 야구 팬들도, 구단 관계자들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이돌 팬덤이 그라운드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좌석을 강탈했다. 스태프들은 부상을 입었다.
'보이즈 2 플래닛' 참가자 80명이 지난 6일 야구장을 찾았다. LG 트윈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 축하 무대를 꾸몄다. 5회 말 클리이닝 타임에 '올라' 퍼포먼스를 펼쳤다.
환호로 가득 찼어야 할 객석은 비명과 욕설이 오갔다. 팬들은 출연진을 촬영하고 가까이서 보기 위해 질주했다. 질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현장 요원의 팔뚝을 물고, 밀쳐서 넘어뜨리고,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부 팬들의 과도한 행동으로 큰 혼란을 빚었다.
LG트윈스 관계자는 7일 '디스패치'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안전 문제가 심각했고, 야구팬들의 불만사항도 다수 접수됐다"고 알렸다. 논란이 된 부분을 확인했다.
① 야구장 무단 입장
오후 12시 18분, SNS에 야구장 프리뷰 사진이 올라왔다. '보이즈 2 플래닛' 출연자가 그라운드에서 안무 연습을 하는 사진이었다.
경기장 입장은 평일(6시 30분 경기) 기준, 오후 5시에 시작된다. 그러나 이날 사진이 찍힌 시각은 정오 12시. 경기 시작 6시간 전에 몰래 난입한 것으로 보인다.
LG 트윈스 관계자는 "입장 통로가 어딘지는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경기 준비에 한창인 틈을 노려 들아간 것 같다. 현장에서 발견하자마자 퇴장 조치 시켰다"고 말했다.
② 바리케이드까지 뚫었다
잠실야구장 중앙 출입구와 1루 방면 선수 출입문은 바리케이드로 통제된다. '보이즈 2 플래닛' 팬들은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현장 직원들의 만류에도 돌진했다.
관계자는 "당시 주차장 입구가 마비됐다. 평소 바리케이드로 차단되는 구역도 팬들에 의해 뚫렸다"면서 "약 40여 명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들어갔다"고 전했다.
일부 선수들이 안전 문제로 차에서 대기해야 했다는 목격담이 전해졌다. LG 트윈스 측은 "선수들이 자체 판단해서 해결한 것 같다"면서 "다행히(?) 해당 부분에 대한 클레임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③ 그라운드에 뛰어들었다
5회 말, '보이즈 2 플래닛' 출연진 80명이 그라운드에 올랐다. '플래닛 K'(한국 참가자)와 '플래닛 C'(중화권 참가자)의 첫 통합 공식 무대. 뜨거운 열기가 예상됐다.
동시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1루 외야 펜스 쪽 그라운드 스태프 사이에 팬덤이 등장한 것. 악성 팬들은 촬영을 시도했다. 관객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LG 측은 "몰래 출입한 입구를 확인하진 못했다"면서 "어쩌면 엠블런스 통로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중계 장비 이동 등 준비할 때 (뒤섞여) 입장했을 확률도 있다"고 추측했다.
④ 스태프 깨물고 돌진
잠실야구장에는 '익사이팅 존'이 존재한다. 그라운드 가까이서 경기를 볼 수 있다. 단, 파울볼 위험이 있어서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 입장 시 스태프들이 티켓을 확인한다.
이날은 티켓 체크가 불가능했다. '대포 카메라' 부대가 질주했다. 스태프가 막아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팔뚝을 물고 도망쳤다. 여성 직원이 넘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구단은 "저희도 듣고 황당했다. 다행히 해당 스태프들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지는 않다. 찰과상 수준"이라며 "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추가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⑤ 부상도 아랑곳 않았다
LG 측은 경기 진행 시, 한 구역 당 스태프 2~3명을 배치한다. 출입구 쪽을 지키고, 파울볼 등 위험 상황을 막는다. "지금까진 크게 문제된 적이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막무가내 팬덤에겐 속수무책이었다. 관계자는 "관객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입구마다 팬들이 몰려서 입장 자체가 어려웠다. 경기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방해했다"고 말했다.
단, '야구장 그물이 찢어졌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루 그물 쪽이 혼잡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그물이 망가지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바로잡았다.
⑥ 관객 좌석도 빼앗았다
티켓값을 주고 입장한 야구 팬들이 불편을 겪었다. SNS에 "저희 자리에 그냥 앉았다. 사람들을 밀치더라. 전부 다 일어나 있어서 아예 앞을 볼 수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야구 팬들도 선수들을 촬영한다. 단, 이닝 교체 타임 등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한다. 선수들이 잘 보이는 앞자리, 혹은 익사이팅존을 예매하는 편이다.
관계자는 "팬덤의 과도한 행동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경기장 알바생들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형광 조끼를 착용한 스태프들은 대부분 어린 아르바이트생이었다.
⑦ 뒷정리조차 없었다
경기, 아니 공연이 끝났다. '보플2' 팬들이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야구는 계속됐지만, 현장은 어수선했다. 야구 팬들은 "야구장인지, 공연장인지, 주객이 전도됐다"며 비난했다.
심지어 팬들이 떠난 자리는 엉망이었다.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LG 측은 "물론 평소에도 안 치우고 그냥 가는 관객들이 있다. 그러나 어제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알렸다.
한 직원은 "쓰레기를 던져둬서 힘들게 치웠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안 보였다"고 털어놨다. "이제 이런 시구나 행사 소식이 들리면 겁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심지어 아이돌 팬들과 야구 팬들의 논쟁도 벌어졌다. 현장에서 고함과 욕설이 오갔다는 후기가 들린다. 아이돌 시구나 공연을 하지 말아 달라는 목소리도 생겼다.
공연과 스포츠의 결합은 다양한 효과를 낸다. 우선, 신규 관객을 끌어올 수 있다. 야구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기존 팬들에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단, 성숙한 관람 문화가 필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만큼, 선수에 대한 예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야구장은 야구를 보는 곳이다. 그리고 야구장의 주인은 야구 팬들이다.
<사진출처=SNS,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