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가장 평범한 얼굴에서 가장 추악한 괴물을 꺼냈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 나긋나긋한 목소리,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무거운 힘을 지녔다.
JTBC '굿보이'의 빌런 '민주영'(오정세 분). 그는 초반부터 대놓고 정체를 드러냈다. 민낯을 하나하나 걷어나갔다. 점점 악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영을 마치 양파 까듯 완성했습니다. 벗기고 벗겨도, 새로운 악인의 모습이 쌓이는 모습으로 그렸어요. 평범한 얼굴을 까고 괴물의 민낯을 드러냈죠."
그 감정의 디테일을 조절하는 건,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감정의 단계를 따라 헤어스타일 세팅의 정도, 옷감의 질감, 자세까지 신경 썼다.
그리고 또 어떤 노력을 했을까. 다음은 오정세가 그린 괴물이다.
◆ 괴물의 얼굴
민주영은 가장 평범한 얼굴로 인성시를 은밀히 장악한 인물이다. 처음엔 관세청 세관 공무원으로 비춰진다. 숨은 빌런이 아니었다. 단 1회 만에 검은 그림자를 드러낸다.
오정세는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지와 에너지가 갈수록 진하고 세졌으면 했다"며 "폭력의 정도를 어떻게 표현할까, 톤을 많이 조절했다"고 밝혔다.
외면부터 세밀하게 터치했다. 민주영은 세팅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시작했다. 점점 스타일링을 하면서 세련된 모습을 그렸다. 의상도 처음엔 평범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고가의 질 좋은 옷을 준비했다.
돈이 너무 많아 무게로 단다는 민주영의 특징을 은근하게, 점차 드러내려 한 것. 그는 "초반에는 단추를 전혀 안 열지만, 나중에는 단추를 몇 개 여는 등 그의 악행이 진화하듯 외면도 변주를 줬다"고 말했다.
그가 그리려 했던 건 괴물의 얼굴이었다. 평범한 얼굴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굿벤져스'가 조금씩 찢어내는 구조. 민주영이 맞아 찢긴 얼굴은 단순한 상처가 아닌, 마침내 드러난 민낯이었다.
"흉측한 그 얼굴이 민주영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굿벤져스'가 점점 그의 가면을 벗기는 거죠.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상처를 디자인해 나갔습니다."
◆ 괴물의 감정
민주영은 자기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된다고 판단하면 무자비하게 처단한다. '굿벤져스'가 주먹, 총, 힘으로 싸운다면, 그의 무기는 권력과 재력이다.
오정세는 "다른 사람들은 기술이 있지만, 민주영은 돈에서 기인한 자신감이 있다. '총 가져왔어? 그래도 내가 이겨'라는 뻔뻔함이 그의 무기"라고 설명했다.
민주영의 자신감을 대사에도 넣었다. 일례로 13회, 하나(김소현 분)는 민주영에게 그의 범행을 하나하나 읊어준다. 그러나 민주영은 "기억 안 나는데"라며 묵살한다.
그는 "어렸을 때 TV에서 거짓말하는 어른들을 본 적 있다. 권력과 자본 뒤에 숨어 '기억 안 난다'는 말 한마디로 빠져나가더라. 그런 모습을 민주영에게 덧대고 싶어 추가했다"고 털어놨다.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15회에서 민주영이 건물 옥상에서 인성시를 내려다보는 신이 있어요. 난간에 걸터앉아 있으면 좋겠더군요. 위험한 느낌이 확 드니까요. 큰 대사나 액션 없이도 빌런의 결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민주영은 무미건조해서 더 괴물 같다. 그러나 그 건조한 얼굴에서도 한 번씩 미세한 분노를 터뜨린다. 오정세는 "감정의 디테일을 표현하는 건, 저와의 싸움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미건조하게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드라마인 만큼, 좀 지루하게 느끼실 것 같더라. 드라마의 결에 맞게 조금씩, 필요한 정도의 감정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 괴물의 말로
오정세가 민주영을 선택한 이유는, '굿벤져스'의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이다. 운동을 그만둔 메달리스트들이 모여 한 팀을 만들고 악을 응징한다. 그도 '굿보이' 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읽었다.
때문에 민주영을 연기하면서도 정을 주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몰입해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정서를 묻혀야 할지 한발 물러서서 고민하고 디자인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 캐릭터에는 애정을 갖지 않고 싶었습니다. 서사를 만들어 변명 거리를 만들려 하지 않았죠. 그저 '굿보이'를 위해 존재하는 자극제 정도로 남으려 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괴물에 대한 드라마적 상징성으로 두고 싶습니다."
'굿보이'는 마지막회 짜릿한 어퍼컷을 날렸다. 이날 시청률은 8.1%(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자체 최고 기록으로 막을 내렸다. 거뒀다. 8주간 전반적으로 5~6% 대를 유지했다.
오정세는 "동주가 민주영을 잡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 현실 같았다. 나쁜 사람은 많은데, 응징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나. 그런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 연기 괴물
오정세가 소화하지 못하는 역할이 있을까. 선역부터 악역까지 매번 임팩트 있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한마디로 믿고 보는 배우. 다작을 하지만, 매번 다른 얼굴로 시청자들을 기대케 한다.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작품을 이야기할 때는 주저 없이 열리던 입이 가장 신중해진 순간이었다.
그는 "작품마다 포인트가 다른 것 같다.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작품이 있고, 어떤 건 라이브 한 감정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때가 있다. 뭐가 중요할지 매번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확실한 건, 오정세는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해야 하는 캐릭터도 있지만, 저는 많이 준비해 가는 편이다. 하지만 그걸 다 구현하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준비한 걸 하는 데만 집중하면 되레 독이 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편해지면, 나오는 느낌으로 합니다. 물론 현장에 갔는데 제가 준비한 게 안 맞으면 그걸 다 버릴 수 있는 용기도 가지고 있고요."
올해 드라마로만 4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별들에게 물어봐', '폭싹 속았수다', '굿보이'에 이어 강동원, 전지현과 함께 호흡을 맞춘 대작 '북극성'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는 "제가 맡은 캐릭터의 매력도 있지만, 전체적 스토리와 김희원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현장 편집으로만 봐도 감탄사가 나왔다. 많이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제공=프레인T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