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배우 이제훈이 또 다시 M&A 전문가로 나선다.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 이어, 영화 '소주전쟁'에 도전한다. 비상한 두뇌를 지닌 금융인으로 활약한다.
그는 디테일에 강한 배우.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느낌, 미묘한 심리 변화 등을 표현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도 추가했다. 익숙하지만, 또 새로울 전망이다.
"비슷한 역할이라 부담되지 않냐고요? 오히려 흔치 않은 소재로 관객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금융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갖게 됐고요. 작품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못할 건 없습니다."
'디스패치'가 최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제훈을 만났다. '소주전쟁'을 위해 쏟은 열정과 작품에 대한 진심을 들었다.
※ 이 인터뷰에는 '소주전쟁'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소주전쟁, 전 국민의 이야기"
'소주전쟁'은 IMF로 자금난에 처한 소주 회사 '국보소주'의 매각 사태를 다룬다.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이제훈 분)과, 국보소주 재무이사 종록(유해진 분)이 주인공이다.
IMF는 전 국민이 겪은 경제 위기였다. 국가와 회사, 가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이제훈은 "학창 시절 외환 위기를 직접 겪었다"며 "당시 아버지께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책임지셨다"고 털어놨다.
"가세가 기울었던 그 시절, 새벽마다 일하러 나가시던 아버지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소주전쟁'의 이야기가 더욱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받고,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가치관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30년이 지난 지금,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말했다.
"세상은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윤리적·도덕적 해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주전쟁'은 그 문제를 환기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 "종록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다"
'소주전쟁'의 가제는 '모럴 해저드'였다. 모럴 해저드란,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도덕적 해이를 뜻한다. 인범은 그 단어를 상징하는 인물. 야심을 숨긴 채 종록에게 접근한다.
인범은 종록을 배신했다가, 다시 손 내밀기를 반복한다. 이제훈은 "현실에는 (인범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다. 예상치 못한 배신을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짚었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보소주의 경영 자문을 맡는 동시에, 뒤에서는 회사를 집어삼킬 작전을 세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간미가 있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종록을 위로해주고 싶은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러다 종록과 마신 소주 한 잔. (숨어 있던) 죄책감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종록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어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종록의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싫었죠. 여러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굉장히 몰입됐어요."
◆ "표인범 위해, 공부해야 했다"
대본의 절반 이상이 영어 대사와 경제 용어였다. 그도 그럴 게, 인범은 글로벌 투자사의 M&A 전문가. 극중 각종 경제 용어를 술술 읊고, 영어 대사도 현지인처럼 해내야 한다.
이제훈은 "이걸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며 "영어 선생님의 가이드(목소리)를 매일 듣고 따라했다. 발음, 속도, 억양 등을 계속 바꿔가며 연습했다"고 털어놨다.
뉴스를 챙겨 보고, 경제 전문지도 꾸준히 읽었다. IMF 시절 기록도 찾아봤다. 당시 국민들이 흘린 땀과 눈물을 되새겼다. 시대적 배경과 인범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역할에 금세 녹아들었다. 할리우드 배우 바이런 만과의 호흡이 그 예. "실제 금융 전문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몰입했다"고 전했다.
◆ "이제훈, 연기일체를 꿈꾼다"
이제훈은 공백기가 드문 배우 중 하나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곧 인생과 같다. "배우라는 삶을 떼어놓고 인간 이제훈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일이 곧 나고, 내가 곧 일이다"고 강조했다.
"비어 있는 스케줄을 보면 불안해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워라밸을 누리라고 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그러지 못하죠. (웃음)"
올해로 데뷔 20년 차. 그의 필모그래피는 연기 경력을 넘어,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묻어난 기록물이다. "누군가 '이제훈이 누구야?'라고 묻는다면, 필모그래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도 2개의 시리즈물을 동시 촬영 중이다. 오는 11월 SBS-TV '모범택시3'를 선보인다. 내년 상반기에는 tvN '시그널'의 후속작 '두 번째 시그널'로 10년 만에 돌아올 예정이다.
"배우로서 훗날 돌아봤을 때, (스스로)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생각입니다."
<사진제공=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