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어떻게 하면,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8년 전, 사랑스런 윙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이 그의 매력 포인트. "내 마음 속에 저장"은, 대국민 유행어로 화제를 모았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성장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나갔다.
그러면서 고민이 생겼다. 바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다는 것.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사실,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했으니까요. 다른 배우 분들과 호흡할 때, 어떻게 하면 내가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그래서 클래스 2를 더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디스패치'가 최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지훈을 만났다. 이제 그는, 연기 잘 하는 배우로 불린다. 그 변곡점이 된 드라마 '약한 영웅'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이 인터뷰에는 '약한 영웅2'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 "연시은은, 내 최애 캐릭터"
박지훈에게 '약한 영웅'은 특별한 작품이다. 꽃사슴 비주얼보다 더 강력한, 상처입은 사춘기 학생 연시은을 연기했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피가 터지도록 주먹을 날렸다.
아주 오랜 기간, 연시은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 당연히 의미도 남다르다. 박지훈은 "제가 필모그래피가 많지는 않지만, 연시은은 그 중에서도 최애 캐릭터"라고 말했다.
"연시은은 너무 마음이 가고, 애정하는 캐릭터에요. 지금도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떠오르고, 또래 배우들이 생각나요. 현장이 그립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죠."
그도 그럴 게, 햇수로 따지자면 (오픈 시점 기준) 4년 이상을 연시은과 함께 하고 있다. 성과도 좋다. 클래스 1과 2 모두 세계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연기 호평도 받았다.
"약한 영웅이 웨이브에서도 흥행했고, 플랫폼을 바꿔 넷플릭스에서도 잘 됐어요. 감사하고, 영광스럽죠. 작품이 화제가 된다는 건 배우에겐 정말 좋은 일입니다."
클래스 1의 친구들은 떠났다. 박지훈이 클래스 2에 단독으로 합류, 새로운 친구들과 만난다. 두 시즌, 그것도 주연으로 작품을 이어간다는 부담감은 없었을까.
"아니요. 저란 사람 자체가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아요. 혼자 불안해한 적도 없고요. 어떻게 하면 클래스 2를 시청자 분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까… 그 점이 고민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클래스 1을 잘 했으니, 제가 안 좋은 쪽으로 (나태하게)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잘 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과 2는 확실히 다르다 생각하고 임했다"고 강조했다.
◆ "시은의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까?"
클래스 1은 모범생 연시은이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선보였다. 안수호(최현욱 분)·오범석(홍경 분)과 사건을 해결해나갔다. 여기에 범석의 흑화로 인해, 수호가 중태에 빠지며 끝난다.
클래스 2에서는 무대와 사람들이 달라진다. 시은은 은장고로 전학을 가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폭력에 얽히지 않으려 하지만, 또 다시 연루된다. 이전보다 더 피 튀기는 액션을 펼친다.
"시은이는 클래스 1에서 모든 걸 잃었습니다. 감정 표출을 안 하던 친구가, 하나 뿐인 친구(안수호)를 잃었어요. 때문에 저도 촬영장 구석에서 울기도 하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박지훈은 클래스 2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시은이 어떻게 하면 다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하는 게 첫 번째 숙제였다"며 "클래스 2가 더 (심리) 표현해야 할 게 많고 어려웠다"고 밝혔다.
"먼저, 시은이는 수호나 범석이와 비슷한 친구들을 보며 의지하고 마음이 갔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예를 들면, 준태(최민영 분)에게서 범석의 모습을 본다든지요.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는다. "클래스 2에서는 친구들을 사귀면서 끝이 나서 너무 좋았다"며 "시은이 성장해가는 모습이 뿌듯했고,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명장면은, 마지막 싸움 그 이후다. "시은이 쓰러진 나백진(배나라 분)을 바라보는데, 그 장면을 좋아한다"며 "시은이는 친구가 생기며 끝나고, 나백진은 없어지며 끝난다"고 설명했다.
"나백진도 나와 같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싸우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은이 (백진을) 쳐다보는 얼굴, 대사 한 마디 없는 그 표정을 좋아합니다. 없어선 안 될 장면이에요."
◆ "액션, 이번엔 처절하다"
'약한 영웅'은 액션 드라마다. 그만큼, 이번에도 액션에 신경썼다. 클래스 2에선 처절함을 포인트로 잡았다. "눈빛에 있어서도 '이제 유치한 짓은 끝내자'라는 감정을 담으려 신경썼다"고 전했다.
"사실, 시은이는 원하지 않는 싸움이에요. 처음 효만(유수빈 분)과 대립했을 때도, 효만이를 때리지 않죠. 그런데 결국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또 폭력을 꺼낼 수밖에 없어졌어요."
액션의 방향도 달라졌다. "원래 펜 같은 내 물건을 이용해 공격했다면, 클래스 2에선 상대방의 물건(안경테, 가방 등)을 이용하는 게 추가됐다. 편집 버전을 보며 나도 신선하더라"고 웃었다.
일명 '연금대전', 연시은과 금성제(이준영 분)의 옥상 액션 신도 화제다. 시은이 수세에 몰리다 화분으로 성제를 공격하고, 안경을 벗겨 안경테로 발등을 내려찍는 신이다.
박지훈은 "연금대전은 총 일주일 정도 넉넉히 시간을 두고 촬영했다"며 "다행히 준영이 형과 저의 경우, 액션의 합과 흡수력이 빨랐다. 강점이자 장점인 것 같다"고 평했다.
재미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 박지훈은 '워너원'에서 군무를 맞춰본 경험이 풍부하다. 이준영은 '유키스'에서 활동하다 배우로 전향했다. 액션도 춤처럼 소화했다.
"아무래도 저희 둘다 그룹 생활을 했잖아요. 그러다보니 춤은 아니어도, 서로 액션 합을 외우는 게 빨랐어요. 안무를 숙지하는 것처럼요. 한 두번 리허설 했는데도 문제없이 잘 촬영했습니다."
와우산의 싸움 신도 수월하게 해냈다. "대규모 인원의 싸움 신이었지만, 현장에서 걱정할 게 없었다"며 "과감하게 배우들과 합을 맞췄다. 잘 나와서 좋다"고 미소지었다.
◆ "그 윙크보이, 이젠 글로벌 배우"
박지훈과 연시은, 둘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다. 연시은은 무뚝뚝하고 감정 표출이 적다. 박지훈은 인증된 애교쟁이. "저는 애교 많은 편이 아닌데, 주변에서 항상 '애교 많다'고 한다"고 쑥쓰러워했다.
과거 윙크보이 시절도 언급했다. "연습생 때는, 어떻게 하면 박지훈이라는 사람을 보여드릴 수 있을 지 고민했다"며 "그 결과물이 윙크와 저장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 나이 대에 보여드릴 수 있는 내추럴한 애교였어요. 제가 연기를 한 건 아닌데, 다들 좋아해 주시니 자신감이 생겼죠. 그 때 순수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표현한 거였어요."
그 윙크보이가 이젠, 어느덧 어엿한 배우가 됐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2019)을 시작으로, 5편의 작품을 소화했다. 여기에 '약한 영웅' 2 시리즈를 추가하면 그의 필모그래피 완성이다.
"예전엔 롤모델인 선배님들이 많았어요. 대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며 '와!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 '저렇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경험치가 쌓인 만큼, 이젠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롤모델 설정도 있지만, 목표가 좀더 분명해졌다"며 "내가 표현해낸 이 감정들을, 시청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제가 울 때 시청자 분들도 울고, 제가 웃을 때 시청자 분들도 웃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배우로서 크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표현을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더 성장하고 싶어요."
'약한영웅'의 연시은을 통해 얻은, 값진 목표다.
"저도 클래스 2의 마지막 회를 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연기하면서) 감정들을 표현해냈으니, (시청자로서) 저도 울게 된 거 아닐까요. 감정을 공유하고픈 배우라는 목표를 생각한 계기도, 연시은 덕분입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