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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이 없으면, 만들었다"…신예은, 열정의 보답

[Dispatch=김지호기자] "나, 진짜 어떡하지?" (신예은)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그도 그럴 게, 배우와 소리꾼의 발성은 다르다. 특히 고음이 어려웠다. 잘 나오지 않는 톤 때문에 연습을 무한 반복해야 했다.

심지어 목까지 쉬었다. 소리꾼들의 용어로, 일명 '떡목' 상태가 돼 버린 것. 그 상태로 '정년이' 대본 리딩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

"오늘 목소리가 안 나오니, 리딩 여기까지만 하자." (감독)

감독의 만류까지 듣고 나니, 한층 더 당황스러웠다. 병원을 찾았지만, "당분간 (소리) 연습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들었다.

"저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연기를 못 하는 목소리가 돼 버렸어요. '연기 연습 어쩌지? 고음은?' 하면서 혼란이 왔어요. 그런 점이 저를 지치게 만들었죠." (이하 신예은)

그러나 브라운관 속 신예은은 완벽했다. 성골 중의 성골, 매란의 엘리트 연구생 허영서에 빙의했다. 허영서와 혼연일체 돼, 그 상태로 4개의 국극까지 강렬하게 연기했다.

'디스패치'가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신예은을 만났다. 그녀의 뼈를 깎는 노력을 들었고, 배우로서의 성장을 실감했다.

◆ Step 1. "출연부터 도전이다"

'정년이'의 주인공은 윤정년, 김태리다. 그가 먼저 캐스팅 됐고, 신예은에게 허영서 캐릭터 제안이 들어갔다. 김태리와 운명의 라이벌이자, 우정을 쌓는 캐릭터였다.

"(김)태리 언니가 캐스팅된 걸 봤을 때,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태리 언니의 작품을 많이 봐 왔으니까요. '언니와 호흡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죠."

신예은은 "출연하는 데 언니의 영향이 컸다. 제 연기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당연히 언니를 따라잡을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밀리지는 말자는 각오였다"고 회상했다.

허영서는 19세 천재 국극소녀. 판소리, 연기, 춤에 모두 능해야 했다. 게다가 김태리의 어마무시한 연기와 맞붙는다. 촬영 시작까지 주어진 시간은 2~3달. 막막하지는 않았을까.

"물론, 당연히 막막했죠! 만약 '1달 뒤 작품 들어간다' 했으면, 탐나더라도 출연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욕심난다고 해버리고, 제대로 못 하면 무책임한 거니까요."

그는 "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래도 약 2~3달 정도는 있었다. 작품 촬영하면서도 계속해서 연습할 시간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하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고 했다.

◆ Step 2. "허영서를 이해하자"

먼저, 캐릭터부터 이해해야 했다. 영서는 엄청난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완벽주의자. 타고난 천재 정년에게 열등감과 경쟁 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영서가 가진 상황, 마음, 사건 등에 중점을 뒀어요. 영서의 경험을, 세상 누구나 한번 쯤은 겪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성공하고 싶고, 1등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심리 말이에요."

세상의 많은 '허영서'들을 떠올렸다. "매번 비교를 당하는 사람도 있고,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재능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노력해도 목표치가 안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 영서가 해야 하는 연기에 뛰어들었다. '정년이'는 극중극 설정의 드라마. 허영서는 5개의 작품을 연기한다. 신예은은 '영서가 연기하는 이몽룡', '영서가 연기하는 고미걸' 등 디테일을 잡아갔다.

"영서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정석의) 이몽룡을 연기할 것 같았어요. 정년이는 '이몽룡이 이럴 수도 있네?'라는 접근이고요. '바보와 공주'부터는 영서가 내려놓을 줄 알게 된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쌍탑전설'은 또 다르게 설정했다. "영서가 대본을 받고, 캐릭터에 공감하는 모습을 그려냈다"며 "한 인물마다 목표를 정해 접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Step 3. "연습만이 살길이다"

소리, 춤, 허영서, 국극 4개(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쌍탑전설)…. 듣기만 해도 부담스럽다. 신예은이 연습한 시간은 약 1년. 쉴새 없이 소리를 했고, 매주 금요일마다 무용 수업도 받았다.

첫 작품은 춘향전. 신예은은 그 중 '아니리'가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첫 작품이기도 했지만, 대사들이 너무 힘들었다. 아니리만 정말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이 저만의 것, 편한 것을 찾으라 하셨어요. 그런데 편한 게 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정말 걸음마 떼듯이 했어요. 계속 녹음하고, 다시하고, 동영상 찍고, 레슨 받고, 유튜브 보고, 나머지 공부하고…."

약점이라 느낀 고음도 맹연습했다. "고음에 접근이라도 할 때까지 집에 안 가겠다는 각오로 연습한 날도 있다. 3시간짜리 연습실을 끊었는데, 연장을 2번 했다. 하루에 총 8시간 연습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저는 긴장하면 심장 소리가 쿵쿵 거리며 귀에 들리고, 얼굴이 빨개진다. 노래 부를 때 진짜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 수줍게 웃었다.

"안되겠다 싶어 한 번은 회사에 다짜고짜 찾아갔어요. 직원 분들 일하시는데 '안녕하세요! 제가 소리 한 구절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크게 '사랑가'를 부른 적이 있어요. 그 때 처음이어서 진짜 못 했는데…."

◆ Step 4.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신예은은 "정년이를 하면서 5작품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연습 시간도 촉박해졌다. '춘향전' 3달, '자명고' 2달, '바보와 공주' 1달, '쌍탑전설' 1달.

"갈수록 시간에 쫓겼어요. 스파르타로 연습해야 했죠. 저를 포함해 '정년이' 배우들은,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만들었어요. 그냥 새벽에도 막 만났죠. 촬영이 밤 11시 끝났다? 그럼 12시 모여 연습했습니다."

그는 "선생님들께도 너무 감사하다. 스케줄이 따로 있으실 텐데, 촬영 끝날 때까지 있어 주셨다. (배우들이) 다시 연습을 시작하면, 새벽에도 봐 주셨다"고 했다.

'정년이' 팀 자체가 끈끈해진 이유다. 특히, 주연들끼리는 동료애를 넘어서 전우애까지 느꼈다. 그는 김태리와의 마지막 대결, '아사달' 오디션을 언급했다.

"영서가 정년에게 '네가 이겼다'고 할 때, 너무 슬펐어요. 이제 태리 언니와 나와의, 정년과 영서와의 대결이 이제 끝나는 거구나 싶어서요. 언니랑 저랑 글썽거리며 연기했어요. 많이 애틋해졌죠."

신예은은 "저희 워크샵 가면, 3인실에서 다 같이 잤다. 맛있는 것 대기실에서 먹고, 연습실에서 연습하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었다. 그 모든 시간이,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 "신예은은, 보석같은 배우"

사실, '더 글로리'(2022)가 대표작이 될 줄 알았다. (그만큼 뛰어났다는 의미다.) 그런데 1년 만에 대표작을 경신했다. 대중에게 '연진' 대신 '영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더 글로리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엄마 아빠 세대도 알아봐주세요. 원래 길을 걸으면 어른들은 마스크 벗고 다녀도 절 모르셨거든요. 지금은 '모자 좀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웃음) 너무 감사하죠."

영서가 정년을 만나 성장했듯, 신예은도 한 걸음 도약했다. "영서가 국극이라면, 전 연기를 더 사랑하게 됐다. 같이 연습하며 동료애도 더 많이 생겼다. 작품에 임하는 마음과 대본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했다.

"저는 자신을 절대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데 영서를 보면 너무 잘하는데, 왜 본인만 모르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제 저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정년이'는 제게도 큰 교훈을 준 작품입니다."

이 괴물같은 배우는, 이제 고작 26살이다.

"저는 솔직히, 저만의 연기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제게 어떤 캐릭터를 주셔도 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은 드릴 수 있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사진제공=앤피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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