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왜 워커홀릭이 됐을까?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또, 직장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냈을까?" (강기영)

정명석 변호사를 연기하는 일은, 자문자답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게, 처음 맡아보는 캐릭터다. 그간 주로 맡아온 재미있는 신스틸러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강기영은, "안 해본 역할에 위축됐다"고 말한다. 경험 부족에서 오는 걱정이 컸다는 것. 배우 생활 14년차에도, 초심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새로운 역할에 대한 갈증이 컸던 시기에 명석이를 만났습니다. 한 편으로는 겁이 났지만,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깊게 고민했고, 또 몰입했습니다."

정명석의 고민, 아니 몰입은 성공이었다. 시니어 변호사 겸 멘토, 워커 홀릭, 이혼의 상처, 위암 3기….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이 모든 설정을 풀어냈다.

'디스패치'가 최근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나보낸 강기영을 만났다. 그가 그린 정명석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 유니콘 상사, 정명석 

정명석 변호사는 유니콘 같은 상사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후배의 말을 경청하며, 바른길로 인도한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다.

강기영에게도 명석은 (맡아본 적 없는) 유니콘 같은 역할이었다. 그의 주특기는 코믹한 감초 역할. ‘오 나의 귀신님’, ‘김비서는 너무해’ 등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선보여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욕심이 생겼다. 주 종목인 코믹 말고,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그는 “SBS-TV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악역을 했다. 거의 처음으로 이미지 변신을 했었다”며 “웃기려는 게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섬뜩하게 보이지?’라는 고민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강기영은, 재미있는 배우. “다양한 연기를 해봐야 익숙해지지 않나. 그런데 제가 잘하는 역할만 들어오더라. 차츰 갈증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정명석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세련되고 멋진 법조인 캐릭터. 게다가 후반부에는 위기(위암)까지 있다. 곧바로 '콜'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품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걱정이 덮쳐왔다. "실제로 1~2회를 보면, 제가 굉장히 얼어 있다.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었다"고 토로했다. 

"처음엔 멋있어 보이겠다는 의욕이 컸어요. 저도 모르게 시니어 변호사의 껍데기에만 주목했던 것 같아요. 미드 '슈츠'의 일류 변호사 '하비' 처럼요."

강기영은 "한데 명석이는 외양만 멋진 사람이 아니었다.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멋짐이 드러나야 했다"며 "그래서 (명석의) 내면부터 다시 연구했다"고 밝혔다.

◆ 정명석, 실제 있다는 믿음 

강기영은 이 매력적인 인물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의 서사에 몰입하려 노력했다. 워커홀릭, 결혼 생활과 이혼,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 등을 하나 하나 디테일하게 그려나갔다.

그가 해석한 정명석은 이렇다. 

“정명석은 대형 로펌에서 14년을 살았으니 현실적이고, 성과 우선주의의 사람이었을 겁니다.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승소했을 때의 성취감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을 거예요.”

정명석은 크게 2번의 계기로 변화를 맞는다. 먼저 우영우라는 창의적인 변호사의 등장. 영우는 명석을 정의롭고 패기 넘쳤던 신입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위암 발병. 강기영은 갑작스레 찾아온 명석의 위암 3기 설정에도 (모두가 놀랐지만) 놀라지 않았다. 일 자체가 삶이었던 명석의 치열한 삶에 몰입했으니까….

강기영은 “명석은 결국 삶의 중심이었던 일 때문에 과부하가 와서 병이 온 것”이라며 “사람이 실패를 해봐야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암도) 명석에게 꼭 필요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명석이를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었죠. 저는 워커홀릭도 아니고요. 하지만 정말 이런 멘토가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허구의 인물이라고만 생각하면 역할에 힘이 안 생기잖아요?”

◆ 서브아빠가 본, 신입 변호사들

강기영이 바라본 촬영 현장은 화기애애했다. 주인공을 맡은 박은빈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모두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특수한 인물을 연기하는 박은빈을 응원했다. 

특히 영우가 긴 대사를 빠르게 소화할 땐,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강기영은 "특별출연한 구교환(방구뽕 역)이 저희 현장을 보고 '박은빈 사관학교 같다'고 하더라"며 "저도 나름 긴 대사가 있었는데 힘든 내색을 못 했다"고 떠올렸다.

“박은빈 배우는 ‘청춘시대’ 때부터 지켜봤어요. 특별한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일상 연기도 정말 훌륭해요. 어떻게 연기할 지 예상이 안 됐죠. 그럼에도 티키타카가 정말 잘 맞았습니다. 조정석 형이랑 했을 때의 감정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는 실제로도 '서브아빠'였다. 동료 배우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신나게 자랑을 시작했다.

"주종혁(권민우 역)은 겁 없이 정말 잘해요. 어릴 때 저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하하. 하윤경(최수연 분)은 '여자 강기영'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치는 애드리브를 센스 있게 다 받아치더군요."

한바다즈는 시너지도 훌륭했다. 덕분에 주 종목인 애드리브를 원 없이 펼칠 수 있었다. "감독님이 바로 컷을 안 하신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했다”며 “배우들끼리 케미가 잘 맞아서 잘 살았던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배우 강기영으로서 돋보이려 한 건 아니었어요. 명석이로서 애드리브를 하려고 했죠. 특히 감정을 교류하는 신이 많았어요. 연기하면서 짜릿한 순간을 여러 번 느꼈죠.”

◆ "강기영의 연기는, 이제 시작"

'우영우'의 인기는 신드롬급이었다.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 이준호를 맡은 강태오, '봄날의 햇살' 하윤경, '권모술수 권민우'의 주종혁까지, 모두가 빛났다.

강기영에게도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다. 배우 인생 14년 만에 쏟아진 찬사였다.

(물론, 그는 원래 연기를 잘 하는 배우다. 정명석 역시 그간 해온 연기와 비교했을 때 특출나게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몰입에서 오는 디테일은 분명히 달랐다. 성장이 느껴졌다.)

“모든 배우가 안 해본 역할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죠. 드라마 1~2부를 보고 난 다음 날 울컥했습니다. 제 연기 스펙트럼을 넓게 해준 것 같아서요. 고맙고 기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자신의 연기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다. 그는 "'더 시니어 변호사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아직도 '우영우'를 정면으로는 못 보겠다"고 털어놨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 강기영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소송 과정에 비유했다. "이제 막 사건을 의뢰한 정도 아닐까"라며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아직도 계속 성장 중인 느낌이다"고 말했다. 

"제 눈엔 어색한 부분도 많았지만, 명석이를 예쁘게 봐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래도 겁 없이 연기했던 제가 많이 다듬어진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더 새로운 모습으로, 더 발전한 모습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