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구민지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는, 그녀의 연기에 '살벌하다'는 표현을 썼다.

"사실 뛰어난 배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잘 할 줄이야…. 예상보다 수십 배는 더 잘했어요. 따로 찾아가 칭찬했죠." (송강호)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하는 배두나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우는 경험을 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한데 이 배우는 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연기자라 생각합니다." (배두나)

베테랑 연기자 서이숙은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연기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실제로 촬영해 보니 기본기부터 남달랐습니다. 그간 많은 배우를 만나왔지만,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서이숙)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단번에 제가 생각한 인물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쓴 대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표현력이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

이 모든 칭찬은, 신인 영화배우 이지은의 것이다. 그는 첫 장편 상업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지은은 만족이 없다. 쏟아지는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아직도 전 너무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건 제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죠. 좋은 환경, 좋은 선배님들을 만났기에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지은)

'디스패치'가 프랑스 칸 르 마제스틱과 국내에서 이지은을 만났다. 이지은의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목표에 대해 들었다. 

이지은은 지금, 연기에 목마르다. 

◆ "아이유=이지은, 서로 시너지를 주는 이름" 

이지은은 모든 걸 잘하는 스타다. 가수로 먼저 국민 여동생이 됐고, 이어 (드라마) 배우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고레에다가 '나의 아저씨'를 보고 그녀에게 반했을 정도. 

'가수' 아이유와 '배우' 이지은, '배우' 이지은과 '가수' 아이유. 그녀는 두 자아를 영리하게 활용해오고 있었다. 

"가수 활동량이 많았기에 아직 배우 타이틀을 어색해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종종 이지은과 아이유의 간극에 대한 질문도 받죠." 

이지은은 "전 둘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나 노래나, (제가) 표현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고 확고한 마인드를 전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과 연기의 결이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녹음실 작업 과정과 촬영 과정을 떠올리면 굉장히 유사하거든요."

그는 "가수로서 가사를 제가 다 적는다. 작사할 때, 드라마나 소설처럼 제가 겪어보지 못한 걸 표현할 때가 많다"며 "그런 훈련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을) 촬영하면서도 가사를 많이 쓰고 있어요. '브로커'를 준비하면서 '스트로베리 문'을 만들었죠. 두 활동이 서로 도움이 돼요. 연기와 노래, 모두 욕심나요." 

◆ "데뷔작으로 칸 입성,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그간 쌓은 탄탄한 내공으로, 데뷔작 '브로커'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러닝타임 129분 내내 극을 노련하게 이끌었다. 송강호를 비롯한 고수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그녀가 연기한 소영은 미혼모. 아들 우성을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탈색 머리, 스모키 메이크업에 거친 욕설까지 내뱉는다. 

이지은이 '브로커'로 이룬 성과는 놀랍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된 것. 미국 '어워즈와치'는 "이지은이 이번 영화의 영혼"이라 극찬했다. 

"관계자분들이 '연기 호평이 나온다'고 말해주셨어요. 믿지 않았죠. 괜히 좋은 이야기만 해 주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직접 찾아보니 사실이더군요. 신기하고 기분 좋았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 그는 "실은 연기에 대한 칭찬으로 부담 가져본 적은 없다"며 "칭찬을 받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원동력이 생긴다"고 미소 지었다.

생애 첫 레드카펫도, 떠올리면 아직 가슴 벅찬 경험이다. "나름 활동을 오래 했지만 칸 입성은 정말 특별하다"며 "실은 너무 긴장해 (프리미어 때) 제대로 감상을 못 했다"고 고백했다.

"첫 영화로 칸에 온 건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에요. 운이 좋았습니다. 죽기 전에 떠오를,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요?" 

◆ "이지은과 고레에다, 물음으로 만든 대본" 

이지은과 고레에다는 (지금) 서로의 팬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브로커' 캐스팅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지은은 우연히 고레에다를 만났고, (일부러) 무리해서 인사하지 않았다.  

영리한 결정이었다. "전 감독님 팬이었지만, 감독님은 그때만 해도 절 모르셨다"며 "당시 오버하지 않길 잘했다 느낀다. 감독님이 절 모르는 상태에서 제 연기를 보시고 결정해주셨다"고 말했다. 

고레에다는 이지은의 연기력만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 "팬데믹 당시 한류 드라마에 빠졌었다. '나의 아저씨' 속 이지은의 연기를 보고 팬이 됐다. 오퍼할 수밖에 없었다"고 칭찬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과의 만남. 스스로 신인배우를 자처한 이지은으로선 중압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아이를 낳은 엄마의 삶을 연기해야 했다.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많아졌다. 

이지은이 찾은 대답은, 소통. "소영이가 설정이 많은 캐릭터라 접근이 힘들었다. 감독님과의 면담을 (기회로) 삼았다.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실제로 고레에다는 시나리오가 간결한 감독으로 알려진다. 이지은은 끝없이 연구했고, 끊임없이 물었다. 소영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한 건지, 후회는 없었는지.

이지은의 집요함은, 대본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고레에다는 손편지로 세세하게 물음에 답했다. 이지은은 "대본에 없는 설정까지 성심성의껏 답해주셨다"고 공을 돌렸다.

"고레에다 감독님은 현장 디렉팅이 많지 않으세요. 배우의 해석을 존중해 주십니다. 한 마디로, 자율성을 주셨어요. 나중엔 제가 아이디어를 내곤 했죠."

◆ "이지은이 미혼모가 되는 법"

소영은 보통의 20대와는 다르다. 살기 위해 성매매를 택했고, 원치 않는 임신에 아기를 버린다. 심지어 가격을 제시받고, 아기를 판매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지은은 "소영이 짊어진 짐과 자기혐오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키 어려웠다"며 "미혼모들이 어떤 사회적 시선을 견디며 아이를 키우는지 열심히 찾아봤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절제를 택했다. 아기와 함께 있을 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애정 담긴 스킨십도 자제. "아기를 사랑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게끔 연기했다"고 짚었다.

대신 심리 표현에 집중했다.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려 했다. 절제가 제 결에 잘 맞더라"고 털어놨다. 

가장 고민한 부분은 모성애. 소영이 형사(배두나)에게 "아이를 낙태하는 것과 낳고 난 뒤 버리는 것 중 뭐가 더 나쁘냐"고 따지는 대사였다. 이 부분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외적으로도 시선이 넓어졌다. 자신이 후원했던 보육원이 자동으로 떠오른 것. 아이 유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촬영하며 '그 보육원 아이들이 만일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소영을 연기하고 나니 또 엄마 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영은 단순히 '엄마'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 "브로커는, 이지은과 아이유의 성장일기"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을 외치던 소녀는, 어느새 국민가수가 됐다. '드림하이'의 깜찍한 소녀가, 올해 서른 살이 됐다. 그 30살에, 이지은은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브로커'와 소영을 통해,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다. 

"브로커를 찍으며 한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아, 그동안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내 삶만 살고 있었구나. 나만 힘든 줄 알았구나…. 제가 너무 갇혀만 산 것 같아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녀의 반성은 남달랐다.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 것. 칸에 가기 전, 미혼모협회 등에 2억 원을 기부했다. "이전에도 미혼모협회에 기부한 적은 있지만, 이번엔 '브로커'의 영향이었다"고 강조했다.

"첫 작품인데 큰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품이 의미하는 메시지도 가슴에 다가왔죠. 저를 믿어주신 만큼 보답하는 연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배우로서도 한 걸음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솔로로 오래 활동하다 보니 가끔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죠. 연기할 때 그 갈증을 해소해요. '브로커'는 마치 축구팀 같았습니다. 내 역할을 잘 해서 득점에 성공하자,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녀는 아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음악을 쓰고 있긴 하다. (음악도) 30대 첫 작품이라 욕심이 크다. 20대 시기와 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일복도 타고났다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못하는 건 더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감을 가지려고요. 30대의 이지은과 아이유는,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릴 겁니다."

<사진ㅣ칸(프랑스)=민경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