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3년, 대한민국은 가난했다.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었다. 

2.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우수한 인력들이 있었다. 

3.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4. 그러나 (일부 유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에 눌러 앉는 경우도 많았다. 

5. 그들에게 귀국은 곧, 병역이었다.

6. 1971년, 문화는 빈약했다. (전통문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7.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미국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최초의 일이었다. 

8. 그도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을 떠돌며 연주 생활을 이어갔다. 

9. 그도 그럴 것이, 귀국 연주회는 입영 팡파레나 다름없었다. 

10. 정작 한국에선 그의 바이올린 선율을 들을 수 없었다.

11. 1972년 뮌헨올림픽. 북한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를 땄다. 

12. 한국은 은메달 1개에 그쳤다. 재일동포 오승립이 땄다. (처음 출전한) 북한에 완패한 것.

13. 박정희 정부는 병역 면제를 당근으로 내세웠다. 체육요원의 시작이다.

14. 예술요원도 그렇게 탄생했다. 해외 콩쿠르 우승자에게 병역특혜를 준 것. 

15. 전문연구요원도 마찬가지. 산업 역군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제공했다.

16. 1981년,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됐다. 

17. 전두환 정권은 메달 욕심(?)을 부렸다. 대대적인 ‘당근’ 뿌리기에 나섰다.

18. 아시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청소년선수권 등을 병역특례 대회로 편입시켰다. 

19. 허재는 84년 아시아 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 우승자로, 체육요원이 됐다.

20. 전두환 정권의 병역 당근은 제대로 통했다. 

21. 한국은 서울아시안게임에서 224개의 메달을 땄다. (중국은 222개)

22. 1990년 노태우 정부는 편입대회를 대폭 축소했다. 

23. 올림픽 동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자로 한정지었다.

24. 2002년 한일월드컵. 김대중 대통령과 ‘주장’ 홍명보의 대화. 아니, 건의.

25. “선수들의 병역문제를 특별히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6. 김대중 정부는 월드컵 16강 진출자에게 병역특례의 혜택을 부여했다.

27.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차두리 등에게 해외 진출의 길이 열렸다.

28.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이번에는 야구선수들이 원했다.

29. 노무현 정부는 병역법을 다시 손봤다. WBC 4위 입상자도 포함시켰다.

30. 오승환, 최희섭, 김선우, 봉중근, 배영수, 김태균이 군 문제에서 해방됐다.

31.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선수’ 김기희가 후반 44분, 교체출전했다.

32. 44분 훈련병, 45분 이병, 46분 일병, 47분 상병, 48분 병장 제대. 

33. 2012년 병역법은, 1초라도 출전한 선수에게 자격이 주어졌다.

 34. 2017년, ‘카이스트’는 전문연구요원 39명 중 35명(90%)을 비공개로 뽑았다. 

 35. 울산과학기술원은 2019년 자교 박사 학위자 97명을 연구요원으로 비공개 채용했다.

 36. ‘뉴스타파’는 카이스트에서 복무하는 전문연구요원의 근무 실태를 보도했다. 

 37. 전문연구요원 상당수가 가짜 출근과 대리 출근을 상습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38. 2020년에는 근무시간에 마사지를 받는 전문연구요원이 등장했다. 

 39. 헬스장을 이용하는 연구원, 영화관을 들락거린 연구원 등도 있었다. 

 40.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1만 3,000명 이상이 전문연구 및 산업지원 요원으로 편입된다.

 41. 2016년 유명 국악인 이모 씨가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전주대사습놀이 심사위원이다.

 42. 전주대사습놀이는 심사 비리 파문 이후, 심사기준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43. 2018년, 동아국악콩쿠르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사사가 제자를 뽑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44. 심지어 그해, <병역특례 예술대 교수들을 조사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45. “전통음악대회의 전통은, 심사비리”라는 웃픈 농담까지 등장했다.

46.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치 (병무청) 자료를 확보했다.

47. 전문연구요원 1만 2,538명, 산업요원 5만 5,202명, 승선요원 4,783명 등 7만 2,523명이 대체복무를 했다. 

48. 그 기간(5년), 선발된 예술 체육요원은 258명. 전체 병역특례자의 0.36% 수준이다.

49. 전문연구요원 채용비리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 제도를 없애야 할까. 

50. UNIST 서병기 교수에 따르면, 중소기업 복무 전문요원 1인당 8억 7,000만 원 이상의 매출이 증대했다.

51. 국내음악대회 심사비리가 터졌다. 그래서 이 제도는 필요없을까.

52. 조성진이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들어 올렸을 때, 그의 신분은 예술요원이었다.

53. ‘축구선수’ 장현수가 봉사실적을 위조했다. 그래서 이 제도는 사라져야 할까.

54. 손흥민은 현재 살라(리버풀)를 1골차로 추격중이다. 한국 최초 EPL 골든부츠가 나올 수도 있다. 

55. 제도가 문제면, 보완하면 된다. 제도를 악용하면, 처벌하면 된다. 

56. ‘미꾸라지’ 때문에 저수지의 물을 뺄 수 없다.

57. 덧붙여. 

58.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 5년(2014~2018)간 병역미필 미귀국자는 775명이다. 710명(91.6%)은 기소유예 상태다. 

59. 2020년 병역의무 기피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만 190명. 이는 예술요원(133명)보다 많은 수치다. 

60. 병역기피 미귀국자 지역별 통계(2011년)에 따르면, 강남, 서초, 송파, 용인, 성남, 고양에 집중돼 있다. 병역기피 미귀국자 문제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적용되는 걸까.

61. 예술요원 확장을 논의하고 있다. 대중문화 종사자를 편입하자는 의제가 던져졌다.

62. 일부는, 방탄소년단을 위한 법이라고 반대한다. 그럴 수도 있다.

63. 그럼에도 불구, 예술요원의 범위를 대중문화 종사자로 확장할 필요는 있다.

64. BTS를 위한 법이, 또 다른 BTS를 만드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65. 병역법이 말하는 ‘절대가치’는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이다. 

66.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K문화다. 한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67. 병역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까. 아니, 그때그때 달랐다.

취재=구민지·정태윤기자 (Disp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