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덜컥, 겁부터 났다. 부담감이 밀려들었다.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언더커버는 생전 처음 해보는 장르다. 복수도 어려운데, 액션까지 해내야 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배우 한소희가 넷플릭스 '마이 네임'을 통해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원톱 주연으로서 극을 이끌어가기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느와르 퀸, 액션 퀸이라는 자랑스런 닉네임도 얻었다.

"늘 연기하며 스스로 한계를 느꼈는데, 지우를 통해 색다른 모습으로 극복해낸 것 같아 뿌듯합니다. '마이 네임'은 제게, 저도 몰랐던 또 다른 절 알게 해준 작품이에요."

다음은, 한소희가 직접 전하는 '마이 네임' 도전기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소희가, My name을 만났다"

지우는 처절한 인생을 살아가는 소녀다. 열일곱 나이로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친다. 복수를 위해 인생을 던졌다. 이름을 버리고, 칼과 총을 들었다. 범인을 직접 죽이기 위해서다.

한소희는 "평소 작품에 임할 때, 두려움 때문에 시작을 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제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액션 느와르라는 장르도, 지우라는 캐릭터도, 제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고 나가 작품을 마주해야 하는데…. 감히 제가 그러지 못할 정도였죠." 

그러나 욕심 나는 작품이기에, 지우를 만나야만 했다. "늘 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지우는 제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한계를 시험해보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어깨에는 가득 부담감을 얹었다. 무표정 안에 복수심을 감추는 일, 남자들과 직접 맞서 싸워 이기는 일,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며 복수하는 일을 모두 해내야 했으니까…. 

"저는 운동 신경도, 누굴 때려본 적도 없어요. 걱정과 부담이 컸죠. 게다가 지우라는 캐릭터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역할이었습니다.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 "소희를 벗고, 지우를 입는 법"

이제, 본격 준비에 돌입해야 할 차례. 우선 마인드부터 윤지우로 셋팅했다. 수많은 범죄 다큐멘터리와 느와르 영화를 감상했다. 지우를 이해하고,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지우는 자신의 감정을 말보다는 머리, 행동, 제스처로 표현하는 친구였어요. 저와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했죠. 뭔가에 집중하고 목표를 세우는 태도가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지우는 단 하나의 인생 목표(복수)를 오랜 시간 가져간다. 무모하고,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다"며 "처음과 끝의 감정이 동일하다는 특성이 있었다. 저 역시 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액션 스쿨에도 3달 간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액션을 하며 느낀 건, 움직이는 것에 비해 화면에 그렇게 큰 동작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연습만이 전부였다. 더 몸을 써야 했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몸에 (동작을) 익히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연습량을 계속 늘리고, 리허설에도 진심으로 임했죠. 특히 체육관 신에선 온갖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다 했어요. 하하." 

액션과 감정, 둘 중 더 고되었던 것은 무엇일까. "육체적 고통은 시간이 가면 사라진다. 마음이 힘든 게 정말 오래 가더라. 지우의 옷을 입어야 하는 저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지우는 숨 쉴 틈이 없는 캐릭터였어요. (스토리상) 조금 안정하려 하면 사건이 터졌거든요. 때문에 그런 스트레스를 좋은 에너지의 원천으로 바꿔 현장에서 활용하려 노력해야 했습니다." 

◆ "소희의 이름은, 지우였다"

그렇게 한소희는 '마이 네임'에 온몸으로 뛰어들었다. 지우 그 자체가 된 것. 우선 극 초반, 벌벌 떨며 죽은 아빠의 손에 들린 칼을 뺏는 장면. 한소희가 본능적으로 만들어낸 애드리브였다. 

"지우라면, 사랑하는 아빠를 잃은 딸이라면…. 일단 아빠의 손에서 (끔찍한) 칼을 빼앗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빼앗았고,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던지게 됐죠." 

6회 엔딩, 김상호(기호 역)와의 대면 신도 마찬가지. 한소희가 아닌, 지우의 마음으로 소름 돋는 신을 이끌어냈다. 지우의 슬픔과 분노를 브라운관 너머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소희는 "실은 전 대본을 통틀어 가장 걱정했던 신이었다. 대본엔 '차를 타고 간다' 정도의 상황 지문만 있었다"며 "지우가 진실을 마주할 때 어떤 기분일까 계속해서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촬영 전날 마음을 비웠어요. 그냥, 나오는 감정대로 하자고 다짐했죠. 감독님께선 뒷좌석에 아빠 편지를 녹음한 음성을 틀어주셨고요. 음…. 실은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정말 상처가 컸어요. 감정을 걷어내기 힘들었거든요."

안보현(필도 역)과의 갑작스런 베드 신도, 한소희라 납득 가능했다. 복잡미묘하면서도 공허한 눈빛으로 지우에 빙의했다. "내가 사람처럼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라고 자문했다.

"지우가 1~8회 동안 유일하게 사람처럼 보이는 신이었습니다. 지우 입장에서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건, 정말 이질적이지 않았을까요?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이해해 나갔어요." 

◆ "My name is 한소희"

한소희의 열정만큼, 반응은 역대급이다. 인생 캐릭터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언더커버 장르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재밌고, 손에 땀을 쥐게 하며, 몰입도 높은 작품이라는 것. 시즌2를 기대할 만하다.

그는 지우의 미래에 대해 "보통 사람처럼은 아니어도, 고립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호 선배님이 살아계시니 정의를 위해 싸우는 친구가 돼 있지 않을까"라고 예상해 기대감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배우 한소희의 미래를 물을 차례다. '마이 네임'으로 '예쁜 배우'에서 '(예쁜데)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올해의 눈부신 성과다. 그가 그리는 최종 목표가 있을까.

"외면도 내면도 예쁘게 봐주시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의미라 감사합니다. 더 원한다면, 한소희만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대체 불가한 배우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요." 

그래서 한소희는 여전히, '배우 한소희'라는 이름을 고민한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다만 제겐 그 부족함이 무기력으로 변질되기보단, 좀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제 몸과 마음을 버려가며, 주어진 것에 100% 집중해 잘 쌓아가려고 해요. 진심은 통한다는 마음으로요.

특히 한계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한계에 부딪히면 무너지기 쉽잖아요? 그러나 그 한계를 무너뜨리면 새 단계에 도달할 수 있어요. 앞으로 연기하며 수없이 제 한계를 마주할 텐데요. 그 모든 한계가,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