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지금, 안방극장은 뜨겁다. 첫 방송을 앞둔 문제작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MBC-TV '기황후'. 역사 왜곡 드라마라는 시선과 드라마는 허구일 뿐이라는 의견이 맞붙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분명, '기황후'는 낯선 드라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기황후의 삶을 조명한다. 기황후는 고려 말미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 갔다가 제 1황후가 되는 실존 인물이다. 장영철·정경순 작가가 새롭게 부활시켰고, 하지원이 그 옷을 입었다.
문제는 기황후를 향한 시각차다. 역사는 그를 악녀로 기억하는 반면 드라마는 철의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냉철한 판단과 뜨거운 열정으로 황후에 오른 인물이라는 것. 실제 기황후가 고려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다는 점을 생각하면, 왜곡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기황후'는 논란의 싹을 끊을 수 있을까. 첫 방송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짚었다.
◆ "장영철 작가+하지원=믿고보는 조합"
MBC의 하반기 야심작이다. 월화 드라마의 부진을 깰 만한 신호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최상의 라인업으로 꾸려졌다.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실력파들이 포진했다. 흥행성까지 겸비한 인물들로 내부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대본을 맡은 장영철·정경순 작가는 부부 사이다. 그 때문인지 시너지 효과가 남다르다. 함께 작업한 드라마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돈의 화신'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힘있는 대본과 뚜렷한 메시지가 특징. 이번에도 선굵은 사극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를 표현할 배우가 하지원이라는 사실은 '기황후'의 큰 자산이다. 하지원은 믿고 보는 배우로 손꼽히는 인물.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온전히 흡수, 대체불가의 매력을 보여왔다. '기황후'에서도 액션과 멜로를 넘나들며 특기를 100% 발휘할 전망이다.
'기황후' 측은 "수작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장영철·정경순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며 "여기에 자타공인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만남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자랑했다.
◆ "기황후는 철의 여인, 미화논란 없을까"
그럼에도 '기황후'를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캐릭터 자체가 역사적으로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 기황후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조국인 고려를 정벌하는 등 악행을 펼쳤고, 충혜왕은 강간 등 패륜 행위를 일삼았던 폭군이다.
하지만 '기황후' 측은 다르게 봤다. 기황후는 '대륙을 품은 철의 여인'으로, 충혜왕은 '고뇌하는 로맨티스트'로 설정했다. 역사가 기억하는 악행의 흔적은 담기지 않았다. 심지어 충혜왕의 방탕한 삶은 견제 세력을 속이려는 눈속임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명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눈에 보이는 논란을 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충혜왕의 경우 방송을 일주일 앞두고 가상인물 왕유로 급변경했다. 장경철 작가는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고려의 왕도 가상 인물로 대체하게 됐다"고 전했다.
기황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악행을 하기 전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 전부. 하지원이 "우리 드라마는 공녀에서 황후가 되기까지를 담는다"며 "황후가 된 후의 상황은 드라마에서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이다.
◆ "역사왜곡에 대한 두 시선, 우려와 기우"
이는 곧 역사 왜곡으로 번지고 있다. '기황후'를 통해 현재를 돌이켜 보게 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꿈꾸게 하겠다는 기획의도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문제적 인물들을 미화시키면서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
성신여대 사학과 오종록 교수는 "단순히 드라마에서 왜곡을 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드라마가 진행이 되며 극 중 캐릭터를 당연하게 받아 들이게 되는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제작진은 창작의 결과물로 봐달라고 맞섰다. '기황후'는 역사적 사실에 가상 이야기를 섞은 팩션(팩트+픽션) 드라마라는 것. 실존 인물과 배경을 삼고 있지만 핵심적인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장경철 작가는 "사료가 적어 많은 부분을 창작해야 했다. 실제로 드라마 70% 이상은 허구의 인물들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기황후의 이름 기승냥도 우리가 창작했다"며 "처음부터 가상 역사라는 점을 자막으로 공지할 것이다"이라고 주장했다.
◆ "기황후, 월화극 여왕될 수 있을까?"
방송을 앞둔 지금도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현재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작가와 배우에 대한 믿음으로 봐야 한다는 측과 문제의 소재가 크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의견이다.
'기황후' 측은 방송으로 평가해달라는 입장이다. 실제 방송으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장경철 작가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완성도 있는 대본과 높은 퀄리티로 시청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수준높은 드라마를 약속했다.
배우들 역시 역사와 드라마를 별개로 봐달라고 나섰다. 남자 주인공 주진모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를 찍을 바에는 다큐멘터리를 하지 왜 드라마를 하겠냐"며 "(논란이 되는)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와 배우들의 바람처럼, '기황후'에 대한 우려는 단지 기우에 그칠까. 그리고 기황후는 국내 사극에서 전후무후한 여인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황후로만 남게 될까. 이제 선택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게 됐다.
<사진=송효진기자, 사진제공=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