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강내리기자] 2008년 8월 KBS-1TV '뉴스9' 스튜디오. 조수빈 아나운서가 차분하게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 스크린 앞으로 자리를 옮기자, 허벅지 위까지 올라온 미니스커트가 화면에 잡혔다. 시쳇말로, 시청자들은 '멘붕'이 됐다.
5년 뒤인 2012년 7월 KBS-2TV '연예가 중계'. '안방마님' 박은영 아나운서가 진행자로 나섰다. 선택한 의상은 호피무늬 오프숄더 드레스. 시원하게 드러낸 쇄골과 가슴라인까지, 걸그룹 뺨치게 화끈한 노출이었다. 리모컨은 자연스럽게 '자동정지'됐다.
여자 아나운서들의 패션이 진화하고 있다. 몇년 전만해도 아나운서들은 주로 짧은 하의로 여성미를 어필했다. 하의실종 룩이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엔 더 과감해졌다. 시스루는 물론 클레비지도 시도한다. 한층 강렬해진 노출로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었다.
아나운서 패션의 진화를 시대별로 알아봤다. 그 배경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도 분석했다.
◆ 과거 - "미니스커트에도 화들짝"
기존에 아나운서를 대표하는 단어는 '단아'였다. 아나운서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정갈한 헤어와 노출없는 의상, 그리고 단정한 메이크업이 전부였다. 이는 아나운서의 신뢰성을 추구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조금씩 변화가 일었다. 신세대 아나운서들이 각자 패션에 조금씩 포인트를 주기 시작한 것. 이들이 선택한 건 일명 '하의실종룩'이었다. 상의는 기존의 긴팔 정장을 고수했지만, 하의는 미니 스커트나 핫팬츠로 각선미를 과시했다.
시작은 SBS 윤소영 아나운서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진행할 당시 흰색 핫팬츠로 과감한 시도에 나섰다. 박은경 아나운서 역시 블랙 핫팬츠를 입었고, 박선영·조수빈 아나운서는 흰색 초미니 스커트에 도전했다. 금기를 깨기 시작한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당시에는 신세대 아나운서의 사고방식과 기존 사회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충돌했다"며 "진행 시에는 주로 상반신을 잡기 때문에 상의는 기존 스타일로 단정하게 유지하되, 하의는 '하의실종' 패션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 현재 - "클레비지에서 시스루까지"
5년이 지난 지금. 아나운서들의 스타일은 더 과감해졌다. 튜브톱 트레스부터 홀터넥 상의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 가슴라인을 과감하게 노출하는 클레비지룩이나, 속살을 드러내는 시스루룩에도 도전했다.
실제로 KBS 장수연 아나운서는 최근 한 음악회에서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KBS박은영·이지애 아나운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각각 튜브톱과 홀터넥 드레스를 입었다. KBSN 최희 아나운서도 시스루로 섹시미를 드러냈다.
이런 노출 이유 중 하나는 아나운서의 활동 영역 확장에 있다. 뉴스·교양 뿐 아니라 스포츠·오디션·예능 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진행을 맡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특성과 분위기에 맞춰 소위 '융통성 있는' 노출패션을 시도하게 됐다.
동덕여자대학교 디자인 대학 김혜경 교수는 "아나운서는 포멀한 직업이다. 보도를 위해 의상도 단정한 스타일로 갖춰 입었다"라며 "하지만 최근 방송가 트렌드 자체가 화려해졌다. 아나운서의 옷 역시 규범이나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화려해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 시선 - "본분이냐, 개성이냐"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변화가 일었다. 과거 여자 아나운서들은 단정한 의상과, 이에 어울리는 품위있는 태도를 요구 받았다. 여자 아나운서를 향한 고정관념과 벽은 그만큼 높았다. 하지만 최근엔 스타일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프로그램과의 조화를 염두했다.
단, 의상 선택에 있어 몇가지 필수 주의사항은 요구되고 있다. 어떤 의상이든 티피오(T.P.O)에 맞게 선택해야 하는 것. 예능이나 행사 등에서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 맞춰 의상 색상이나 스타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뉴스 등 진중한 분위기가 필요한 프로그램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김혜경 교수는 "지금은 비주얼시대다. CNN 등 해외 아나운서들도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방송에 출연한다"면서도 "하지만 아나운서가 옷만으로 튀어서는 안된다. 뉴스에서는 본분을 지키고, 시상식 등 적절한 장소에서 개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