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액션을 위한 액션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죠."
배우 김남길은 누구나 인정하는 액션장인이다. 그런 그가 군 스나이퍼 출신 경찰의 옷을 입었다. 총을 들고, 불법 총기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그러나 그의 액션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간결한 동작만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학폭 피해 소년을 제압하는 신. 단 한 번의 깔끔한 타격으로 끝냈다.
"일반적으로 스나이퍼 출신이 누군가를 응징한다는 건, 먼치킨 캐릭터를 의미하죠. 그러나 '트리거'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먼치킨의 효율성이 아니었습니다."
김남길은 "(이도 캐릭터에는) 보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액션이 볼 거리인 드라마지만, 총과 액션은 최소의 방어 수단으로만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남길이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트리거'(감독 권오승)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치열했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 트리거의 고민들 | "총, 다루는 방식이 달랐다"
한국에 불법 총기들이 퍼진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가리지 않고, 총을 쏠 기회가 주어진다. 김남길은 사건을 해결하는 이도 역으로 열연한다. 군인 출신 경찰로서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김남길은 "(총기 범죄는) 다른 나라에선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들이다"며 "총기가 없는 우리 나라에서 만들었을 때 반응이 어떨지 고민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은 판타지라 치부하면 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실제로 총기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잖아요. 메시지적으로 적당할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선에서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총기를 배달받는 사람들의 캐릭터도 섬세히 고려했다. "자칫하면, 흔히 사회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만 총이 배달되는 것으로 보여질까봐 우려했다"고 했다.
"총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조직폭력배도 있고 전자발찌 찬 성범죄자도 있습니다. '취약 계층만 총을 가지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편견으로 보여지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묘사의 수위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어떤 사연에선, 절제가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폭 에피소드. 규진(박윤호 분)은 이도의 설득에 총을 내려놓는 캐릭터다. 총기를 난사하는 영동보다 비중있게 다뤄진다.
"학교 에피소드는 절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고등학교 시기는 정신적·신체적으로 완성이 돼 있지 않아요. 자칫 응징의 수단이 살생 밖에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까봐 고민했죠."
◆ 트리거의 메시지 | "사적 복수, 답이 아니다"
총을 소재로 했지만, 결국 사적 복수의 위험성을 경고한 드라마다. 김남길 역시 "사적 복수에 어떤 서사나 정당성을 부여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총을 잡은 사람들의 사연, 그들의 결정에 마음이 쓰였다. 김남길은 "촬영하면서도 저 역시 늘 혼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두 정체성이 충돌하더라고요. 제가 '트리거'를 보면서도, '아! 저거 쐈어야지'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드라마 전체적으로, 총을 넘어 사회 구조를 보도록 의도했다. 그는 "트리거는 총이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이해, 배려, 양보. 이런 기본적인 것을 놓아버린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지옥이 펼쳐질까요? '트리거'는 바로 그 지점을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그는 "트리거를 당긴 사람은, 결국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이도가 응징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 뒤는 전쟁이 됐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리거의 엔딩(이도와 아이가 손을 잡는 장면)을 좋아해요. 이도가 겪었던 고통, 받았던 사랑과 은혜들…. 그 중 긍정적인 감정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결말이죠."
◆ 트리거의 메신저 | "이도가 보여주는 길"
이도는 '트리거'의 메신저다. 따라서, 총기 액션을 지나치게 현란하게 펼쳐서는 안 됐다. 총을 들 때는, 총을 막을 때만이다. 자연히 액션도 깔끔해졌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총이 빌런을 응징하거나 복수를 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그러나 이도에게는 누군가의 트리거를 자제하기 위한 도구"라고 표현했다.
"이도는 분쟁 지역에서 아군을 지키려 살상을 해야만 했어요. 그러다 가치관이 바뀌었죠. '총을 들고 싶지 않다'고 말해요. '총을 들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고요."
김남길은 "배우로서 카타르시스도 욕심이 났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스나이퍼 시절 과거와 똑같이 한다면, 캐릭터를 무너지게 만들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총을 들 때만큼은 프로페셔널해야 했다. 김남길은 실제 특수부대 출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총기 조립을 익히고, 쏘는 방법과 자세를 만들어나갔다.
"전문가 분들께 총을 들었을 때의 성향, 총 드는 방법, 총 대하는 것 등을 배웠어요. 여기에 살짝 변화를 줘서,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갔죠. 이도가 편한 방식으로, 이도답게 총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액션장인의 디테일이 들어갔다. 드라마틱한 감정 표출 없이, 눈빛만으로 설득력을 더했다. 그는 "액션도 연기의 일환이다. 캐릭터에 감정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 김남길의 트리거 |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2018), '열혈사제'(2019), '열혈사제2'(2024), 그리고 '트리거'까지…. 최근 그의 히트작들은 불의와 범죄에 맞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메라 뒤의 김남길도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그는 지난 2015년부터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를 설립,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
그는 "꿈을 펼쳐보고 싶은데, 물질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친구들을 종합적으로 돕고 있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살고, 꿈을 위해 뭐든지 한다"고 전했다.
"제가 착한 사람이라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거죠. 노력을 통해 사람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걸 증명하고 싶어요."
김남길은 "제가 잘 해서라기보다, 봐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어떤 형태로든 돌려줘야 한다. 대중문화예술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남길의 연기 철학이다.
"시민단체 운영과 작품은 별개에요. 저는 작품 고를 때, 다 열려 있어요. 악인에 대한 갈증도 있죠. 단,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한가?'는 중요해요. 나쁜 얘기든 좋은 얘기든 사람들이 생각해볼 법한 얘기를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