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병길 인턴기자 = 대학가에 때아닌 족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는 족보를 옹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시험문제를 낸 교수를 탓하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기말고사 시험 기간에는 '00과목 족보 구합니다'라는 글이 쇄도했다가, 시험이 끝난 뒤에는 '족보 없는 사람은 너무 불리한 거 아니냐'는 글이 많은 공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족보'는 해당 과목의 기출문제나 요약본을 가리키는 말. 족보를 외우면 평소에 공부하지 않아도 쉽게 고득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험 기간만 되면 족보를 찾아 나섭니다.
학교를 졸업한 윤수호(30)씨도 선배에게 물려받은 족보를 이용해 책 한 장 읽지 않고 A+를 맞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윤씨는 "2년 뒤 동아리 후배에게 족보를 물려줬는데 후배 역시 공부하지 않고 고득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몇몇 학생이 효과를 보자 족보를 옹호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중 일부는 "족보도 실력"이라고 말합니다. 족보는 주로 학생회나 동아리와 같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는데, 인간관계를 꾸준히 쌓은 학생일수록 족보 구하기가 유리하다는 점에서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불만을 털어놓는 학생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익명의 사용자는 "족보 있는 사람이 하루만 공부하고도 A+ 맞는 건 너무 불평등하다"며 "학비 마련하느라 공부와 아르바이트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족보도 실력' 운운하면 속상하다"고 합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다질 시간도 없는 학생과 열심히 공부해 시험 보는 학생들은 족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부는 '족보 논쟁'이 취업난과 학점 경쟁으로 빚어진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대학생 황지연(24)씨는 "학교공부 말고 대외활동이랑 봉사활동까지 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데,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족보를 찾는 이유가 개인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족보에 무관심한 교수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교수가 매년 같은 문제를 내니까 족보가 유용해진다는 것입니다. 대학생 노영훈(25) 씨는 "족보가 암암리에 공유된다는 얘기를 듣고 교수한테 말했지만, 여전히 시험문제를 바꾸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노씨는 매 학기 시험문제를 바꾸지 않는 교수들이 대학교를 학점은행처럼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교수도 있습니다. 사립대학교의 한 교수는 "시험문제 형식은 (객관식을 포함하는) 문제은행식으로 내더라도 학기마다 문제를 대폭 바꾸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기출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족보는 실력이 될 수 없다"며 "취업 경쟁이 점점 심해지다 보니까 (학생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족보의 의미를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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