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의 청년 김명철 씨가 결혼 4달 전, 흔적도 없이 실종돼 버린 사건. SBS-TV '그것이 알고싶다'가 지난 2011년 2월 12일 방송한 <사라진 약혼자의 흔적> 편이다.
사라진 약혼자의 흔적 편 : http://www.dispatch.co.kr/367060
수사 결과, 피의자 조상필(가명)의 혐의가 드러났다. 김명철 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빈 인테리어 가게로 데려간 뒤, 피가 튈 만한 어떤 일을 저질렀다는 것.
단, 그의 죄명은 살인이 아니었다. 김명철 씨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조상필은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방송 6개월 뒤인 2011년 9월 17일. '그알' 팀은 <사라진 약혼자> 2편을 방송해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형 조재필·동생 조상필)가 있었다. 2011년 방송 당시, 34살의 두 남자. 이들은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
그런데 우리는 쌍둥이 동생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조상필이다. 그는 김명철 씨 실종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남자다.
그는 법정에서 시종일관 "죽이지는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알' 팀은 6개월 후, 쌍둥이 형제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2년 전, 어느 상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던 질식사고. 단순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라는 정황이 드러나며, 쌍둥이 형제를 포함한 4명의 남성이 구속된 것.
그리고, 이 사건은 김명철 씨의 실종 건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2009년 5월 22일, 그 시간으로 들어가보자.
새벽까지 사무실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알몸으로 쓰러져 있던 남자는 20대 후반의 박병준 씨. 그는 결국 사망한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고자에 따르면, 박 씨는 새벽 3시 경 샤워하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1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들어가보니, 박 씨는 사망한 상태였다고.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신고자와 조상필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하나같이 최근 박 씨가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 알콜과 수면제가 검출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직접적 사인이 아니었다. 진짜 사인은 바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박 씨가 사망한 장소는 가로 1.6m, 세로 2.2m 의 좁은 화장실. 사실 이런 밀폐된 장소에는 가스보일러 설치가 금지돼 있다.
그런데 이 장소에는 보일러가 설치돼 있었던 것.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박 씨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병준이가 원래 샤워도 잘 안하고 술도 잘 못먹는다. 술도 한 방울만 먹으면 얼굴이 빨개서 안 좋아했다. 술을 먹었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
박씨가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상습 복용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박 씨가 숨지기 6개월 전까지 근무했던 야식집. 사장은 가게에서 직원들 앞으로 들어준 보험금을 찾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병준이 초상 치를 돈도 없고, 동생에게 챙겨주면 되니 그걸 설계사에게 전화해 문의를 한 거다. 그런데 그 순간, 박병준 명의로 거액의 보험이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야식집 사장)
원래 박 씨가 매달 12만원 납부하던 보험금은 요금 미납으로 실효된 상태. 대신 총 16억 원의 보험이 들어져 있었다.
이에 따르면, 박 씨는 매달 158만 원 보험료를 납부했다. 실제 박 씨의 월급은 100만 원 남짓.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박 씨가 사망하고 3일 뒤, 보험사 콜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박병준이라 칭하며, 주민등록번호를 줄줄 외우고, 통장까지 갖고 있던 그.
보험사 직원은 전화를 건 인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무려 30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고.
"재해로 죽으면 얼마냐. 이걸 들면 어떻게 해서 얼마나 받을 수 있냐 이런 방법을 너무나 많이 문의했다." (보험사 직원)
알고보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상필이었다.
그로부터 7일 후, 누군가가 박 씨의 보험금 청구서를 접수했다. 보험 3건에 대한 17억 보상금 수령인은 조상필의 쌍둥이형 조재필이었다.
즉, 보험의 수익자는 조재필로, 유지 관리는 조상필이 맡아온 것.
눈에 띄는 게 또 있었다. 나중에 박병준 앞으로 든 추가 보험이다. 이 상품은 재해 사망에 대해서만 받을 수 있다. 그것도 무려 10억을….
쌍둥이 형제와 일당은 언젠가부터 주변에 돈을 빌리고 다녔다고 한다.
"자기네가 나올 보험이 큰 돈이 있다며, 사람들한테 돈을 빌리고 다녔다"
"조만간에 한 번 터뜨릴 거 있다고 농담 식으로 그래서, 뭐냐고 물으니 보험 뭐 그런게 있다고 했다."
쌍둥이 형제와 일당이, 가족도 아닌 남에게 150만 원 이상의 보험금을 대신 내줬던 이유. 바로 17억 원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보자. 이 사무실에 LP가스를 배달해준 기사를 만났다. 이 기사는 설치와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우리보다 기술자가 있다고, 가스통만 놓고 가라 했다. 그래서 그냥 간 것이다." (배달기사)
주문한 사람들은 조상필 형제였다.
"온수기 단다고 한 게 아니라, 가스렌지에 단다고 했다. 만일 온수기에 다는 거였으면 자격증 없으면 안된다. 그래서 안 해줬을 거다." (배달기사)
정리해보자. 박 씨의 보험 수익자는 조재필로 변경된다. 그로부터 10일 뒤 형제는 LP가스를 주문한다. 그 다음날, 순간 가스온수기를 구입한다.
게다가 환기구도 닫았다. 유일한 창구는 합판으로 덧대, 실리콘으로 막아놓았다. 이와 관련, 피의자들은 "겨울에 샤워하는데 찬바람이 들어와서 막은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가스 온수기를 해체했을 때다.
"정상적인 경우엔 안전 장치가 있다. 누가 인위적으로 끊은 거다" (전문가)
박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 원인. 바로 안전제어장치다. 온수기 오른쪽 아래 부분의 관이 절단돼 있었던 것.
전문가들은 제어관이 절단돼 점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거라 봤다. 그러자 조상필 일당이 휴대용 점화기로 불을 붙이고, 강제로 순간 온수기를 작동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찰 수사 중 조상필은 뭐라 말했을까. 그는 "보험금 관련, 박씨 가족들과 이미 얘기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박 씨의 동생이 작성한 위임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박 씨 가족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전 그런 거 쓴 적 없다. 그 사람들이 아버지 인감도장이 필요하대서 받아간 적은 있다. 그거는 형 몫으로 나올 돈이 있다고 해서 해준거지.." (박병준 동생)
박씨 동생이 입을 다문 이유는 뭘까.
"고모가 너무 무섭다고, 그냥 그 사람들하고 연관되지 말자고 한거다. 아버지도 제게 그냥 빨리 군대갔다 오라했다." (박병준 동생)
조상필 집에는 의심스런 서류가 더 있었다. 박병준 씨의 도장이 찍힌 여러장의 빈 차용증이다.
김명철 씨가 받았다는 차용증서와 똑같다. 조상필, 조재필 쌍둥이 형제. 그들은 왜 김명철과 박병준 이름으로 내용 없는 각서와 차용증을 만든걸까.
"나중에 누가 의심하고, 조사한다면 거기에 대한 증빙으로 범행 혐의를 벗어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지 위임장, 백지 차용증을 받아둔 것 같다." (표창원 교수)
경찰 조사에서 조상필은 명철 씨에게 돈을 건네줬다는 남자도 내세웠다. 이 남자는 누굴까? 거짓말 하면서 조상필의 알리바이를 꾸며준 사람은?
그는 알고보니, 박병준 씨 사망사건에도 연루돼 있었다.
박병준 씨가 죽기 전, 사무실에서 누군가 이런 내용을 찾아본다. <일산화탄소 중독>. 그리고 이 기록을 은밀히 지우려던 사람이 검거됐다. 바로 조상필의 친구 김병국이다.
그는 김명철 씨 사건에서도 여러차례 거짓 진술을 했던 인물이다.
김명철 씨 실종 이후, 조상필 차량으로 한강변 일대를 돌았을 때다. 김병국은 그 차량에도 동승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수면제다. 숨진 박 씨의 몸에서 수면제가 나왔다는 것. 쌍둥이 형제와 일당은 숨진 박씨가 수면제를 상습 복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면제 봉투와 구입 영수증이 나온 건, 조상필의 집이었다.
김명철 씨 실종 사건 때도 비슷했다.
얼마 전 공범이었던 최대상(최실장)이 잡혔다. 최대항에 따르면, 조상필은 재판 중에도 수면제에 대해 압력을 가했다고.
박 씨의 의문사, 김명철 씨의 실종. 두 사건은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타인의 증명, 사실을 증서로 받아두고, 그 사람이 수면제 등을 통해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든 뒤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포맷이다. 결코 이번 2사건이 이들이 저지른 첫 사건이 아닐 것이다." (표창원 교수)
형제에 관해 충격적인 소문도 들었다. 그들이 보험법 개정 전, 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바뀌기 전에 운전자 보험 들어놓고 (사람을) 밀었더라. 죽이려고 했는데 못죽인 것이다."
그로부터 4년 전, 실제로 조상필 차에 크게 다친 사람이 있었다. 한 70대 노인은 2006년 8월 9일 새벽 6시 30분께, 조상필의 차량에 치였다.
당시 조상필의 차는 소리도 없이 달려와, 갑자기 노인의 자전거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꼭 250일을 입원해야 했던 그 노인.
또 2명의 다른 할머니도 피해자다. 멀쩡히 달리던 차가 반대편 차선으로 돌진, 인도를 걷던 할머니 둘을 치어 버린 것. 당시 운전자는 4명의 일당 중 한 사람이었다.
이는 운전자 보험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
보험협회 직원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형사합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요 법규를 위반하며, 사망에 준하는 중대한 사고가 있어야 했다"고 과거 규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조상필은 어떤 이익을 누렸을까.
좀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93년, 16세 쌍둥이 형제가 동대문 상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스케이트 한 켤레를 훔치다 붙잡혀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이 바로 조상필 조재필 형제였다. 달아났던 형이 붙잡히자, 동생이 돌아와 품에서 칼을 꺼내 주인의 목을 찌른 것.
증거 인멸을 들킬 때마다 조상필의 반응은 하나였다. 자신이 전과가 있기에,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의심을 받는다는 것,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최대상이 자백해도 조상필은 흔들리지 않았다.
맨 처음, 조상필은 만난지 1시간 만에 명철 씨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멀쩡히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최대상의 자백으로 수면제로 업혀간 사실이 나왔을 때. 조상필은 또 다시 거짓말을 했다. 명철 씨가 오후 7시 30분경 떠났다는 것.
이어 휴대폰 문자 작성자도 조상필의 친구로 밝혀지자, 또 말을 바꿨다. "김명철은 그날 새벽 3~4시까지 제 가게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단, 1가지 주장만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죽이지는 않았다"고.
새 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 지금, 그는 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조상필 형제 일당은 박 씨의 49제를 지내고, 유골도 뿌려줬다. 마지막 선심이었을까, 아니면 완전범죄를 위한 작전이었을까.
<사진출처=SB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