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20년 넘게 배우를 하다 보니, 조금씩 안일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김지훈)
올해로 데뷔 25년 차. 어느덧 베테랑의 연차지만, 배우 김지훈은 자신의 연기를 다시 돌아봤다. 김혜수와 조여정, 그리고 '하찮은' 재홍을 만나면서다.
연차가 쌓였다고 배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을 되짚었다. 여전히 배우로서 채우고 성장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디스패치'가 지난 13일 김지훈을 만났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이하 '지금 불륜')의 재홍을 완성한 과정을 들었다.
◆ 재홍은, 어디에나 있다
'지금 불륜'은 블랙 코미디 드라마다. 인플루언서 부부와 이웃집 의사 부부가 감당할 수 없는 비밀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지훈은 무명배우이자 잘나가는 아내 경희(김혜수 분)의 남편 재홍을 연기했다.
김지훈은 그간 강렬한 악역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발레리나'에서는 마약 범죄자를, '악의 꽃'과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힘을 빼고, 평범하고 초라한 얼굴을 꺼내 들었다.
김지훈이 꼽은 재홍의 매력 역시 '하찮미'다. 겉으로는 밝고 능청스럽지만, 내면에는 배우로 인정받지 못한 열등감이 자리한다. 화려한 삶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괜찮은 척, 멋있는 척하면서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속에는 초라하고 하찮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재홍이 그런 부분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봤습니다."
재홍의 진짜 얼굴은 궁지에 몰릴수록 선명해진다. 잘못된 선택을 수습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꼬여간다. 김지훈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재홍의 조급함과 무력함을 현실감 있게 풀어냈다.
김지훈은 재홍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간으로 그리는 데 집중했다. 그는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지' 싶은, 피부로 와닿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배우를 배우다
김혜수와는 처음으로 깊은 호흡을 맞췄다. 극 중 부부인 만큼, 촬영 초반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배우로 살아가는 방식, 캐릭터에 대한 생각까지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부부의 호흡을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김혜수가 현장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김지훈은 "웬만한 신인 배우들보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불안해하고, 더 잘하고 싶어했다"며 "준비한 것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했다"고 떠올렸다.
그에게도 강한 자극이 됐다. "20년 넘게 배우를 하다 보니 조금씩 안일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며 "선배님을 보면서 '대선배도 저런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는데' 싶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조여정과의 재회는 또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신인 시절 이미 두 차례 부부로 호흡한 사이. 20년 만에 다시 연기 합을 맞추게 됐다. 김지훈은 한층 깊어진 조여정의 내공에 감탄했다.
좋은 배우들과 만난 만큼, 연기 욕심도 커졌다. 그는 "다들 현장에 오기 전부터 살벌하게 준비해왔다. 저 역시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고 싶었다"며 "대본에 없는 한두 마디나 리액션이 더해지면서 장면이 살아나는 순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장면에는 배우들 스스로도 만족했다. 김지훈은 "촬영 후 모니터를 보면서 배우들과 박수를 치기도 했다"며 "복잡한 상황과 감정이 절묘하게 완성됐다. 모두가 만족했던 작업이었다"고 떠올렸다.
◆ 결말 만족도는, 100%
'지금 불륜'은 이제 막 중반부를 지났지만, 이미 수많은 사건이 휘몰아쳤다. 제목 그대로 불륜만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비밀을 덮으려 할수록 더 큰 사건이 터지고, 인물들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김지훈은 "작품의 결말에 100% 만족한다"고 자신했다. "상황이 현실적으로 계속 꼬이면서 인물들을 곤란하게 만든다"며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개연성과 설득력을 유지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소재만으로 승부하는 작품도 아니다. 불륜과 뺑소니, 시체 유기 등 극단적인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현실적이다. 죄책감과 욕망, 이기심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민낯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인물들은 궁지에 몰리고, 자신을 감싸고 있던 가면도 하나씩 벗겨진다. 김지훈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추리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마 다 틀리실 것"이라고 웃었다.
"주인공들이 점점 밑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감춰왔던 욕망과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 각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봐 주세요. 재미와 공감,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다시 채울, 배우의 밑천
김지훈은 지나온 시간을 자주 되돌아보지는 않는다. 과거의 실패에 머물지도, 성취에 기대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자신에게 집중한다.
현재의 자신을 들여다보니,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김지훈은 "요즘 배우로서 밑천이 고갈되는 느낌이 든다"며 "배우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자양분을 쌓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털어놨다.
해답은 좋은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 그는 "양질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더 많이 찾아보고 다시 제 안을 채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드라마 '시고르아모르'다. 캠핑카에서 생활하며 채권을 추심하는 변호사 기호태 역을 맡았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변호사와는 다른 인물"이라며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지훈은 여전히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우려 한다. 익숙함에 기대기보다 배우고 또 다른 인물을 향해 나아간다. 그에게 25년은 완성의 숫자가 아니라, 다시 성장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사진제공=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