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혜진기자] 배우가 한 인물을 표현하려면, 보통 그 세계 안에 캐릭터를 녹이기 위해 노력한다. 인물이 튀지 않고 이야기에 스며들 수 있게 만든다.
남주혁은 그 반대로 갔다. 규율로 짜인 궁, 절제된 세계, 그 안에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를 세웠다. 겉돌고, 삐걱대고, 어긋나고, 불협하도록 설계했다.
'구천'은 귀(鬼)의 세계를 넘나들며 귀신을 베는 인물이다. 궁의 법도 앞에서도 제멋대로 걷고, 제멋대로 말한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 오만하고, 거침없다.
남주혁이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피폐한 인물을 그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극본 권소라·서재원, 연출 최정규)으로 수중 액션은 물론, 보이지 않는 귀매들과의 처절한 액션을 선보였다.
'디스패치'가 지난 21일 남주혁을 만났다. 그가 구천을 세워나간 과정, '동궁'에 쏟아부은 사투에 대해 들었다.
"군대에서 꿈꾸고 상상했던 것을 120% 발휘했다고 생각해요. 구천은 제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이었죠. 모든 걸 쏟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남주혁)

◆ 외로움에서 출발
남주혁은 군대에서 '동궁' 대본을 받았다. 귀의 세계가 주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상상만 해도 그 세계가 너무 화려했다.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구천'에게도 빠르게 매료됐다. "궁과 정말 맞지 않는 캐릭터였다. 어떻게 해야 규율이 있는 궁에서 신선함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구천은 귀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악귀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남주혁은 구천의 뿌리를 외로움에 두고, 감정들을 파생시켰다.
귀의 세계로 넘어갈 때는 화면의 색감과 공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귀의 세계에 있을 때 더 구천이답게 표현했다"며 "그 안에서 외로움에서 출발한, 완성된 구천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일 많이 고민한 지점은 '불협'이었다. "구천은 혼자만의 고독한 세계에 있던 아이니까 어떤 인물과도 호흡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럼 언제 가장 자유로울지 생각해 봤는데, 반대로 남들이 봤을 때 틀린 모습을 하고 다녀도 되겠더라고요. 그게 구천의 자유로움이라 봤어요. 그래서 궁 안의 사람들과 어떻게 불협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했죠."
말투부터 걸음걸이, 눈빛까지 절에서 끌려온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만약 전통 사극 말투를 썼다면, 지금의 구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 물과의 사투
구천의 내적 뿌리를 만든 후, 외형을 다듬어갔다. 대부분이 액션 씬이었기 때문에, 남주혁은 촬영 중에도 액션스쿨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들에 대비해,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집에서도 홀로 연습, 또 연습이었다. "액션스쿨에서 장난감 칼을 받아와서 집에서 동선을 계속 연습했다"며 "액션에서는 발의 움직임이 중요해서 기본 스텝부터 다졌다"고 설명했다.
공격이 아닌, 방어 액션으로 접근했다. 액션에 간절함과 절박함을 녹인 것. "귀신들을 좋은 곳으로 잘 보내드리자는 마음이 컸다. 멋을 빼고, 모두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후반부에 타살 감흥 할아비, 세자와의 액션은 하이라이트이자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씬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가장 중요한 2개의 액션 시퀀스를 연달아 찍어야 했다.
또 하나의 산은 '물'이었다. 귀의 세계로 넘어가는 매개체가 물이다. 남주혁은 어릴 적부터 수영을 배웠다. 금메달도 땄다. 하지만 수중 촬영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제 어린 시절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웃음) 정말 사방이 물이었고, 그 안에서 구천이가 귀의 세계로 가는 변환점을 표현해야 해서 겁이 나더라고요. '아, 또 들어가야 해?' 싶으면서 진짜 구천의 마음이 됐던 것 같아요."
수중 세트의 깊이는 6m 정도. 배우가 3~4m까지 직접 내려가야 했다. 수중 세트, 연못가, 항아리, 우물 등 물이 있는 곳에는 다 들어갔다.
당시 물 트라우마도 생겼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잊게 할 만큼,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구천이 귀의 세계로 처음 들어가는 장면은 '동궁'의 시작점이자, 명암이 달라지는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 보이지 않는 것과의 사투
귀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실제로 보이지 않기도 했다. CG 후반작업이 대부분이라, 현장에서 연기할 때는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다.
남주혁은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무비컷'(게임 중간에 나오는 영화 연출 장면)이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다 보니까 귀의 세계라는 공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술적인 완성도가 더해졌다. "별감 귀신과의 액션 씬, 13궁녀와의 액션 씬 등 CG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세트들이 구성되어 있었다"며 "덕분에 빠르게 귀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특히 '꺼먹살이'는 '동궁'의 무거운 분위기를 무장 해제시켜주는 캐릭터다.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꺼먹살이 역시 CG. 남주혁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두고 연기해야 했다.
그는 "꺼먹살이가 잘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고 웃었다. "연기할 때 꺼먹살이 모형은 있었다. 하지만 슛 들어갈 때는 그 모형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없음에도 공존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제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꺼먹살이 행동도 달라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꺼먹살이가 뱀에 먹히고 있는 씬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모든 액션은 제가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 같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끌어안고 뒹굴기도 하고요. 감독님과 서로 고민해서 만들어낸 거예요."

◆ 허투루 하지 않는 배우
구천은 양기를 뺏겨 후반부로 갈수록 피폐해진다. 실제로 남주혁은 7kg가량을 감량했다. "궁에 처음 끌려갈 때는 포동포동한데, 갈수록 피골이 상접해가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생함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기만 했다면, 제가 겪은 힘듦과 고생은 고생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며 "좋은 장면을 만드는 데 거름이 됐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남주혁은 '동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더했다. 화려한 액션은 물론, 오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구천을 선보였다. 입체적인 얼굴을 완성했다.
그는 "시청자분들이 (이번 작품을 보시고) '그래도 남주혁이 허투루 하는 배우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연기에 대해서는 더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예전에는 캐릭터를 스스로 배제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더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서) 더 놀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직 만족을 모른다. "제 자신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면서도 "저의 부족함이 결국 저를 성장시킬 거라 생각한다. 배우로서 더 좋은 작품 보여드리고 싶고, 그러려면 어떻게 더 성장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전했다.
"배우는 매번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늘 똑같은 마음으로 작품에 임할 것 같습니다.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