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삼겹살을 먹으러 갔는데 저만 고기 한 점을 덜 주시더라고요."
첫 악역이지만, 천직 같았다. 현실에서조차 시청자들의 미움을 살 만큼 존재감이 또렷했다. 인터뷰 내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데, '요한'의 순수악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연기를 보기 전에는 분명 선입견이 있었다. 선한 얼굴에 작은 체구. 전형적인 빌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더 강렬했다. 편견이 깨지는 순간, 그의 악역은 더욱 선명해졌다.
어색함이 불편함으로 뒤바뀌고, 불편함은 광기로 이어졌다. 아이같은 순수악으로 새로운 빌런을 완성했다. 매회 "눈깔이 돌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악역은 처음 도전해 보는데, 많은 분이 좋게 봐주셔서 행복합니다. 제안받았을 때도 재밌었어요.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었거든요. 연기도 즐기면서 했죠."
'디스패치'가 최근 도경수를 만났다. 디즈니+ '조각도시'를 통해 보여준 그의 새로운 조각을 확인했다.

◆ "첫 악역, 즐겼다"
도경수는 '조각도시'에서 빌런 요한을 맡았다. 요한은 겉으로는 조각가다. 그러나 뒤에선 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조작하는 사이코패스다.
첫 악역이다. 그는 "그 전에는 사연 있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악역과 상반된 역할이 많이 들어왔는데, 악역을 제안받은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악역으로 쉽사리 떠올리기 힘든 이미지이지만, 그 의외성을 파고들었다. 그는 "전형적이지 않은 악역을 그리고 싶었다. 저를 캐스팅하신 것도 그런 의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담보다는 즐거움이 컸다. "겉모습만 보면 빌런이라는 걸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다. 대사도 오히려 악역처럼 느껴지지 않게 했다. '어린 아이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감정이 제일 무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요한의 악이 더 부각되길 바랐죠."

◆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요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린 시절, 유모가 자신을 떠날까봐 일부러 눈에 수은을 부어 눈을 멀게 하고, 타인의 인생을 게임처럼 조작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도경수도 공감은 포기했다. 대신 상상으로 채워넣었다. 그는 요한을 참고한 자료로 다큐멘터리 '고양이는 거드리지 마라'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범인이 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올리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걸 지켜보며 내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만족감을 느껴요. 이는 결국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요한이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천적 사이코패스. 몰입 보다는 상상하면서 만들어나갔습니다."
외적인 이미지도 기괴함을 추가했다. 요한의 언뜻 보면 평범하지만, 짧은 파마머리는 4시간 이상이 걸린 작업이었다. 자세히 보면 삐죽삐죽한 텍스처가 느껴진다.
도경수는 "탈색을 해서 머릿결을 망가뜨린 뒤, 전동 드릴에 파마 솔을 끼워 하나하 꼬았다. 그걸 다시 검은색으로 덮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애드리브 한 스푼
요한의 악행이 제대로 살아난 건, 믿고 맡기는 현장 덕분이었다. 6회 도주하는 태중(지창욱 분)을 향해 관제탑에서 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모두 애드리브였다.
주어진 건 상황뿐이었다. 일례로 차 뒤에 숨는 태중을 향해 "괜찮아요,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등 대사부터 표정, 감정의 정도까지 즉흥적으로 완성했다.
그는 "심지어 지창욱 선배와 따로 촬영해서 어려웠다. 최대한 상황에 충실하려 했다"며 "요한에게 태중은 개미일뿐이다. 그런데 좀 기어오르는 개미라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절친 이광수(도경 역)와의 연기합도 빛났다. 그는 "도경이 요한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요한의 심기를 긁는 신이 있다. 그러면서 초콜릿을 막 던지는데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었다"고 떠올렸다.
"광수형이 요한을 열받게 하려고 애드리브로 초콜릿을 던진 거죠. 바닥으로 던지긴 했는데, 튕겨서 저한테 오더라고요. 확실히 짜증이 올라오면서 연기에 큰 도움을 받았죠."

◆ 도경수의 재발견
도경수의 재발견이다. 기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배우로서 새로운 조각 하나를 더했다. "눈깔이 돌았다"는 극찬에 대해 묻자, 그는 "눈이 작은 편이 아니니까 감정표현을 할 때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눈이 돌진 않았다"며 웃었다.
"스태프분들도 저를 요한이를 보듯 보시더군요. 식당에서도 고기를 구워주시다가 저만 한 점 덜 준 적도 있고요. 현실에서도 요한이처럼 봐주셔서 뿌듯했죠."
물론 아쉬움도 있다. 그는 "요한이가 너무 차분했나 싶기도 하다. 대사가 긴 신에선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입체적인 느낌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들이 걸린다"고 털어놨다.
확실한 건, 그는 이 역할을 120% 즐겼다는 것. 도경수는 "살면서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경험은 흔치 않다. 요한이를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의 높이까지 올려본 것 같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있었다"고 떠올렸다.
"작품에 이입해서 봐주시고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악역은 조금 나중에 할 거고요, 요한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내년 초에는 엑소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도경수는 "2018년 이후로 단체는 처음이다. 최근에 안 추던 춤을 추고 있는데 재밌다. 어제 큰 촬영도 끝냈다. 에너지 있는 무대로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