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아진기자] "태풍 같은 한 해였죠."
올해 이준호의 시간은 '강태풍'(이준호 분)과 놀랄 만큼 닮았다. 기획사를 세우며 대표의 무게를 알았다. 가족의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행복의 가치도 되새겼다.
수많은 공통점은 곧장 몰입으로 이어졌다. 이준호는 연기가 아닌 공감을 했다. 강태풍처럼 생각했고,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캐릭터에 깊이 빠져든 만큼, 시청자들의 마음도 휩쓸렸다.
진심이 담긴 연기는 세대 간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IMF 시절을 겪어본 기성세대부터 그렇지 못한 요즘 세대까지 매료시켰다. 모두가 강태풍과 그가 살아낸 1997년 만의 낭만에 열광했다.
'디스패치'가 최근 배우 이준호를 만났다. '태풍상사'를 향한 치열했던 노력을 들었다.
◆ IMF라는 태풍
이준호는 스스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항상 느낀다"고 했다. '태풍상사'를 선택하게 된 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IMF 시대를 한 번쯤 풀어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1화 엔딩 장면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보통 1화 마지막에 해당 드라마가 가고 싶은 방향이 드러난다. 그만큼 공감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이어 "강태풍이 아버지 강진영 사장(성동일 분)의 죽음과 국가 부도 발표 소식을 동시에 듣는 엔딩이 너무 인상 깊었다. 이 신을 정말 잘 소화해 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1997년도에 초등학생이었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부모님 모두 경제 활동에 뛰어들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는 것뿐. 그래서 부모님께 자세한 시대적 정서를 배웠다.
"모두 처음 겪은 일에 어찌할 줄 몰라 하면서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정이 많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고도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 정서를 (연기적으로도) 표현해 내리라 다짐했죠."
스타일링 고증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쿨'의 이재훈, 드라마 '미스터 큐'의 김민종 등 연예인을 꿈꾸며 동경했던 스타들을 오마주했다. "의상도 당시 활동하셨던 분들의 시안을 찾아봤다"고 덧붙였다.
◆ 태풍 속으로
'태풍상사'는 강태풍이 이끄는 회사다. 드라마 역시 이준호가 중심을 잡아야 했다. 그는 국민 아들, 사장, 남친 모두를 아우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캐릭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강태풍은 굉장히 솔직하다"며 "앞뒤가 다르지 않은 성격이라 더 믿음이 간다고 봤다. 감정 표현을 과감하게 하려고 했다"고 짚었다.
이준호는 장면에 따라 각양각색의 분노를 터트렸다. 사이다를 선사하기도, 안타까움이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분노 연기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다 같은 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세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법을 연습했죠. 하지만 막상 슛 들어가면 태풍이가 처한 상황에 완전히 몰입되더라고요. 결국 계산보다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연기했습니다."
직업 탐구도 철저히 했다. 예를 들어, 슈박 신발 공장에서 구두 밑창에 새겨진 '최고의 품질'이라는 문구. 그가 찾아낸 1980년대 한 신발 브랜드의 실제 마케팅 방식이었다.
그는 "실제 태풍이가 된 것처럼 과거 자료들을 계속해서 찾아봤다. 그리고 찾은 영상이나 사진을 제작진에게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고 회상했다.
◆ 인간적인 리더
이준호 본인이 가장 만족한 연기는 13화에 있었다. 해당 장면에서 강태풍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홀로 소주잔을 기울인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터트린다.
"사실 우는 건 대본에 없었어요. 그런데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강태풍의 아버지가 제 아버지처럼 느껴졌어요. 아버지도 이런 마음으로 소주를 마셨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강태풍이 대표로 거듭나듯이, 이준호도 올해 1인 기획사로 새출발을 알렸다. 작품을 통해 배운 사업 스킬은 없을까. 그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답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저의 가장 큰 가치관이기도 해요. 제 배우 데뷔작이 영화 '감시자들'이었어요. 당시 선배님들이 신인이었던 저조차도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거든요. 그때의 감사함과 배려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 배움은 내리사랑으로 이어졌다. 이준호는 "김민하(오미선 역)에게도 '내가 이 부분은 따라갈 테니, 너 편한 대로 연기해도 된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먼저였던 현장. 그것이 '태풍상사'의 원동력이었다. 이준호는 "모든 배우가 서로를 배려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 믿고 보는 배우
이준호의 전역 후 성적표는 3연타석 홈런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 '태풍상사'까지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그는 "많은 분이 봐주는 게 좋다.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비결은 마음가짐의 변화에 있었다. "군 복무 전에는 악착같은 열망이 있었다면, 지금은 여유를 좀 더 가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연기도 한층 유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PM을 거쳐, 배우로 확연히 자리 잡은 지금. 그의 시선은 대본 너머, 제작 환경까지 향해 있었다. 숏폼과 OTT의 짧은 호흡이 주류가 됐지만, 그는 배우로서 여전히 긴 호흡의 미덕을 고민하고 있었다.
"저는 장편 드라마가 좋아요. (드라마 자체가) 한 주를 기대하게 만드는 힐링 포인트가 돼줄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여태껏 16부작 이상의 드라마만 선택하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장편 드라마가 많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태풍상사'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이준호는 "나를 한 꺼풀 가볍게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강태풍의 솔직한 성격 덕분에 계산 없이 오롯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는 것.
"앞으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싶어요. 장르를 불문하고 '이준호가 나오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궁금증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사진제공=오쓰리컬렉티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