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과 영원, 별과의 약속을 지킨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마침표
'이 이야기는 다섯 소년과 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19년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꿈의 장'을 펼치며 등장했을 때 부제는 '별(Star)'이었다. 독특한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던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이후 '어느 날')에 관심이 쏠렸던 가운데, 흥미로운 신인 그룹의 등장을 지켜보던 팬들은 조용히 팀의 서사와 지향을 안내한 길잡이 곡 '별의 낮잠'의 이야기를 접하고 난 후 특별한 관계로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별과의 약속을 잊어 어둠에 빠진 세계 속, 머리에서 뿔이 자라고 날개가 돋치며 양쪽 눈 색깔이 달라지는 성장통에 혼란스러워하던 소년들은 방황 끝에 서로를 끌어안았다. 수없이 흔들리고 부딪치며 꿈을 잊어버리더라도 찬란한 빛만큼은 절대 잊지 않게. 영원을 약속하며 내일을 함께 그려나가게.
'별의 장: 투게더'(이하 '투게더')는 선명한 궤도를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서사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난해 '미니소드 3: 투모로우(minisode3: TOMORROW)'를 통해 예고한 한 시대의 끝은 황홀한 안식처의 '별의 장: 생츄어리'를 거쳐 2년만의 정규작으로 분명해진다. 앨범을 소개하는 콘셉트 트레일러 필름과 타이틀곡 '뷰티풀 스트레인저(Beautiful Stranger)'의 뮤직비디오에 촘촘하게 숨겨둔 지난 7년여 간의 흔적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계관이 단순한 홍보 수단이나 일회성 기획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모두가 '나'를 조명하는 가운데 '너'를 이야기하며 끝없이 소통하고자 했던 그룹은 혼돈에 휩쓸리면서도 현실과 부딪치며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빛나는 유년기의 약속을 절대 깨지지 않을 기억의 유리병에 담아 밤하늘에 올려보낸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섬세한 음악과 이야기로 함께한 성장의 경험은 케이팝으로 그려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의 주인공이 중년의 위치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유년기로부터 사춘기, 사춘기로부터 성인의 문턱을 밟아나가는 성장 서사를 실시간으로 밟아나갔다. 머리에 돋아난 뿔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자각하고 자아를 구분하기 시작하며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자라나는 10대의 시작을 알렸다. 좌충우돌하는 와중 근거 없는 확신으로 부딪치며 느끼는 해방감과 기쁨은 마법과 같은 순간으로 풀어냈다.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처럼 낭만적이다가도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의 음울한 고독까지 광대했다.
장년층이 도용하는 청춘, 아이돌 팝의 전형 가운데 보이그룹의 데뷔를 장식하는 용도의 청춘이 아니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세계가 길고 긴 노래 제목에서, '피터 팬'과 '어린 왕자' 등 유명한 동화의 요소를 곳곳에 적용한 비주얼 요소에서 은유 되었다. 모든 10대가 품고 있는 불안과 고민, 그 깊이 잠들어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갓 성인이 되어 폭발한 '혼돈의 장'과 '이름의 장'으로 무한히 뻗어나갔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미니소드3: 투모로우'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서사가 완결되었다는 인상을 짙게 받았다. 성장통을 마친 청년들의 깨달음과 증명의 의지로 가득했던 3집 '이름의 장: 프리폴(FREEFALL)'의 방향을 돌려, 잊고 있던 우정과 영원의 이야기로 회귀한 작품인 까닭이었다. 각 멤버들을 상징하는 모스부호가 노래 제목에 등장했고,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격언을 실천하며 찬란하게 빛났던 '내일에서 기다릴게'와 '데자뷰(DejaVu)'가 작별의 순간을 암시했다. 벅차오르는 신스 록 '미라클(Miracle)'과 멤버들의 유닛곡으로 채워진 완성도도 상당했다. 주 서사에서 길을 틀어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미니소드' 시리즈라 해도 심상치 않은 구원의 약속이었다.
이번 정규 4집의 의의는 결말 그 자체에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좋은 출발만큼이나 도착도 중요하다. '미니소드'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던 서사가 '별의 낮잠'의 약속을 다시 가져와 마침내 다시 만난 멤버들의 '별의 장'으로 펼쳐졌다. 한 장을 통으로 할애할 만큼 굳건한 의지다. 재회의 기쁨, 확신의 사랑, 성장을 함께한 동료와의 우정 등 긍정의 의지로 가득 채운 지난해 EP는 제목 그대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팬들의 '안식처(생추어리)'였다.
청량한 사랑 노래의 '오버 더 문'과 함께 한결 가벼웠던 전작과 반대로 '투게더'의 트레일러 필름은 쏟아지는 유성우로부터 인간을 통제하려 드는 특수부대가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다. 아련한 추억처럼 등장하는 데뷔 앨범 속 어린 시절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소년들은 그들이 지나온 숱한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갈등하고 대립한다. 별과의 약속을 잊어버린 아이들에게 내일과 영원은 없다.. 이윽고 특수부대가 들이닥치고,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처럼 하늘로 떠오른 수빈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은 유년기에 품었던 잠재력을 하나둘 깨우며 서로를 찾는다. 태현이 단서를 발견하고, 성장의 고통으로 한쪽 뿔을 잘라버렸던 연준은 남은 머리의 뿔을 꺾어내어 그들을 가로막는 암흑의 막을 베어낸다. 범규가 치유하여 돋아난 날개로 날아오르는 휴닝카이와 함께 멤버들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별의 낮잠'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벅찬 밴드 풍의 '별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트레일러를 이어받는 타이틀 '뷰티풀 스트레인저'가 완연한 백조의 노래를 매듭짓는다. 감시받고 통제받는 사회 속, 얼마 남지 않은 초읽기 가운데 멤버들은 인공의 불빛 아래서 메말라가고 눈물 흘린다. '데자뷰'를 닮은 트랩 비트 위에서 애절한 의지를 가득 실어 노래하는 멤버들은 '주문이 풀린 세계 속, 우리는 아름다운 이방인'이라는 가사와 함께 이름을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불러줘' ('데자뷰'), '속삭여줘 나의 이름을'('오버 더 문')이라 노래하던 소년들이 '너의 이름을 불러'라며 구원을 약속한다. 경력에서 반복하여 활용한 '미지와의 조우'가 타인, 다른 개념,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임을, 그리고 서로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강한 뜻의 노래다. '거울 속에서 나를 멍하니 보는 넌 내가 아냐'라던 '어느날'의 소년들이 이만큼 성장했다.
주제 의식에 맞춰 '투게더'는 그룹을 오래 따라온 팬들을 향한 헌사로 꾸려졌다. 정규작임에도 불구하고 '업사이드 다운 키스(Upside Down Kiss)'와 타이틀, '별의 노래'를 제외하면 모든 곡이 멤버들의 솔로 곡이다. 단체곡보다 개별 곡을 선택한 결정이 스완 송의 취지와는 일견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다. 진중하되 무겁지 않고, 절박하지만 비관적이지 않은 음악이 각 멤버에게 걸맞은 방향을 수식하며 전체 작품 단위의 통일성도 해치지 않음과 동시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 요소를 적용하고 있다. BTS가 '화양연화' 시리즈와 '윙스(WINGS)'로 남긴 궤적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가 '별의 장'과 '투게더'로 충실히 따라간다.
영국 로커 영블러드가 참여한 연준의 솔로곡 '고스트 걸(Ghost Girl)'은 '티니투스(Tinnitus)'가 떠오르는 리듬감 위 거친 보컬로 '업사이드 다운 키스'의 치명적인 감각을 연장한다. 그룹의 록 넘버를 연상케 하는 인상은 범규의 '테이크 마이 하프(Take My Half)'와 수빈의 '선데이 드라이버(Sunday Driver)로도 이어진다. 태현의 섬세한 가창이 인상적인 '버드 오브 나이트(Bird of Night)'에서는 '안티 로맨틱(Anti-Romantic)'이 겹치기도 한다. 독특한 경우는 휴닝카이다. 힙합 기반의 차분한 알앤비를 시도한 '댄스 윗 유(Dance With You)'가 새롭다. 뒤늦게 보컬 역량이 주목받은 멤버이나, 그 잠재력이 훨씬 무궁무진함을 짐작할 수 있는 곡이다.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끝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끔 했다.
'케이팝에서 세계관이 여전히 유효한가요?'. 세계관 없는 그룹은 존재할 수 없고, 활동하더라도 아티스트와 팬의 일방적인 관계를 넘어 이입하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한다는 대답에도 여전히 '이지 리스닝' 유행 이후 회의는 깊어졌다. 장대한 서사, 거대한 메시지를 품고 등장한 그룹도 이제는 콘셉트 대신 보다 유연한 행보를 보인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달랐다. 이제 누가 그런 걸 신경 쓰냐는 냉소에도 그룹은 손길이 닿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노래와 활동을 연결 지었다. 약간의 일탈이라 할 수 있는 '미니소드'를 통해 개념을 확장하면, 이윽고 다른 흥미로운 세계가 등장했다. 단순 기획을 넘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소년들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겨지게끔 편안하게 콘텐츠를 가공하여 적용하고, 팬들에게도 부담 없는 즐길 거리 속 깊은 울림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재계약을 논의하는 '7년 차'에 맞추어 '별의 장'을 내놓은 사실도 돌아보면 의미심장하다.
'뷰티풀 스트레인저'의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 모든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소년들은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빛 공해와 사라진 믿음으로 캄캄한 밤하늘에 자신을 감춘 별을 쉼 없이 쫓았다. 어린 시절 별을 보며 빌었던 소원과 꿈을 향한 다짐을 잊지 않았다. 여전히 곁에는 친구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칠흑 같은 밤이 와도 두렵지 않다. 우리의 약속을 잊지 않는 한 내일은 반드시 올 테고, 함께하기에 영원할 테니.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 zener1218@gmail.com
<사진출처=빅히트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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