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수연기자] "저도 아직 성장 중이란 것을 깨닫게 된 작품입니다." (이봉련)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하 '언슬전')은 1년차 산부인과 레지던트들의 이야기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자라나는 청춘의 성장통을 그렸다.
배우 이봉련도, '언슬전'처럼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 20년 차 프로 배우지만, 연기는 늘 어렵다는 것. 그는 "현장을 생각하면 항상 떨린다. 어떤 일이 있을까 걱정한다"고 밝혔다.
“사실 '나는 이제 다 컸다' 싶은 생각이 들 나이잖아요. 항상 위에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덧 제가 현장에서 선배가 돼 버렸어요. '언슬전'을 촬영하며 아직 덜 큰 나를 발견하게 됐죠."
그가 '언슬전'에서 맡은 서정민은 냉철한 판단력으로 현장을 이끈다. 공과 사도 확실하다. 최근 '디스패치'가 만난 이봉련은 훨씬 인간미 넘쳤고, 겸손했다. 이봉련의 연기 고민을 들어봤다.
◆ 배우의 길, 20년
이봉련의 데뷔작은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2004)다. 이후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했다. 22편의 영화, 15편의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특징은,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항상 새롭다는 것. 그도 그럴 게, 이봉련은 역할이 작아도 개의치 않았다. '택시운전사'(2017), '버닝'(2018), '암수살인'(2018), '엑시트'(2019)…. 전부 그의 참여작이다.
그 중에서도 이봉련의 존재감을 강렬히 각인시킨 작품은, '갯마을 차차차'(2021)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이봉련은 "매체 연기만 줄 수 있는 쾌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수나 잘못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복기하는 괴로움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작품이 잘 완성돼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봉련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엇일까. "늘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을 항상 대표작으로 생각한다. 현재는 '언슬전'이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감사한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 '언슬전', 짜릿한 합격의 순간
이봉련은 '언슬전'을 위해 오디션을 자청했다. 이봉련이 지원한 역은 율제병원 산부인과 교수 서정민. 레지던트들의 롤모델이자,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귀할멈 같은 존재였다.
그는 "평소 '슬의생' 시리즈의 팬이었다. 배우라면, 누구나 이 세계관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며 "너무 설레서 대본도 바로 못 읽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중 그는 짜릿했던 오디션 합격의 순간을 회상했다. 눈이 급격히 반짝였다. "그냥 난리가 났었다. 안 가던 식당도 갈 정도로, 너무 기분 좋았다. 합격 소식을 듣고, 온 몸이 뜨거워졌다"고 미소 지었다.
물론, 평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오디션을) 안 가고 싶어지는 마음도 있다"며 "하지만 배우는 연차와 상관없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고 강조했다.
"어떤 배우도,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떤 연기든 하고 싶다면 직접 뛰어드는 게 맞아요. 제게는 '언슬전'이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 '언슬전', 현실 반영 100%
서정민은 일명 '연기 버튼'이었다. "서정민이 갖고 있는 기질이 저의 어떤 스위치를 눌렀다. 오디션에 합격하자마자, 에너지가 필요할지, 체력적으로 준비할지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봉련은 직접 병원을 찾았다. 현실 의사들의 말투, 걸음걸이, 분위기 등을 체득했다. 지인들을 찾아 자문도 구했다. 그렇게, 서정민 그 자체가 됐다.
"산모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가까운 지인(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에게 계속 질문했어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고요."
병원에서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의사를 그렸다. "의사 스타일링에 제 말투까지 더해지니, 리얼해졌다. '병원에서 저런 분 본 적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밝혔다.
스타일링이 자신감을 끌어올려줬다. 이봉련은 "안경과 가운이 내게 힘을 주더라. 자신감이 확 올랐다. 꽉 찬 논문이 100권 정도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 "어느덧, 내가 선배라니"
극중 이봉련은 5명의 제자들을 카리스마 있게 이끈다. 고윤정, 강유석, 신시아, 한예지, 정준원 등 후배들을 리드한다. 연기 선배로서 그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봉련은 겸손했다. "내가 선배라고 함부로 조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다들 이미 차분하고, 침착하고, 준비가 다 되어있는 친구들이었다"고 칭찬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5명 모두가 다 능력자였다"며 "현장에서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걸 보고, 내가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 굉장히 좋은 후배들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5명의 배우들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나의 어릴 적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과거의 나도 저렇게까지 할 수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언슬전'이 가진, 공감의 힘도 느껴졌다. "누구나 처음은 있지 않나. 시청자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며 봤을 것 같다"며 "그래서 '언슬전'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짚었다.
◆ 나는, 여전히 성장 중
연기 경력 20년에도, 현장은 여전히 어렵다. 이봉련은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지', '뭐부터 시작하지?' 하고 고민한다"고 전했다.
이어 "나이가 차고, 시간이 지나도 이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며 "'언슬전'으로 나도 아직 성장 중이란 걸 다시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후배들의 물음에도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나도 아직 성장 중인데, 후배들이 제게 뭘 물어보면 가끔 대답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나도 너희와 함께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그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후배들이 그 말에 공감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봉련이 언젠가는 슬기로울 사회 초년생들에게 응원을 건넸다.
"얘들아, 지금 엄청 잘 하고 있어. 그러니까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
<사진제공=에이엠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