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촬영이 어땠는지) 집에선 한 번도 얘길 안 했거든요. 제 아들들이 올해 고3, 중3인데 '무빙' 보고 펑펑 울더라고요. 착해졌어요. 순기능이죠."
쉼 없이 굴렀다. 맞고 또 맞았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차량에 부딪혔다. 하나의 액션신을 끝내면, 또 다른 격투 장면이 게임 퀘스트처럼 주어졌다.
'류승룡 학대쇼'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괴물' 같은 재생 능력의 초능력자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게, 장주원으로 완벽 변신했다.
가족들은 눈물바람이었다. 특히 청소년이 된 아이들은 강도 높은 액션신에 꽤 놀란 눈치였다. "100대 1로 싸우고 무장공비 들어와서 폭탄 터지고 하니까 애들한테 처음 본 눈빛을 봤다. '우리 아빠 맞아?' 이런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디스패치'가 류승룡과 인터뷰했다. 디즈니+ '무빙'을 만나, 배우의 '쓸모'를 다시금 깨달았다.
◆ 20부작, 도전
'무빙'은 액션 히어로물이다.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과 초능력을 숨기고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이야기다.
디즈니+ 역대 최고 흥행을 거뒀다. 플릭스 패트롤 기준 국내외 시청 시간 1위, 키노라이츠 화제성 5주 연속 1위 등을 기록했다. 관련 앱 사용시간 또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기대를 뛰어넘은 성적이다. 아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류승룡은 "요즘엔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을 선호하지 않나. '지겨워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고백했다.
"흥행 예상했냐고요? (그건) 제일 어려워요. (원작) 웹툰을 예전에 읽었고 좋아했는데요. 클래식하게 진중한, 그런 게 MZ 세대의 공감 얻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기우였다. 전 세대가 '무빙'에 울고 웃었다. 공개 초반 1.5배속 미지원 불만은 '용두용미' 극찬과 함께 시즌2 염원으로 바뀌었다.
"저는 '무빙'이 시리즈물의 '토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는 정주행도 못하고, 1.5배속도 안 되니까 불만이 폭주했죠. 하나씩 인물과 서사를 이해하면서 불만이 기대로 바뀐 것 같아요. 끝까지 진심을 다하니 반응이 오는구나 했습니다."
◆ '괴물' 장주원
류승룡이 맡은 장주원은 말 그대로 '괴물'이다. 칼에 찔려도, 총에 맞아도 끄덕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해진다. 무한 재생 능력 덕분이다.
박인제 감독 제안을 받아들였다. (류승룡은 박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에 출연했다.) '무빙' 시나리오를 읽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일단 원작이 너무 훌륭해요. 긴 호흡도 좋았죠. 20대부터 현재를 그려내야 했는데 내 안에 많은 모습이 있잖아요. 짧은 시간 단면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만,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피 튀기는 액션은 물론이고 가족 같던 조직원의 배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 딸을 지키는 부성애 등을 과하지 않게 표현해야 했다.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장주원은 재생 능력이 있지만 고통도 겪고 마음에 상처도 받는다. 어린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주원이 목적 없이, 거친 삶을 살다가 지희를 만나고 바뀌잖아요. 또 김두식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죠.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누군가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어요."
◆ '쓸모' 황지희
청춘 드라마에서 히어로물, 느와르를 거쳐 멜로까지. '무빙'은 수차례 장르를 변주하며 시청자에 거대한 강풀 세계관을 탐험시켰다.
특히 장주원과 황지희의 러브 스토리는 빼놓을 수 없는 메인 에피소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유가 있었겠죠",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 등 대사도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류승룡은 상대역인 곽선영에 대해 "지희 역은 곽선영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극찬했다.
"사실 곽선영 배우에게 (촬영) 일정을 맞췄어요. 지희가 괴물이나 구룡포가 아니라 처음으로 주원의 이름을 불러주거든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빛이 되고, 심장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그런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해줬어요."
딸 희수로 분한 고윤정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제가 따로 노력을 안 해도 딸처럼 '아버지 아버지' 했다. 지금도 그런다. 너무 고맙다"고 웃었다.
"희수 졸업식 때 SNS 스토리에 '시험은 잘 봤니?' 쓰려고 하다가 혼날까 봐 안 썼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점수 잘 나왔을까요? 너무 궁금하더라고요.(웃음)"
◆ 늦게 핀 '꽃'
류승룡은 다소 늦은 나이에 빛을 본 스타다. 길고 긴 무명 생활을 견뎠다. 연극 무대를 거쳐 매체 데뷔까지 8년,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으로 주목 받기까지 8년, 도합 16여년이 걸렸다.
고(故) 김효경 교수 말 한 마디가 버팀목이 됐다. 생전 "너는 늦게 피는 꽃이야. 조급해하지 마"라고 격려해준 것.
"'늦게 피는 꽃'이라고 표현하셨듯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기간이 길었어요. 근데 지나고 보니 엄청난 자양분이 되더라고요."
이준익 감독 조언 또한 큰 도움이 됐다. 1년 동안 다수 작품에 출연해야 했던 상황. 캐릭터 소모 우려가 컸던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날의 분위기, 향기 다 기억이 나요. 이 감독이 '땅을 깊게 파면 손가락 아프지만 맑은 물이 나와'라고 해주셨죠. 그때 용기를 얻어서 한 게 '최종병기 활', '내 안의 모든 것', '7번 방의 선물'이에요. '한계를 두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 그게 제 모토가 됐어요."
차기작만 4편이다. 류승룡은 영화 '비광', '정가네 목장', '아마존 활명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닭강정' 등에 출연한다. 이중 일부는 크랭크업했고, 나머지는 촬영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여년 간 상상한 것 이상의 작품들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많은 덕분이죠. 구연 능력도 충분하고요. 이런 나라에서 배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싶어요. 좋은 작품을 통해서 계속 위로하고, 공감을 얻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