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다은기자] "영화를 찍을 때 만큼은, 저도 태극마크를 달고 작품에 출연한 국가대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시완)
배우 임시완이 42.195km를 달린다. 배경은 1947년 미국 메사추세츠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발선. 광복 후 첫 태극마크, 첫 국가대표로서 영광의 질주를 시작한다.
"임시완은 진짜 마라토너였습니다. 배우가 뛰는 게 아니라 정말 선수가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놀라운 장면과 경험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정우)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이 실화의 진한 감동을 전한다. 배우 하정우가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으로 분한다. 임시완은 제자 서윤복으로 뜨거운 도전에 임했다.
'1947 보스톤' 측이 3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제작보고회를 열었다.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하정우, 임시완, 김상호가 참석했다.
영화는 마라토너 손기정, 제자 서윤복, 그리고 남승룡의 이야기를 그린다.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 금메달리스트다. 남승룡은 동메달리스트다.
마라토너들은 광복 이후 첫 국제 대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맞이한다. 이 때 서윤복이라는 신예를 만난다. 세 사람은 도전과 여정을 함께 한다.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강 감독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아버지다. 첩보 액션 영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했다. '1947 보스톤'은 지난 2020년 1월 31일 촬영을 끝냈다.
강 감독에게 있어 '1947 보스톤'은 운명 같은 작품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불의 전차'를 보고 달리기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손기정의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책을 접했다.
스포츠 영화에 점차 관심이 쌓여갔다. 마침내 지난 2018년 제작사 대표가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 감독은 "가슴이 벅찼고, 뛰었다"며 "운명처럼 다가왔다. 여지없이, 반드시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연출 중점으로는 크게 2가지를 꼽았다. "이야기를 사실과 가장 근접하게 보여주는 방법에 신경 썼다"며 "시나리오 작업에서도 픽션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감독은 "마라톤 42.195km를 어떻게 보여주고 설계할 것인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했다"며 "임시완을 진짜 마라토너로 만드는 데도 집중했다"고 밝혔다.
주연배우 캐스팅의 이유도 명확했다. 강 감독은 "임시완의 첫 샷이 잊히지 않는다"며 "서윤복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고 감탄했다.
하정우에 대해서는 "손기정 선생님의 걸음걸이, 어투, 행동, 성격을 많이 접했다. 하정우가 그걸 정말 제대로 표현했다"며 "두 배우가 정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생각했다"고 표현했다.
배우들도 망설임 없이 '1947 보스톤'의 대본을 잡았다. 강 감독을 향한 믿음, 실화의 감동, 이야기의 힘을 꼽았다. 하정우는 "손기정 선생님의 여정 속에 울림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실화인 만큼, 등장인물을 더 자세히 이해하고자 했다. 하정우는 "손 선생님이 에너지가 큰 분이라는 걸 느꼈다"며 "연기, 동작, 대사 하나 하나 뱉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분을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임시완 또한 경각심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서윤복 선생님께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처럼 저 역시도 국가대표라 생각했다. 국가를 대표해 작품을 찍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임시완은 진짜 마라토너로 변신했다. 역할을 위해 체지방률은 6%까지 떨어뜨렸다. 촬영 2달 전부터 훈련했다. 실제 마라톤 선수들의 훈련에 버금가는 과정이었다.
임시완은 "저도 인생 처음 보는 체지방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운동과 식단을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병행했다. 촬영 중간에도 틈틈이 운동했다"고 답했다.
하정우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정우는 "임시완이 선수들이 받는 트레이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진짜 마라토너였다"며 "선수가 뛰고 있다고 여겨졌다. 놀라웠다"고 칭찬했다.
영화는 해외, 지방 로케이션 촬영을 거쳐 완성했다. 강 감독은 먼저 전국 각지를 누볐다. 제천, 목포 등에서 손기정 선수의 집 이미지에 부합하는 장소를 찾아냈다.
보스턴 재현도 숙제였다. 강 감독은 우루과이, 헝가리, 뉴질랜드 등을 돌다 호주 멜버른을 찾았다. 하정우는 "영화를 위해 지어진 거대 세트장 같았다"고 표현했다.
강 감독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불안했고 굉장히 빈곤했습니다. 선수들은 당시 배고팠고, 과학적인 훈련을 받을 수도 없었죠. 국가 후원도 적극적으로 못 받았습니다. 혼란한 시기 세계 대회에서 원대한 계획을 펼쳐보자는 세 마라토너의 꿈과 열정, 도전, 희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분들의 시대 정신이, 지금 힘들게 사는 많은 국민, 관객들에게 많은 울림을 시사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강 감독)
영화는 오는 추석 '천박사', '거미집' 등과 삼파전을 벌인다. 강 감독은 "흥행 부담은 당연히 있다"면서도 "무엇보다 영화가 가진 소중한 이야기가 많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마지막으로 임시완은 "살아가면서 도전에 대한 기회나 열정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며 "흐릿해진 도전 의식을 다시 우리로 하여금 들끓게 하는 영화"라고 덧붙였다.
'1947 보스톤'은 다음 달 27일 개봉한다.
<사진=송효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