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교수님, 제가 어설프게 (연기) 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요?" (박은빈)

김병건 나사렛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박은빈의 첫인상에 '두려움'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캐릭터 자문을 맡아 박은빈과 인연을 맺었다. 

"자폐증을 연기로 표현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죠. 설렘보다는 오히려 큰 부담을 안고 있었어요." (김병건 교수)

두려움과 부담감은, 사실 신중함의 증거다. 자신의 연기가 대중에 미칠 파급력, 그리고 사회에 미칠 영향을 잘 알았던 것. 

박은빈은, 그렇게 치열한 고민으로 '우영우'에 접근했다. 편견 없이 연기하기 위해 영상 콘텐츠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다.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받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디스패치'가 최근 김병건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은빈의 연기 열정과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김 교수는 기존 배우들의 연기에 관해 짚었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에서 자폐증 연기를 보여주셨다. 물론 다른 배우들도 열심히 해주셨고, 자폐에 대해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고 말한다.

"한 편으로는 자폐증에 대해, 전형적인 틀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자폐증이 그런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아니니까요." (김 교수)

실제로, 우리가 아는 자폐는 중증에 그친다. 말이 어눌하고,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성인이지만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 '우영우' 3회 정훈(문상훈 분) 같은 증세를 떠올린다. 

김 교수는 "박은빈은 자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대중에게 자폐를 이해할 수 있는 더 넓은 시각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호평했다.

물론 김 교수도 (박은빈만큼)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게, 우영우는 누군가를 돕는 변호사다. (실제로 미국에 자폐증을 앓는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읽은 책은 모조리 기억하는 천재이기도 하다. <자폐증을 가진 천재 변호사> 라는 2가지 설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우영우를 2개의 톤으로 나눴다. 영우가 일상을 보낼 땐, 자폐증 성향을 그대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타인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모습?

좋아하는 한 가지 포인트(고래)에 집착하는 것, 감각(청각·촉각·미각 등)에 예민한 것, 남의 말을 반사적으로 따라하는 것(반향어) 등을 디테일하게 선보였다. 

반면, 법정에 설 땐 천재성을 극대화했다. 영우가 상황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기억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박은빈에게 "긴 대사를 마치 눈앞에서 보고 읽듯 빠르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저도 자문을 해줬지만, 어려울 거라 예상했어요. 법률 용어가 쉬운 것도 아니고,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그런데 박은빈이 제대로 해내는 걸 보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김 교수)

 

그뿐 아니다. 박은빈은 자문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캐릭터를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디테일한 설정을 잡아나갔다. 우영우=박은빈이 되려 노력했다. 

"본인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한 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부자연스러운 손동작, 타인이 어깨를 쓰다듬으려 할 때 움찔대는 부분, 악수할 때 손끝만 살짝 잡는 표현이 좋았어요. 제가 알려주지 않은 포인트인데도 특징을 잘 캐치했더군요." (김 교수)

박은빈이 그려낸 우영우는,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지만 또 이상하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문지원 작가에 따르면) 안쓰러워서가 아닌, 똑똑하고 씩씩해서 응원하고픈 사람이다. 

자폐증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게 만든 것. 김 교수는 이런 박은빈의 연기에 대해 "장점 중심 접근 이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폐가 가진 단점을 커버할 장점을 개발해 사회에 통합시키는 개념"이라며 "박은빈이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반향어를 합니다. 사회성도 결여돼 있죠. 비장애인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은빈이 그걸 사랑스럽게 표현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기더라고요." (김 교수)

그러고 보면, 문지원 작가는 처음부터 "박은빈이 아니면 우영우는 안 된다"고 고집했다. "우영우를 소화할 배우는 지구상에 박은빈 밖에 없다"며 1년을 기다렸다. (박은빈은 '연모'에 먼저 캐스팅된 상태였다.)

그 예언(?)은 제대로 적중했다. '우영우'는 시작하자마자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현재 국내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드라마가 됐다.

로펌 한바다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자폐를 앓는 변호사, 그녀에게 라이벌 의식이나 호감을 느끼는 변호사들,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는 변호사….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편견이 없다는 것? 단순히 '자폐'로 보는 게 아니라, '자폐를 앓고 있는 변호사'로 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영우는 매번 차가운 현실을 겪어야 한다.)

어쩌면, 이게 바로 박은빈이 '우영우'였어야 하는 이유 아닐까. 자폐에 대한 편견을 (최대한) 없애고, 인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 박은빈은 그런 '우영우'의 메시지를 200% 소화하고 있다. 

<사진출처=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