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제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다시 정주행하면서 아쉬운 부분들을 곱씹어보려 합니다.”

모두가 인생 연기라고 호평했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또 한 여자의 연인으로서 눈물 나는 열연을 펼쳤다는 것. 심지어 최종회 17.4% (닐슨코리아)라는 성적표도 받아 들었다.

그럼에도 이준호는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대본을 펼쳤고, 노트북을 켰다. MBC-TV '옷소매 붉은 끝동'을 정주행하며 아쉬웠던 부분을 체크할 계획이다.

"많은 분들께서 제 계절이 왔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욕심만큼 연기가 따라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하려고요."

이준호는 아직, '옷소매'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촬영 당시 부족했던 부분이 많다. 종영 후에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며 열정을 보였다.

'디스패치'가 최근 이준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조 이산을 연기하며 쏟은 구슬땀, 그리고 배우로서의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 '옷소매', 우려와 욕심의 도전

준호는 군대 복무 중 2PM ‘우리집’(2015) 직캠으로 역주행 인기를 끌었다. 팬들은 “왜 이럴 때 군대에 있냐”며 아쉬워했다. 준호는 덕분에 제대 전부터 많은 작품을 제안받았다.

그중 ‘옷소매’를 만났다. 준호는 “대본을 볼 때 이야기의 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옷소매’ 대본을 읽는데 편안하게 잘 읽히더라”며 “실존 역사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동시에 망설임도 있었다. 청년 이산부터 정조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역 없이 홀로 끌고 가야 했다. 쉽지 않은 연기다. 사극 로맨스 주연이라는 부담감도 컸다.

게다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정조는 이미 안성기, 이서진, 현빈 등 노련한 베테랑들이 연기한 인물이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준호는 용기를 냈다. 그는 "7회 대본까지 읽고, 이건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그만큼 욕심이 났다. '옷소매'의 대본이 주는 힘이 컸다"고 말문을 열었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그때 최수종 선배님 인터뷰를 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선배님도 처음 왕을 연기했을 때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열심히 하면 저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정조, 그 자체로 살았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정조가 되는 것. 역할 그 자체가 되면 시청자들도 납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준호는 자신의 색깔이 있는 정조를 만들기 위해 캐릭터 구축에 나섰다.

생활 습관 등 작은 것부터 바꿔나갔다. 예를 들어, 준호는 왼손잡이다. 하지만 정조가 되려 오른손을 쓰는 연습에 몰두했다. 지난해 5월, MBC-TV '나혼자 산다'에서 콩을 집는 연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준호는 "정조는 조선시대 왕세손이다. 때문에 왼손잡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붓글씨를 쓰는 연습을 했다"며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눈빛, 말투, 걸음걸이까지 다시 만들었다"고 말했다. 

"왕은 항상 정자세로 앉아 있잖아요. 몸에 담이 많이 걸렸습니다. 고관절에 무리가 오기도 했고요. 정조의 예민함을 표현하기 위해 식단 관리를 하며 날렵한 모습도 유지해야 했습니다. 물도 잘 안 마셨죠."

아픔을 지닌 내면도 표현해야 했다. 정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걸 본 트라우마가 있다. 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협 속에 살아가는 불안함도 연기해야 했다. 

준호는 "가장 중요한 게 감정이었다. 감정을 잡으니까 작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며 "나중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였다. 정말 그 인물(정조)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했다. 

◆ “준호의 계절은, 아직이다”

고심 끝에 만들어낸 정조는 성공적이었다. 준호는 정조의 일대기를 폭넓게 그려냈다. 세손 때는 딱딱하지만 패기 있는 눈빛을 표현했다. 즉위 후에는 상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말년 때는 힘을 빼고 세월에 억눌린 모습을 나타냈다. 

이세영(성덕임 역)과의 로맨스도 심금을 울렸다. 밝고 사랑스러운 덕임과 까칠한 정조로 단짠 케미를 선보였다. 풋풋한 첫사랑에서 애틋한 연심으로 번져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그 결과, 준호는 ‘2021 MBC 연기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옷소매’는 올해의 드라마상을 받았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7.4%(닐슨코리아 기준)로 성공적인 막을 내렸다.

모두가 준호의 계절이 왔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준호는 아직 멀었다며 손을 저었다. "노력하면 호평을 받을 수 있구나 느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기자 이준호로서 부족함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욕심이 정말 컸어요. 한 신당 여러 테이크를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PD님은 한 두 번 만에 오케이 사인을 주셨죠. 잘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꿈은, 지금처럼 꾸준히”

준호는 9년 차 배우다. 영화 ‘감시자들’(2013년) 조연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김과장’(2017년)으로 시청자들에게 연기력을 입증했다. '짐승돌' 2PM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웠다. 

그리고 지난해, ‘옷소매’로 연기력을 꽃피웠다. "군백기 동안 배우로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이렇게까지 불태운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다시 열공 모드에 돌입한다. “‘옷소매’를 다시 정주행하려 한다. 모니터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며 “아쉬운 부분, 마음에 드는 연기를 곱씹어보며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준호의 전성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는 “연예인을 하기에는 제가 타고난 게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것 같다”며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면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다”고 바랐다. 

“지난 2010년에 아직 제 계절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었어요. 자신있게 말씀드리면,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은 같습니다. 계속 해왔던 대로 꾸준히 묵묵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준호의 계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단언컨대) 곧 올 것이다.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