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깡패에게 맞아도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한 눈빛으로 냉소를 뱉는다. 목숨이 걸린 게임도 버틴다. 가족을 구하려면, 살아남는 길 밖에 없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속 강새벽의 이야기다. 새벽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온 새터민. 부모님과 헤어졌고, 동생과 떨어졌다. 심지어 돈까지 사기당해 벼랑 끝에 몰린다.

이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정호연이다. 

사실, 그의 본업은 모델이다. 그동안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리로 런웨이를 누볐다.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등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다 '오징어 게임'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제대로 사고를 쳤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새벽에 열광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40만에서 1,000만으로 훌쩍 뛰었다. 정호연이라는 이름을, 모델이 아닌 배우로 알리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팔로워 수가 늘어나 있더라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정호연)

'디스패치'가 지난 1일 정호연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징어 게임', 그리고 새벽을 함께 회상했다. 

◆ "첫 연기,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연기에 도전한 건, 그야말로 우연한 계기였다. 코로나는 뉴욕에도 예외없이 닥쳤고, 무대는 잠정 휴업 상태. 그 공백기에 ‘오징어 게임’ 오디션 소식을 들었다.

"모델(일)을 끝내면 무엇을 할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머릿속 한 켠으로 ‘연기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도전하게 됐어요." 

연기는,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영화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게 매력적"이라며 “연기를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는 작업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모델은 외적인 것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무대를 내려오면 '내면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하는 갈증이 컸어요. 연기로 그런 점들을 해소하게 됐죠." 

첫 연기다. 게다가 캐릭터는 강렬하다.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연기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히 컸다. 하지만 모델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며 "점점 페이스를 찾아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톱모델 정호연, 새터민 강새벽이 되다" 

부담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노력이었다. 정호연은 “새벽의 입장에서 일기를 썼다. 그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적었다. 새벽이의 과거를 제 안에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차츰 새벽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새벽의 어머니가 공안에 끌려갔을 때 남겼던 말을 곱씹었다. 새벽이 어떻게 마음의 문을 닫고, 경계를 시작했는지 분석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개인적인 성공이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왔어요. 반대로, 새벽이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죠. 이 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정호연은 "새벽이는 아마, 어머니가 희생되며 성격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남한에서 사기도 많이 당하고, 불신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새벽의 성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분석했다"고 짚었다. 

반대로 자신과 새벽의 닮은 점도 찾아냈다. "제가 모델 활동 때문에 타지에 오래 있었다. 새벽이도 터전이 아닌 곳에서 살았으니 힘들었을 것"이라며 "외로움과 경계심 등을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현장이 바로, 나의 스승이었다"

'오징어 게임'에는 연기 고수들이 총출동한다. 이정재, 이병헌, 박해수, 허성태, 김주령, 오영수 등이다. 정호연은 그 모든 배우들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연기에는 답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보여준 현장이었어요. 선배님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었죠."

동갑내기 이유미(지영 역)도 큰 도움이 됐다. "제 첫 리딩 상대가 유미였다. 유미가 새터민 관련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줬다. '이런 방법을 시도해보면 어때?' 하고 조언도 해줬다.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연기 롤모델도 만났다. 바로 오영수(오일남 역)다. 뜨거운 열정을 배우고 싶고, 따뜻한 배려를 닮고 싶다는 것. “줄다리기 연기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 흡입력을 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 긴~ ‘줄넘기’ 대사를 현장에서 외워 오셨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 대사에 빨려 들어갔죠. 마치 관객처럼 감상했어요. 그리고 다같이 박수!!! 저도 오영수 선배님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황동혁 감독의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황 감독님은 어미 하나 그냥 넘기지 않는 분"이라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사가 바뀔 때도 많았다.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모델과 배우,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

'오징어 게임'은 지금 가장 뜨거운 작품이다. 9일째 넷플릭스 전 세계 TV 프로그램 부문 1위에 올랐다. 해외 매체들도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정호연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해외 모델 친구들에게도 DM이 굉장히 많이 온다"며 "파리, 이탈리아 등에서도 연락이 왔다. 루이비통 디자이너 니콜라스도 '잘 봤다'고 했다"고 얼떨떨해 했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더 많은 작품에 도전할 예정이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이 아닌 해외 작품이 될 수도 있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발전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동시에 본업인 모델 활동도 놓치지 않을 계획이다. "(연기를) 선택했다기보다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이 없거나 공백기가 생긴다면, 모델 활동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제가 굉장히 소심하고 생각이 많은 성격이에요. 커리어에 대해선 늘 고민하죠. 일이 잘 될 때는 '왜 잘될까', 안 될 때는 '왜 안될까' 고민했어요. 그 이유를 찾아 다녔죠”

그리고 정호연은, 스스로 찾은 결론을 덧붙였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결국 ‘왜’에 대한 해답은 자신 안에 있었다. 최선을 다했는가, 혹은 못했는가.

“왜 잘될까? 왜 안될까? 최선의 차이, 책임감의 차이에서 비롯되더라고요. 이게 제가 찾은 해답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게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정호연) 

 <사진제공=사람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