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특별취재팀] 레드카펫은 흐렸고, 스크리닝은 맑았다. 영화 제목을 닮았을까. 영화 '다른 나라에서'의 공식 프리미어는 안과 밖이 전혀 다른 나라였다. 레드카펫엔 비가 내렸고, 스크리닝에선 웃음이 폈다.
비 내리는 22일(한국시간), 홍상수 감독을 중심으로 이자벨 위페르, 윤여정, 유준상, 문소리가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검은 우산과 빨간 카펫의 절묘한 조화 속에, 영화 '다른 나라에서'의 주역들이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다른 나라에서'가 첫 선을 보였다. 오후 3시 20분, 레드카펫이 펼쳐졌고, 20분 뒤 스크리닝이 시작됐다. 두 곳의 온도는 극과 극이었다. 오전부터 계속된 빗줄기로 크로아제 거리는 한산했지만, 홍상수의 깨알같은 유머로 극장 안은 웃음꽃이 피었다.
흐리고, 또 맑았던 '다른 나라에서'의 공식 프리미어. '디스패치' 취재팀이 따라 잡았다.

◆ "비오는 레드카펫…흐림"
계속된 비때문일까. 레드카펫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홍상수 감독, 이자벨 위페르, 윤여정, 유준상, 문소리 등이 등장하자 레드카펫은 조금씩 활기를 띄었다.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울렸고, '다른 나라'의 주역들은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프랑스 국민배우 위페르는 여유롭게 레드카펫을 거닐며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다.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환호할 때는 손을 번쩍 들어 화답했다. 칸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와 반갑게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종일관 해맑았지만, 온 몸에서 기품이 풍겼다.
'국민모자' 윤여정과 유준상은 초반에 다소 긴장한 듯 보였다. 쉴새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다소 경직돼 있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찾고 칸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카메라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 유준상은 윤여정의 손을 꼭잡고 에스코트하며 아들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문소리는 생애 첫 레드카펫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그는 의전차량에서 내리자마자 팬서비스를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취재진을 향해 손인사를 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는 레드카펫의 열기를 느긋하게, 온 몸으로 느꼈다.

◆ "즐거운 스크리닝…맑음"
10분간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를 마친 '다른 나라에서' 주인공들은 공식 스크리닝이 열리는 뤼미에르 대극장을 입장했다. 이들이 극장 안에 들어서자 미리 자리잡고 있던 관객들은 기립하며 입장을 환영했다. 주인공들은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 속에서 위페르와 유준상, 문성근, 권해효 등이 대화를 나누고 말다툼을 할 때면 박장대소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관객 대부분이 홍상수식 유머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홍상수식 유머에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프랑스 출신의 영화 비평가인 찰스 마틱은 "무엇보다 코미디가 인상적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영화로, 홍상수 영화 중에서 베스트로 꼽을 수 있겠다"고 평했다.
일상적인 소재와 구성 방식에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터키신문인 '쿰후리예트'의 파리 주재원 유거 후쿰은 "같은 스토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진행 방식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모나코 신문기자인 미쉘은 "재미있게 봤다. 스토리, 연기, 영상, 3박자가 어우러진 영화였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칸, 홍상수의 재미에 중독될까?"
사실 홍상수의 작품은 칸의 경쟁부문과 썩 어울리진 않는다. 칸의 테마인 '종교', '구원', '용서'와 거리가 있다. 홍상수가 지속히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이 실험적이거나, 논쟁적 혹은 문제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번 '다른 나라에서'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 역시 소소한 일상적 재미를 담은 홍상수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행간에는 소통이라는 인간의 숙제가 숨어있다. 눈에 보이는 사소한 장면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사회,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이날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다른 나라에서'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를 말했다. 단순히 여주인공 안느가 다른 나라에서 겪는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을거라는 것. "결국 인간은 마치 각자의 섬에 사는 것처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일이 와도, '다른 나라'에 대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칸이 언제나 논쟁거리를 즐기는 건 아니다. 지난 2008년, 심사위원단은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에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프랑스의 인종, 편견, 세대 갈등을 꼬집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논쟁이 없다고, 논란이 없다고, 수상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다.





<칸영화제 특별취재팀>
글=임근호·나지연·서보현·김수지기자
사진=김용덕·이호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