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때는 1597년, '정유재란'의 이야기다.
임진왜란 휴전 3년째.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범했다. 왜군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 들었다. 원균 장군이 막아 보려 했지만 결과는 참패. 조선 수군의 전의는 시들어가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결국 선조는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통제사로 임명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단 12척의 배. 그리고 두려움에 빠진 병사들 뿐이었다.
바다를 포기하라는 선조, 혼란에 빠진 조선. 이순신 장군의 선택은 이러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으로 떠났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이 몰려온 그 바다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전쟁. 이순신 장군은 의심을 용기로 바꿨고, 승리로 이끌었다.
영화같은 진짜 이야기. 그리고 진짜같은 영화. '명량'이다.
'명량'은 우리가 겪었던 실제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도 겪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다.
그래서 준비했다. '명량'을 200% 즐기기 위한 사용설명서. 한국사 전문가인 설민석 강사에게 당시를 물었다. 영화에는 없는 이야기, 영화에서 즐길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이지 않을까?"
◆ 미리 알면 더 재미있을, 역사적 배경들
'명량해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들. '걸음아 나살려라'하며 나라를 버린 왕, 선조를 빼놓을 수 없다. 선조는 이순신을 시기질투하던 '엑스맨'. 다시말해, 명량해전은 이순신이 보이지 않는 적(?) 선조, 그리고 보이는 적 일본과 싸워야 했던 전투다.
① 임진왜란 :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다. 히데요시의 다음 목표는 명나라 정벌. 조선을 회유지로 삼아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다. 1592년 선조 25년,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우리가 또 의리의 민족이니까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렇게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을 막은 건,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일본군의 바다 보급로를 족족 끊어버렸죠. 일본군을 허약하게 만든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하 설민석)
때는 겨울이었다. 설상가상, 이순신 장군에 의해 보급이 차단되자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휴전을 선언하며 한양을 떠났다. 그러나 3년 뒤,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범한다. 1597년, 바로 정유재란이다.
"일본은 흔히 말하는 '이중간첩' 작전을 씁니다. 부산포로 간다고 첩보를 흘리죠. 이순신 장군은 믿을 수 없다며 출정 명령에 따르지 않습니다. 분노한 선조는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죠. 대신 원균이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패하고 말죠. 결국 이순신은 다시 나서게 됩니다."
② 선조 : 당시 조선의 리더는 선조였다. 하지만 선조는 나라를 버린 겁많은 왕이었다.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신한 것.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몸을 숨기는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선조는 시기질투가 심했습니다. 또 비겁했죠. 일례로 선조는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두고 시간을 끌었습니다. 정실부인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임진왜란이 터지자 세자책봉을 해버립니다. 정작 자기는 의주로 도망가고요"
그런 선조의 시기질투가 향한 곳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선조 입장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모든 백성이 선조가 아닌 이순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순신은 원칙주의자다. 불합리한 명령은 따르지 않았다. 선조는 이런 이순신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합니다. 그 때 선조가 딱 한 마디를 남깁니다. '알았다', 이게 끝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시겠죠? 반면 모든 공을 명나라로 돌리죠. 자신의 무능함과 비겁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③ 구루지마, 원균, 그리고 유성룡 : '명량해전'을 둘러싼 오해? 왜군이 명량의 물살 때문에 졌다는 억지다. 물론 명량의 물살이 거센 건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를 이용한 전술을 펼친 것은 맞다. 하지만 실상 물상은 왜군을 위협한 요소는 아니었다.
"왜의 장수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시코쿠 지역의 에히메현 출신입니다. 그가 살던 바다는 물살이 엄청나게 셉니다. 구루지마에게 명량은 어렸을 때 놀던 동네 앞바다 수준입니다. 즉,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건,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었습니다."
이순신을 둘러 싼 인물하면, 원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순신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던 인물이었다. 백의종군을 유도한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순신에게 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친구 유성룡은 훗날 이순신을 천거, 영웅의 존재를 후대에 알렸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순신은 원균을 싫어했습니다. 원균 나름의 입장도 있었겠지만요.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도 재미있습니다.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어렸을 때 한 동네에서 뛰어놀며 자란 친구였죠. 이순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입니다."
◆ 영화 속에서 눈여겨 볼, 관전 포인트들
영화는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으로 탄생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할지라도 허구의 영역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보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명량'은 달랐다. 상상력보다 역사가 우선이었다.
① 철저한 고증 : '명량'은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무기와 배, 전술을 그대로 재현했다. 김한민 감독은 난중일기를 발판 삼아 417년의 시간을 뛰어 넘었다. 해전신에 61분의 시간을 배정, 당시의 명량의 생생하게 구현했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철저한 고증과 재현입니다. 실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여러 개의 탄핵을 끼울 수 있는 대포와 조란탄 등을 고증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배와 배를 충돌시켜 상대를 격파하는 충파(沖破) 전술 등도 완벽하게 재현했더군요."
당시 명량 바다 위의 상황도 가감없이 그렸다. 두려움에 빠진 병사들과 이를 이끌어 가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순신의 외로운 싸움은 100%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도 실록에 기반해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이순신은 홀로 왜군과 싸웁니다. 이순신 장군이 선봉에 서서 홀로 싸웁니다. 이후 안위 장군 등이 뒤를 따르는데요. 관객분들은 산 위로 올라가 전쟁을 내려다 보던 백성의 눈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겁니다."
② 이순신 그리고 최민식 : 영화가 조명하는 이순신의 인간미도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그동안 수많은 매체가 그렸던 이순신은 완벽, 그 자체였다. 신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하지만 '명량'은 인간 이순신을 조명했다.
"제가 보는 이순신 장군은 전형적인 원칙 주의자입니다. 동시에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분이셨죠. 직접 소금을 굽거나 백성들의 제사를 챙겨 줄 정도였으니까요. 영화는 이런 인간 이순신을 다룹니다. 특히 전쟁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내면적인 고뇌를 잘 표현했습니다."
그런 이순신은 최민식으로 인해 극대화됐다. 그의 내면 연기는 영화 내내 스크린을 압도한다. 실제로 최민식은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힘을 빼고 눈빛에 공을 들였다. 절제 연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최민식의 내면 연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내공과 감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몰입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③ 메시지 : '명량'은 이순신, 한 명의 영웅을 다루는 영화다. 동시에 모든 백성을 승자로 그린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을 돕는 백성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았다. 이것은 바로, 김한민 감독이 말하는 '명량'의 메시지였다.
"역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배 뒤로 수많은 고기잡이 배가 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 측 배가 많아 보이는 효과를 준 것이죠. 영화가 이 점을 놓지 않았다는 점은 인상깊었습니다. 이순신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그와 함께 했던 모두의 승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2014년, 지금 '명량'이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영웅을 조명하지 않는다. 진짜 리더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줄 리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설민석 강사의 마지막 말처럼.
"영웅이 없는 시대에 영웅을 바라는 심리가 관통한 것 같습니다."
<인포그라피=김혜원기자, 사진='명량' 스틸컷, 설민석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