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공은태는 이런 상사다. 자신의 성공보다 동료의 승진을 먼저 바라본다. 팀원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다.
배우 이준혁도 그랬다. 주인공으로서 모든 장면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동료 배우들의 연기에 리듬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스스로를 팀의 베이스에 비유했다.
"은태는 중심에서 중간선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했어요. 제가 베이스를 계속 쳐주면, 다른 배우들이 피치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이준혁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극본·연출 윤영빈)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조연으로 활동했기에 동료들을 향한 애정이 남달랐다. 주인공의 책임을 말하면서도 끝내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 혼자 빛나기보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위아래로 치이던 팀장 공은태(이준혁 분)가 로또 1등에 당첨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사직서 대신 당첨금 13억을 품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한다.
이준혁은 이번 작품에서 주연의 책임감을 새롭게 배웠다. 주인공은 작품의 칭찬도 비판도 가장 정면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배우들의 분량을 늘리고 각자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그에게는 후자가 큰 동력이었다. 이준혁은 "처음부터 작은 배역까지 빛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들이 연기를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해주는 걸 보면서 오히려 주인공임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특히 같은 팀 대리 '양준호'를 맡은 서현우와 연기할 땐 희열을 느꼈다. 오랜 시간 같은 업계에서 활동해온 동료다. 그 만큼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리듬을 알아챘다.
이준혁은 "(서)현우 형은 제가 갑자기 왼쪽으로 움직이면, 미세하게 몸을 옮겨서 프레임을 채울 것"이라며 "그런 센서가 모든 지점에서 열려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배우가 저한테 맞추고 서포트해준다는 게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 장면을 채우는 대신
이준혁은 이전 작품에선 강한 개성을 밀어붙이거나, 극적인 상황에서 에너지를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공은태는 팀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는 "어떤 작품은 프레임 안의 시간을 전부 채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카메라와 감독님, 배우들의 생각이 세밀하게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그걸 훌륭히 받아주는 동료들이 있어 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공은태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다는 것. 여기에 업무와 관련된 긴 대사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해야 했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을 다루는 만큼, 대사를 주고받는 속도와 호흡도 중요했다.
그는 "중간선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엄청나게 집중했다"며 "템포가 빨라질 때는 확 들어가고, 다른 배우들이 높일 수 있도록 다시 중심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공은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멀끔하다. 이는 단순히 멋있는 인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이 닮고 싶은 직장인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었다.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봤을 때 '나도 저렇게 깔끔한 사람이고 싶다'고 느끼는 이미지를 내고 싶었어요. 원래 담배를 많이 피우는 설정도 있었는데 없앴죠. 젊은 사람들이 보는 상사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상사의 이미지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공은태를 꾸며내기보다 자신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더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는 "이전에는 살인자 역할이 많아서 인물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제 바이브를 더 넣었다"고 전했다.
◆ 재미보다 몰입
드라마는 로또 1등이라는 판타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당첨 이후에도 출근하고 동료들과 부딪히며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낸다. 돈이 생겼다고 해서 일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준혁 역시 일의 즐거움을 단순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과자를 먹으면서 영화를 볼 때는 맛있고, 즐겁다. 너무 명확하다. 그런데 일이 재미있다는 건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게임도 재밌으라고 만든 건데 난도가 올라가면 화가 나잖아요. 그래도 계속하죠. 재밌는 시간보다 화나는 시간이 훨씬 긴데도요. 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데…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연기를 위해 쌓아온 시간에 대해 자신했다. 그는 "촬영한 작품이 수십 편이고, 본 영화도 수천 편"이라며 "누가 봐도 제가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 정확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저의 순수한 업무량이 보이지 않나. 길게 봤을 때, '저 사람 업계를 진짜 사랑하는구나'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톰 크루즈도 수천억이 있는데도 목숨 걸고 연기하고, 몇 시간을 들여 특수분장을 하잖아요. '그 사람은 왜 안 놀까. 나보다 이 게임을 더 좋아하나' 생각해 봐요. 저도 언젠가 그 사람보다 이 일을 더 궁금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다음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티빙 주말 구독 기여도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전국 가구 기준 평균 6.2%, 최고 7.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와닿은 이유는, 이준혁 역시 20년간 작품이라는 직장에서 충실히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엔 늘 동료가 있었다.
가장 그의 마음을 건드린 것도 동료를 향한 대사였다. 마지막 회 공은태가 옥상에서 정선혁(오대환 분)에게 건네는 말이다.
"우리는 알잖아요. 우리가 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협상했는지.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기뻤는지." (10회 中)
이준혁은 "그 대사가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을 관통한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동료들과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출근은 계속된다. SBS-TV 새 드라마 '각성'과 장재현 감독의 영화 '뱀피르', 그리고 오피스 로맨스 '태연한 거짓말'까지. 쉼 없이 작품을 이어간다.
이준혁은 "레퍼런스가 없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며 "실패든 성공이든 새롭게 가는 길을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가장 먼저 나올 '각성'도 새로워요. 오컬트 판타지면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려운 도전이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00점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얻어 가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티빙, 에이스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