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영화의 시작을 여는 십계명의 계율은 두 부부에게 맞닿아 있다. 이창동 감독은 금지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말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네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 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면서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그 과정에서 감춰뒀던 욕망도 하나씩 드러난다.
누군가는 남의 삶을 탐하고, 누군가는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에게 없는 자유를 갈망한다. 욕망의 방향은 다르지만,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
이창동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여러 복잡한 모습들을 감추고 있는 데 그것들을 건드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계급 간의 갈등같기도 합니다. 또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태도나 윤리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두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을 나누고 싶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측이 21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창동 감독,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자리했다. 전도연은 화상으로 참여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해외 영화제들을 휩쓸고 있다. 먼저 제8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들어올렸다. 제51회 토론토영화제에선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날 은사자상을 직접 들고 오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은 "상보다는 이 영화가 세상에 나가서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였기에 중요했다"며 '다행히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느껴주셔서 다행이고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배우들에게 사인 요청을 하는 취재진의 모습이 화제되기도 했다. 설경구는 시사회 직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인성은 "엄숙한 자리였는데, 끝나고 갑자기 우르르 나오셔서 뭘 잘못한 줄 알았다. 놀라우면서도 감동스러웠다. 한국 영화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미옥(전도연 분)과 마지막에 같이 달을 보는 장면을 보는데 촬영 때가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터졌다. 그래도 울길 잘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전도연이 해고 노동자 호석의 아내 미옥을 연기했다. 미옥은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총파업이 가족에게 남긴 후유증 속에서도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물이다.
전도연은 미옥에 대해 "돈과 계급은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도, 앗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옥은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설경구가 호석을 맡았다. 호석은 총파업과 강제 진압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를 만나 자신의 상처를 다시 마주한다.
그는 "해고 이후의 상처가 크다. 감옥에도 다녀오면서 자아가 깨진 상태에서 수치심, 죄책감, 분노,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면서 위축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인성이 예지의 남편 상우를 소화했다. 상우는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 아내 예지를 옆에서 응원하고 돕는다. 아내의 작업에 도움이 되고자 미옥, 호석 부부와 어울린다.
조인성은 "상우는 자본가의 모습이다. 돈엔 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를 낫게 하기도 다치게도 하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상우에 투영해 연기했다"고 떠올렸다.
조여정이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를 담당했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감독이다. 미옥, 호석 부부와 진심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조여정은 "제 삶에서 채우지 못하는 그 무엇을 남의 인생을 통해 내 영화에 담으려 탐하는 마음으로 예지를 연기했다"고 전했다.
예지는 이창동 감독의 시점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에 대해 "10여 년 전 어떤 대기업의 대량 해고 사건이 터졌을 때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접었다. 그 이유는, 제가 과연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초안에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추가되며 이 이야기를 다 펼쳐냈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를 통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삶을 그리는 저 같은 창작자에게는 언제나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삶을 소비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입니다. 평생 이 질문을 해왔습니다. 답을 쉽게 찾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창동)
사람을 돈으로 나눌 수 있다면, 예지는 호석, 미옥 부부와는 다른 계층에 속한다. 그러나 예지는 마치 자신이 해고 노동자가 된 것처럼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상우는 이를 '메소드 연기'라 말하지만, 예지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대상을 착취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영화의 재료로 만들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무엇을 전달하려 하느냐, 그 경계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상우가 자본가와 결혼하지만, 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려는 것도 비슷하죠.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도 탐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정말로 사랑하려는 마음. 그 모습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실제 다큐멘터리를 옮겨놓은 듯, 파업하는 회상신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심리 상담 센터에서 털어놓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길게 담았다.
이 감독은 "이 영화는 다큐를 찍는 사람의 시선만 보여주는 게 아니고, 예지가 담으려 하는 내용,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굉장히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실제 다큐처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두 부부의 이야기이면서도, 노동의 문제로 자기 삶이 파괴되고 자기 일을 잃음으로 정체성을 상실한, 마음속에 텅 빈 자아를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이창동)
이창동 감독은 마지막으로 "영화가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기대되면서도 설렌다. 영화를 완성한 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좀 더 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일부 극장에서 공개된다. 11월 6일에는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러닝타임은 164분.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