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소정기자] "연기는 기세입니다."
하윤경은 기세를 아는 배우다. 10년간 묵묵히 쌓아온 내공은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왔다. 대중에게 각인된 '봄날의 햇살'이라는 화사한 프레임을 스스로 깨부쉈다.
tvN '언더커버 미쓰홍'에선 사랑스러운 조력자에 머물지 않았다. 1990년대 세기말, 욕망과 생존 사이를 줄타기하는 '고복희'로 분해 극의 흡입력을 끌어올렸다.
고복희는 얄미운 직장 동료에서 처연한 가정사를 지닌 입체적 인물. 하윤경은 캐릭터의 균열을 섬세하게 메우며 시청자를 설득했다.
"무슨 일을 10년 정도 하면 전문가라고 하는데 저는 여전히 연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어요. 여유가 생겼어요. '전 보다는 잘하겠지' 싶어요. 결국 연기는 기세! 나이 먹으면 기세뿐이에요."
'디스패치'가 하윤경을 만났다. 연신 기세를 외치는 그에게 더 이상 '햇살'의 여린 잔상은 보이지 않았다.

◆ 사회적 가면
'미쓰홍'은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목표치였던 7%를 훌쩍 넘어 막방 때는 12.4%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단톡방은 매일 축제 분위기였다.
"배우들 단톡방에서 오늘 몇 퍼센트 나왔다, 매일 떠들었어요. 시청률 먼저 확인한 배우가 올리는데, 매주 오르니 기분도 좋고 신나더라고요. 지금도 모두 행복에 겨워 있어요."
가장 만족스러운 건, 꽉 막힌 해피엔딩이었다. 고복희는 꿈꾸던 캘리포니아로는 떠나지 못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받고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
하윤경은 "도피할 필요가 없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결말이 복희에게는 가장 만족스러운 마침표가 아닐까"라고 웃었다.
고복희는 모순적인 캐릭터다. 사회생활 만렙의 미소를 짓다가도 돌아서면 침을 뱉는다. 하윤경은 이 '이중성'을 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복희는 버튼을 누르면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친구예요. 살아남기 위해 만든 '사회적 가면'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빠에게 맞던 기억, 버스표 한 장에 절박했던 과거가 있어요. 마냥 밉상으로 보이지 않게, '저 애가 왜 저렇게까지 독해졌을까'하는 애잔함을 한 스푼 넣으려 노력했어요."
디테일한 설정도 직접 제안했다. 특유의 갈매기 눈썹, 짙은 빨간 립스틱, 손짓, 고갯짓 하나까지 '고복희'만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들었다.
하윤경은 "저는 복희가 이 드라마에서 아이콘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대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이니까"라고 말했다.

◆ 여의도 해적단의 '워맨스'
박신혜와의 워맨스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관전포인트였다. 기숙사 301호는 현실에서도 끈끈했다. 현장에서 박신혜는 '엄마', 하윤경은 '아빠' 롤이었다.
"신혜 언니는 따뜻한 엄마, 저는 아이들의 고민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아빠였어요. 기숙사 멤버들과는 정말 가족처럼 지냈어요. 좁고 답답한 세트장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편안한 안식처였어요."
하윤경의 '미쓰홍' 출연 결심은 박신혜에서 비롯됐다. "대본을 받고 살짝 고민했다. 복희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신혜 언니가 홍금보라는 걸 듣고, 배울 게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복희는 세상에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믿었던 아이예요. 그런 복희가 금보를 통해 처음으로 신뢰를 배우죠. '나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 그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신혜 언니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구현된 워맨스는 대만족. "실제로 신혜 언니와 둘이 만든 장면이 많아요. 대본 보다 둘의 관계를 때론 미묘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게 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미쓰홍' 촬영 기간은 6개월. 배우들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선배 박신혜와 고경표의 역할이 컸다. "신혜 언니랑 경표 오빠는 너무 유명하지 않냐. 그런데 너무 소탈하고, 털털해서 동생들이 잘 따랐다"고 극찬했다.

◆ 햇살을 지우다
하윤경은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다작으로 차근차근 필모를 넓혀갔다.
"제가 '우영우'의 최수연을 완벽하게 지워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봄날의 햇살'은 저와 닮은 부분이 많았고 이번에는 그 모습을 덜 보이게는 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칭찬은 그를 설레게 한다. "'하윤경인 줄 몰랐다', '전작의 캐릭터가 생각 안 난다'는 댓글이 참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배우 10년 만에, 살짝 여유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어떻게든 해낼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나이를 먹으며 생기는 여유가 더 좋은 연기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고 자신했다.
차기작은 착착 예정돼 있다. JTBC '신의 구슬', '아파트'다. "다음 작품에서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입체적으로 여러 얼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저는 새로운 모습이 있을 것 같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제 다시 또 열심히 촬영해야죠. 복희랑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