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김은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다. 로맨스, 판타지, 코미디, 액션, 미스터리….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이룰 능력도 있다.
실제로, 그는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이하 '다지니')의 주연 커플로 김우빈과 수지를 낙점했다. 두바이와 한국, 아라비아와 고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애절한 로맨스를 빚어냈다.
병맛 코미디도 넣고, 조연들의 에피소드로는 틈새 재미를 노렸다. 정령과 천사가 맞붙어 싸울 때는, 압도적 스케일의 CG를 선보이며 시청 욕구를 자극했다.
김은숙 작가의 바람대로, 다~ 이루어졌을까?
◆ 지루할지니
안타깝게도, 전반부는 지루했다. 김은숙 작가와 이병헌 감독은,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스토리를 한층 산만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블리스(김우빈 분)와 가영(수지 분)의 일명 '혐관'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가영의 지니 폭행. 웃기기보다 당황스러웠다. 수지가 가녀린 몸으로 (투명) 김우빈을 구타하는 신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이블리스의 허당미, '디즈니'를 이용한 말장난…. 대부분의 콩트들이 시청자를 감정결여 인간으로 만들었다.
로맨스 빌드업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가영과 이블리스 모두 서로의 기억이 없는 상태. 심지어 가영은 사이코패스, 이블리스는 샤이탄(사탄)이다. 이블리스가 세상의 불을 다 끄는 낭만을 펼쳐도, 가영이 키스에 집착해도, 뜬금없게 느껴졌다.
◆ 허술할지니
이블리스와 가영은 다섯 인간의 증명을 두고 맞붙는다. 이블리스는 모든 인간은 타락한다고 주장하고, 가영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둘은 서로의 목숨을 두고 내기를 펼친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설정은, 디테일이 허술했다. 연쇄살인마의 단죄는 지나치게 단순했다. 유기견 뽀삐의 주인 찾기도 진부했다. 신혼부부 유튜버의 갈등도 얼렁뚱땅 마무리됐다.
가영의 사이코패스 설정도 양날의 검이었다. (감정결여) 가영이 이블리스에게 빠지는 순간들이 납득가지 않았다. 할머니와 친구 민지(이주영 분)에 대한 끈끈한 애정도, 흐린 눈으로 이해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수지의 연기도 갈 곳을 잃었다.
◆ 기다릴지니
다행히 이 모든 불만을 참고 기다리면, 환상적인 11회가 펼쳐진다. 천 년 전, 가영은 이블리스가 인정하고 사랑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가영은 이블리스 때문에, 이블리스의 품에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소원의 정령인 이블리스는, 정작 자신의 소원은 이루지 못한다. 인간들에게 "이 여인을 살려달라고 빌어달라"고 외쳤지만, 인간들은 황금만을 빌었다. 이블리스의 피눈물은 황금비와 대조를 이뤄, 황홀하고 처절한 지옥을 만들어냈다.
12회와 13회(최종회) 중반까지도, 눈을 뗄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진다. 정령을 묶는 실을 짜는 불멸자 칼리드, 그리고 그의 흑화는 강렬했다. 이블리스가 샤디의 부탁을 받아 칼리드 영혼의 꽃을 자르는 엔딩도 신비롭고 매력적이었다.
◆ 은숙할지니
사실, '다지니'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이유는 단 하나. 김은숙 작가이기 때문이다. 김은숙이라 기대했고, 김은숙이라 감탄했고, 김은숙이라 실망했다. 혹평 역시, 김은숙이라 (더) 거세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가 아니라면, 그 누가 램프의 정령 지니를 고려로 소환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타락을 이끄는 사탄, 선하고 의로운 인간. 이 두 이질적 존재의 로맨스는 김은숙이라 써낼 수 있는 대서사시였다.
황당한 해피엔딩조차, 김은숙다운 선택이다. '그 분'의 뜻으로, 가영은 정령이 됐다. 가영이 외로울까봐, 이블리스도 부활시켰다. 김은숙은 전작 '더 글로리'를 통해 암시했던 신의 자비를, 내내 의로웠던 가영에게 선물한 셈이다.
<사진출처=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