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연상호 감독이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시계침을 되돌렸다. 발원지로 되돌아간다.
연 감독은 초기 작품으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선보여왔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통해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확고한 주제를 전했다.
이번에 또 한 번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태초의 연니버스를 떠올리는 선명한 주제의식을 예고했다. 초저예산 제작이라는 과감한 시도까지 돋보인다.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새로운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했죠. 안 했던 방식을 과감하게 선택했습니다."
'얼굴'이 그 결과물이다. 장편 영화 1/4 촬영 기간에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인간 내면의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영화 '얼굴' 제작보고회가 2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연상호 감독, 배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등이 참석했다.
'얼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앞을 못 보는 전각 분야 장인과 아들이 40년간 묻혔던 모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연 감독의 만화 '얼굴'(2018)을 실사화했다.
연 감독은 오랫동안 이 작품을 구상해왔다. "앞을 보지 못하는 데, 아름다움과 추함에 관련된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 인물의 아이러니가 재밌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경제 부흥의 시기였던 1970년대, 시대가 허용한 악행과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왜곡된 선입견에 의해 희생된 '정영희'의 얼굴과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연 감독은 "'얼굴'은 만화로 선보였던 작품이다. 이것을 영상화 시키는 것에 대해 늘 생각했다"며 "'얼굴'은 엔딩에 이르러서 주는 특별한 감정 같은 게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쪽 일을 오래 작업하다 보면 그 감정이 너무 귀하다. 저도 이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 감정을 관객과 느껴보고 싶다는 게 컸다"고 기획 의도를 알렸다.
연 감독은 '부산행' 등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파격적인 제작 방식을 택했다. 초창기 작품을 만들 듯, 비용부터 확 줄였다. 과감하게 도전했다.
'얼굴'은 2억 원의 초저예산으로 준비했다. 2주의 프리 프로덕션, 13회차 촬영 만에 상업 영화를 완성했다. 20여 명의 스태프가 전부였다. 박정민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연 감독은 "OTT, 유튜브 등 매체가 많아졌다. 다각화를 이루지 못하면 계속 못 하겠구나를 느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알렸다.
이어 "(초저예산이라서) '후지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작업을 같이 해봤던 분들이다 보니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호흡도 순식간에 맞았다"고 만족했다.
걱정과 달리,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역설적으로 가장 여유롭고 풍요롭게 찍었다.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고, 시간을 쓸 수 있을 만큼 쓰면서 촬영을 했다"고 미소 지었다.
배역도 신경 썼다. 그의 페르소나 배우들이 등장했다. 권해효는 '사이비', '반도', '방법 : 재차의, '기생수 : 더 그레이' 등을 함께했다. 박정민도 '지옥', '염력'에서 호흡을 맞췄다.
연 감독은 "주인공 '임영규'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시각 예술을 한다. 엄청난 것을 극복해낸 캐릭터"라며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 근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권해효와 박정민이 '임영규'의 과거와 현재를 연기했다. 박정민은 배우 인생 최초로 1인 2역에 도전했다. 임영규의 젊은 시절부터, 아들 '임동환' 역할까지 모두 소화했다.
박정민이 직접 1인 2역을 제안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파헤쳐 나간다. '아들' 역이 연기한다면 관객들에게 이상한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권해효와 박정민은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박정민은 "외모가 닮진 않았다. 권해효가 제 모습을 따서 화면에 녹여줬다. 배려에 너무 감사했고, 장인이라고 느꼈다"고 알렸다.
'얼굴'의 주인공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신현빈(정영희 역)은 시종일관 뒷모습만 보인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주연. 모두에게 새로웠다. 연 감독은 메시지에 집중했다.
그는 "정영희는 '불편한 정의'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 불편한 정의를 규정하는가 생각했다. (그래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의 연출을 택했다"고 짚었다.
신현빈의 열연에 감탄했다. "배우에게 얼굴은 여러 가지 감정을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신현빈은 손이나 어깨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연기를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
신현빈은 "대본부터 흥미로웠다. 얼굴로 표현하는 걸 피해야 하는 게 어려웠다. 고민하고 함께 논의했다. 얼굴이 잘 찍혀서 NG가 난 건 처음이었다. 새로웠다"고 회상했다.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연 감독은 '사이비', '지옥'에 이어 3번째다. 그는 "영광스럽고 즐겁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많은 관객들이 봐주면 좋겠다. 함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현빈도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가 있는 영화"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한편 '얼굴'은 오는 9월 11일 개봉한다.
<사진=이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