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혜진·이아진기자] #1. 왕이 있다. 장수가 유능하니 시기를 했다. 그 장수가 직언하니 목을 베었다. 오랑캐가 침입했고, 국민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 내가 아끼던 휴대폰이 있다. 어느 날 (누가) 유심을 바꿔 끼웠다. 그 휴대폰은 더이상 내가 아끼고 사용하던 휴대폰이 아니다.
어도어와 뉴진스의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 3차 변론기일에 등장한 말말말이다. 뉴진스의 대리인 ‘세종’이 재판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꺼낸 비유법이다.
뉴진스 측은 이번 재판 내내 비유법을 쏟아냈다.
방시혁을 왕, 민희진을 장수, 뉴진스를 국민으로 표현했다. '우의법'을 구사했다. 어도어를 휴대폰, 민희진을 유심에 비유했다 '은유법'이다. 유심을 바꿔 끼웠다는 '환유법'도 썼다.
어도어와 뉴진스는 이번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은 30분의 PT 변론에 이어, 최종 변론 5분, 추가 변론 1분을 쓰며 각자의 주장을 이어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1부(정회일 부장판사)에서 열린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 어도어는 어떤 주장을 펼쳤고, 뉴진스는 어떤 비유를 내놨을까.
# "장수를 치니 오랑캐로부터…"
어도어: 어도어 임직원 50여 명은 오로지 뉴진스의 성공을 위해 일해왔다. 데뷔 앨범 제작에만 70억 원을 투입했다. 뮤직비디오 제작에 20억 원을 썼고, 뉴진스만을 위한 팬 플랫폼도 개발했다. 신인에게 전례 없는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하이브도 뉴진스의 홍보를 적극 지원했고, 다른 레이블들도 뉴진스의 홍보를 도왔다. 뉴진스 관련 500건 이상의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홍보했고, 혹시라도 부정적인 기사가 나올 것 같으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뉴진스: '멀티 레이블이 여러 개 있는데 하이브는 왜 유독 어도어를 미워하는 거야?' 그 이유를 설명하면, 방시혁 의장은 BTS를 대성공시켰지만 걸그룹을 성공시킨 예가 없다. 그런데 민희진이 2년 만에 뉴진스로 대박을 터뜨리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경계하게 됐다. 민희진이 하이브에 부당한 밀어내기, 카피 이슈 등을 정면으로 제기하자 바로 감사에 들어갔다.
비유하자면 유능한 장수가 전쟁에서 혁신적인 공을 세웠다. 왕은 좋으면서도, 국민들이 장수를 따르자 부담스러워졌다. 그 장수가 왕에게 직언하니까, '역모를 꾸몄다'며 목을 베어버렸다. 국민들을 생각했으면 그 장수 치면 안 된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그 장수를 치고 나니까 국민들은 외부와 오랑캐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 상황(어도어와 뉴진스)이 딱 그렇다.
# "유심 바꾸면 내 휴대폰이 아냐"
어도어: 뉴진스는 민희진이 어도어의 대표이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전속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표이사를 누구로 할지는 이사회가 정할 사항이다. 연예인이 기획사에 요구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 그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계약을 파기할 사유는 더더욱 아니다.
법원도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대표이사 해임은 민희진이 스스로 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 어디에도 '민희진을 프로듀서로 한다'는 조항은 없다. 민희진은 뉴진스 5명을 선발하는 과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 전속 계약의 전제가 아니며, 법원은 오히려 '하이브가 핵심 전제이고 민희진은 통합 구조를 파괴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뉴진스: 우리가 휴대폰 기계의 유심을 바꿔 끼면 기계는 동일하지만, 유심을 바꿔 낀 휴대폰은 내가 아끼고 사용하던 그 휴대폰이 아니게 된다. 지금 어도어도 마찬가지다. 법인격은 어도어지만, 뉴진스를 지원했던 임직원이 다 퇴사했다.
더 이상 뉴진스가 믿고 의지했던 그 어도어가 아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 (원고 측 주장처럼) 대단한 성과를 내고 지원했고, 배당을 해줬다고 하는데, 그것들은 다 민희진이 대표일 때 했던 것이다. 경영진이 바뀌고 나서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 "학폭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가라?"
뉴진스: 어도어와 하이브로 돌아가라는 말은 마치 학교 폭력 피해자에게 다시 가해자가 있는 학교로 돌아가서 견디라는 이야기와도 같다. 뉴진스와 함께했던 직원들은 하이브와 어도어의 괴롭힘으로 이미 퇴사하고 없다. 지금 어도어는 진정성 있게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괴롭다고 소리쳐 외쳐야 우리 마음을 알아줄까? 지난 1년은 우리에게 정말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우울감에 시달리고, 악몽을 꾸다 일어나는 일이 많은 날들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런 부분을 호소해도 김주영 현 어도어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하는 얘기는 일관된다. '회사 안에서 분란 일으킬 수 없다. 그냥 무조건 돌아와라. 잘해줄게'라는 얘기만 계속했다. (멤버 탄원서 발췌)
어도어 측에서 상호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부부 관계를 보자. 남편과 죽어도 못 살겠고, 남편의 얼굴만 봐도 화가 나고, 살만 닿아도 토할 것 같다는 아내에게 법원이 '남편이 여전히 널 사랑하니까 그냥 살아'라고 할 수 있나?
똑같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금 어도어 사옥 근처만 가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멤버들에게 '어도어가 오라잖아. 돌아가'라고 판결할 수 있는 것인가? 저도 법조인으로서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전속계약은 전인격적인 계약이다. 일반계약과 다르다.
# "가정폭력 아빠가 엄마를 내쫓아"
어도어: (뉴진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도어는 치명적인 손해를 입는다. 유일한 아티스트이자 수익원을 상실하게 되고, 직원들의 고용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서울고등법원도 '전속 계약이 파기되면 투자 성과를 모두 상실하고 브랜드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되며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고 판단했다. 이런 식의 파괴 시도가 용인된다면, 그 누구도 K팝 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뉴진스를 위해서도, 어도어를 위해서도, K팝 산업을 위해서도 전속계약의 유지가 필요하다.
뉴진스: 민희진은 아무런 사유 없이 부당하게 (어도어에서) 쫓겨났다. 민희진은 뉴진스에게 마치 홈스쿨링을 하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즉, 뉴진스를 기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엄마였다. 그런데 따로 떨어져 살던, 가정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가 들어오더니 엄마를 내쫓았다. 그래서 자녀들도 나갔다. 그랬더니 '야. 너희들은 엄마 아빠 싸우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들어와서 공부해'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야. 내가 더 좋은 엄마 붙여줄 테니까 들어와'라고 얘기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이자 희생양은 뉴진스다.
# "민희진은 우리 딜레마지만"
어도어: 이 사건의 피고는 뉴진스지, 민희진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피고 측 변론은 대부분 민희진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뉴진스 멤버들의 입장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뉴진스에 대해서 한 얘기는 '어도어로부터 괴롭힘과 핍박을 당했다. 그래서 어도어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가 유일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적어도 도대체 무슨 괴롭힘과 핍박을 받았다는 건지 설명해야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얘기하는 것은 억지 프레임에 불과하다.
뉴진스: 민희진 대표의 얘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 부분은 우리로서도 사실은 딜레마다. 어도어 측에서 "너희들은 뉴진스 대리인이냐? 민희진 대리인이냐?"라고 공격하는 걸 수없이 당했다. 그래서 가급적 민희진 얘기를 안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뉴진스의 권리, 피해, 감정을 설명하려면 민희진을 빼고 얘기할 수가 없다.
# "대통령이 될거야가 정권 찬탈인가?"
뉴진스: 민희진이 어도어의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듯한 메시지들은 누구나 친한 친구에게 장난처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나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될 거야'라도 했다. 이것을 '와, 정권 찬탈 음모를 꾸몄다'라고 할 수 있나? 사적인 대화에서 무슨 소리를 못할까.
어도어: 말은 그 사람이 어떠한 지위에서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병사가 혁명을 얘기하면 농담일 수 있지만, 장성이 혁명을 얘기하면 반란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표가 하는 얘기는 단순한 사담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사담하는 경우는 없다.
한편 재판부는 다음 달 14일 오후 2시 직접 조정에 나선다. 비공개 기일을 잡았다. 조정안 마련과 함께 양측 소송 당사자 참여를 요구했다. 선고 기일은 오는 10월 30일이다.
<사진출처=디스패치DB, 어도어, 유튜브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