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4년이 걸렸다. 1980년대 아웅산 테러와 이웅평 월남 사건 등을 취재했고, 재해석했고, 엮었다.

그 후 촬영과 편집에 1년 반을 투자했다. 한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5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감독' 이정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제 75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인 뒤, 비행기에서 곧바로 수정에 나섰다.

"칸에서 30% 정도 외국 관객들이 한국 정치를 잘 몰라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국내 30% 정도 관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죠." (이정재)

이정재는 서둘러 노트북을 폈다. 시나리오 파일을 열어 다시 고치기 시작했다. 입모양이 안 보이는 컷을 이용해 대사를 추가로 넣었다.

"역사를 잘 모르는 10~20대 관객들도 최대한 알기 쉽게 수정해야 했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덜어내야 했죠. 칸 때보다 러닝타임도 줄였습니다."

끝이 아니다. 최근 시사회에서 작품을 공개한 후, 또 한 번 작업했다. 사운드, 색감, cg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미스'가 보여서다.

그렇게 이정재 감독의 혼신을 불사른 영화 '헌트'가 탄생했다.

"이제 진짜, 완전히 끝입니다. 이 마무리가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너무 궁금해요. 그래서 시사회 관객들의 평을 계속 읽어보고 있습니다."

'디스패치'가 만난 이정재는, 완벽주의자였다.

◆ "헌트를 만난 건…"

이정재는 약 7년 전 ‘헌트’를 만났다.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땐, 시도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가폰을 잡겠다는 감독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이정재는 “감독님을 찾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영화를 이런 방향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필하기 위해 적던 글이 각본이 됐다”고 밝혔다. 

“제가 생각한 방향을 쓰다 보니 각본이 완성됐고, 그다음엔 수정본이 나왔죠. 그러다 결국 완성본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연기자로서는 7개의 작품을 했고요.”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 포기에 대한 욕구가 강렬히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시나리오 집필 자체가 처음이다. 게다가 스파이물. 치밀하고 쫄깃한 구조가 필요했다. 시대극인 만큼 자료 조사도 탄탄해야 했다. 자료를 고증하는 과정도 오래 걸렸다.

“가장 중점을 둔 건 균형을 잡는 것이었어요. ‘헌트’의 주제는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싸우지 말자’입니다. 한 쪽으로 1이라도 치우친다면, 이 주제는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욕심이 커졌다. 시나리오에서 계속 빈틈이 보였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반전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캐릭터에 대한 완성도 때문에 계속 고쳤어요. 자체 검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제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과정도 굉장히 길었죠.”

그는 "포기하는 상황도 염두에 뒀다. 빨리 (글을) 쓰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면서 "이 과정이 연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수정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 "정우성과 재회는…"

이정재는 각본, 촬영 뿐만 아니라 주인공(박평호)으로도 나선다. 절친 정우성(김정도)과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만난 건,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이다.

그는 “(정)우성 씨와 늘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의 2번째 작품은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중압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영화계 분들도 항상 저희 둘을 놓고 ‘언제 같은 작품에서 보냐’며 기대를 많이 하셨죠. 부담이 컸어요. 섣불리 작품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 이정재는 4년에 한 번 꼴로 (정우성에게) 출연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정우성이 정중히 거절했다. 이정재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는 것.

“우성 씨 입장에선 제 첫 연출작인데다 연기까지 해야 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신경 쓸게 많죠. 거기다 ‘이정재와 정우성의 재회작’이라는 짐까지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정우성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감독 이정재를 지켜봤다. 절친의 치열한 고민과 열정을 알기에,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부터는 시나리오에 적극 의견도 제시했다.

둘의 재회는 어땠을까. 뜨거운 우정 대신 치밀하게 대립했다. 안기부 내 숨어든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했다.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이고, 후반에는 한 차례 변화도 겪는다.

이정재는 “청담부부 이미지와 반전을 주고 싶었다”며 “저희가 초반부터 날을 세우며 강하게 대립하는 게 관객들 입장에선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이정재 = 완벽주의자"

‘헌트’를 시작한 순간부터 단 한 가지도 쉬운 일이 없었다. 첫 연출, 첫 시나리오, 여기에 연기까지….

“역사적인 사실을 넣는 것도 민감했어요. 자칫하면 제 연기 인생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정말 두려웠습니다. 남들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매일 밤잠을 설쳤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결과물을 보여주고 의견을 경청했다. "제가 전체적인 방향을 잡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려 했다"며 "A안과 B안을 만들어 비교하며 함께 장면을 고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정재의 완벽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75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박수 소리보다는 비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해외 관객들이 던진 "어렵다. 로컬 색이 강하다"는 평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미 완성된 영화를, 또 한 번 고쳐야겠다고 결심했다.

“현대사가 들어가니 쉽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한국의 10~20대들도 이해하면서 볼 수 있게 썼는데…. 그래도 외국 관객의 30% 정도가 어렵다는 반응이었죠. 그렇다면 국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또 고쳐야만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바삐 움직였다. 후반 작업을 한 스태프들을 만나 양해를 구했다. 배우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녹음을 추가로 받았다. 그 후 다시 마무리 작업까지 진행했다.

이정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내 시사회에서도 다시 노트를 펴고 수정할 점을 적었다. 사운드, CG, 색감 등 디테일한 부분을 재 작업했다. 그렇게 모든 열정을 쏟아냈다.

소감은 어떨까. 그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이 마무리가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너무 고쳐서) 이젠 아쉬움도 없습니다. 이제, 진짜 완전히 관객 분들을 만날 준비가 끝난 것 같아요."

◆ "아직도,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

'헌트'는 이미 시사회부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웅장한 스케일, 그리고 사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로 심도 있는 주제를 던진다.

이정재는 "저희 나이 배우들이 뭔가를 한다고 했을 때, (관객 분들이) 이렇게 반겨주실 줄 몰랐다. 아직 정우성과 이정재를 기다리신 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 정성,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 더 이상 제 머리에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연기다.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며 "그래도 감독 데뷔작이니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2번째 연출작도 기대할 수 있을까. "한 번 해봤다고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언젠가 다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연출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아직은 연기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것. 그러고 보면, 실은 '헌트' 제작 계기도 연기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 욕심 나는 대본이 있었고, 이를 구현할 감독이 없어 직접 나섰으니까….

"저는 그냥 연기하고 싶습니다. 더 잘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연출보다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연기는 컨디션이나 상황적인 것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아예 결과물이 달라져 버리죠."

이정재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개인적인 고민과 많은 분의 의견을 최대한 합친 결과물"이라며 "여러분이 영화를 보고 어떤 질문을 할까 즐거운 긴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트'는 오는 10일 관객들을 만난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