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의 시간과, 수백억의 돈을 쓰잖아요. 그래서,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아가씨'…박찬욱 감독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필모를 쌓았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새로움, 독창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우면서도)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어야 하죠. 저는 늘 '유니크'를 생각합니다."

박 감독이 찾은 새로움은 의외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잔인하고, 선정적인 내용은 제외했다. 대신 간결하고,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날것의 감정으로 이끈다.

신작 '헤어질 결심'은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변사 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한마디로 순한 맛이다. 관객과 평단 반응은 폭발적이다. 박 감독은 제7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언론의 끊임없는 극찬을 받고 있다.

"박찬욱이 세계 최고 감독인 이유를 '헤어질 결심'의 모든 것에서 볼 수 있다" (美 언론)

'디스패치'가 박찬욱 감독과 최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헤어질 결심'을 함께 회상했다. 그의 고뇌, 영화 철학 등에 대해 들었다.

◆ "거장의 비결"

박찬욱의 영화는 대부분 대담하다. 과장된 감정, 아이러니, 블랙코미디, 표현주의적인 화면 구성, 금기의 위반, 폭력적인 묘사, 죄의식과 인간 본성의 탐구 등으로 유명하다.

늘 대중성보다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연출 비결을 물었다. 박 감독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는 "비결이랄 건 딱히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제 작품은 100억 이상의 큰돈이 든다. 수백 명의 시간을 1~2년 잡아먹으며 만들어진다"고 짚었다.

이어 "제 시간도 2~3년씩 소요된다.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자원이 투여되는 작업이다. 가치를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작품을 연출할 때를 회상했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움, 독창성, 유니크다. 그것을 늘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치우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롭기만 한 것, 남들과 다르기만 한 건 쉽다. 관객 정서를 움직일 수 있고, 논리적으로 납득되는 범위 안에서의 새로움이여야 한다"고 말했다.

"디테일에 모든 게 있습니다. 모든 창조적인 대화, 실질적인 업무에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는 데이터에서 출발해야 하죠."

자신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정서경 작가와 영화에 대해서 대화할 때, '이 영화의 주제는 뭐지?'라기보단 '이 커피잔은 무슨 색이지?'하는 게 괜찮은 시작이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배우들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넥타이를 매는 타입'이라는 식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그런 디테일을 믿어요."

◆ "주제 없는 영화"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새로움, 디테일에 집중했다. 미묘한 연출, 절제로 몰입도를 높였다.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완성했다. 탕웨이가 "왜 이렇게 변했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주장, 정치적 메시지, 영화적 기교 등이 없는 순수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외했다는 것.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 샷 등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로 깊은 감흥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부담은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너무 구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걱정도 됐다. 한편으로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새로워 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자연스레, 전작들과 비교하게 됐다. "'박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많은 작품들의 주제를 사랑으로 두고 만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랑이 배경으로 물러난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헤어질 결심'에선 남녀의 로맨틱한 감정을 숨기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사랑 외 다른 요소들은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알렸다.

여기서 전작과 차별점이 발생했다. "폭력 장면이나 선정적인 묘사를 절제했다. 사랑의 감정에서 파생된 섭섭함이나, 미워하는 마음도 다 제외했다"고 말했다.

이어 "디테일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 배우들의 눈빛 하나까지 뭐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빠뜨리지 않도록 집중했다"고 전했다.

"어떤 주제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게 만들었어요.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느끼는 감정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런 걸 음미해 주셨으면 합니다."

◆ "감독의 결심"

'헤어질 결심'은 칸 상영 직후, 8분간 기립 박수를 받았다. 스크린데일리에선 4.0 만점에 3.2점으로 21편의 경쟁 부문 초대작 중 최고점을 받았다.

"시각적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다. 매혹적이다. 연출에 있어 피상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이 없다. 박찬욱의 연출은 마법에 가깝다." (외신 반응 中)

연출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실제 박 감독은 촬영 기법, 로케이션, 음악, 구도, 캐릭터 설정은 물론, 배우들이 대사에 사용하는 단어 하나까지 신경 썼다.

대표적인 것이 '마침내'. 해준과 서래가 사용하는 단어다. 박 감독이 특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서사를 쌓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알렸다.

그는 "서래는 드라마와 책을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의미는 정확하지만 생경하게 들린다. 흔한 단어임에도 서래를 통해 들으니 운명적으로, 거창하게 들린다. 구식 느낌으로 대비시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로케이션을 가장 신경 썼다. "'아가씨'에서는 거대한 세트 제작에 돈을 많이 썼다. 이 영화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제작비로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이번 영화에서도 '바다'를 택했다. 전작 '박쥐'에선 바다를 배경으로 파국을 그렸다. '헤어질 결심' 속 종착지도 바다. "바다는 영화마다 다 사용되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바다라는 말로 부족하다. 파도의 위력을 사용하고 싶었다. 무너지고 깨지는 걸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여 달라"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실험적인 구도도 서슴지 않았다. "극 중 주관적인 시점이 많이 나온다. 전화기 안에서 인물을 본다든지, 죽은 사람 눈을 본다든지, 비현실적인 시점샷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바닷가와 도로를 담은 부감 구도가 대미를 장식한다. "부감은 '여기서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를 만든 것"이라고 알렸다.

"제목에 대해서도 많이 묻더라고요. 보통 결심을 하면 성공하는 일이 드물어요. 실패로 연결되는 단어로 느껴집니다. '헤어질 결심'도 관객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요. 관객이 능동적으로 고민할 테니 바람직하다고 느꼈습니다."

◆ "여배우 이끄는 선구안"

이영애(친절한 금자씨, 금자 역), 김옥빈(박쥐, 태주 역), 김민희(아가씨, 히데코 역), 김태리(아가씨, 숙희 역), 임수정(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영군 역)…

박찬욱 감독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배우가 가진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고유의 개성을 뽐낸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은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도 그렇다. 귀여운 모습부터, 깊은 감정 연기까지 다양한 매력을 이끌어냈다. 박 감독의 디테일이 이번에도 통했다.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였다.

이 작품은 탕웨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원래 팬이었다. 그를 기용할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원작도 없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라 탕웨이로 정한 뒤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탕웨이를 만났고, 캐스팅을 제안했다. 탕웨이를 일대일로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을 완성하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떠올렸다.

실제 탕웨이의 모습을 각본에 반영했다. "생각보다 장난기도 많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 무표정으로 있을 때는 뭔가 속에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이런 점을 서래에게 녹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해일은 탕웨이와 반대였다. 투명한 사람이다. 눈을 보고 있으면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드러난다.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을 짓지 않아도 (그것이) 보이는 점을 써먹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크게 만족했다.

"대부분 감독들의 평가는 배우를 통해서 받게 되잖아요. 모든 것이 배우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죠. 배우들이 잘 했다는 말은 감독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평단에서) 탕웨이와 박해일을 칭찬하니, 저 역시 뿌듯합니다."

◆ "깐느박, 이젠 할리우드로"

그는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았다. '올드보이', '박쥐'에 이어 3번째 수상. 마치 30주년 축하 선물 같다며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작품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졌다.

"좀 더 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습니다."

물론, 거장에게도 부담은 따른다. "대중의 기대가 때론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배우들만 내세우고 (제)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지만, 이제는 체념했다. 상업 영화감독의 숙명이라는 걸 느꼈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의 목표도 들을 수 있었다. "영화를 잘 만든다면 긴 세월 살아남는다. 10년, 50년, 100년 후에도 볼 수 있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살아남는 보편성을 갖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또 한 번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를 집필 중이다. 지난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부 에피소드 연출도 진행할 계획.

'동조자'는 베트남전 이후 미국에서 이중 첩자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총 7부작으로 제작될 예정.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을 맡았다.

원작 응우옌 작가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제 소설에 큰 영향을 줬다. '동조자' 영상화에 박 감독보다 더 나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인 만큼,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박 감독은 " 여러 가지 생각하고 있다. 그중엔 폭력성이나 노출이 강한 내용도 있다. 영어와 한국어 작품을 번갈 하길 바라는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웃었다. 

"한 영화제작자가 제 영화가 점점 나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참 기쁜 뉴스라고 답했습니다. (수상 이후) 소명 의식이 생긴 만큼 영화를 더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디스패치DB,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