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강수연 선배님은,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분입니다.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연상호 감독)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도 그럴 게, 그는 한국이 배출한 첫 월드스타. 국내 영화·드라마 산업의 귀중한 보물이다. 

그는 네 살 어린 나이로 데뷔, 인생의 90% 이상을 연기에 헌신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기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강수연이 55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너무 이르고 갑작스런 비보. 각계각층 인사들이 애통한 마음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누군가는 '멋진 선배'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등대 같은 분'이라 애도했다. 평소 통 크고 의리 있는 배우로 알려진 만큼, 미담도 쏟아지고 있다.

◆ "한국 영화·드라마는, 강수연과 함께였다"

강수연은 지난 1969년, 4세에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에는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하이틴 스타가 됐다. 그가 고교 시절까지 출연한 작품 갯수만 100여 편에 이른다. 

198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강수연의 시대였다. 특히 지난 1987년부터는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년)로 그해 국내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는 제 26회 대종상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여자 인기상과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연기력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 받았다. 

2년 뒤에는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해왔다. 영화 '씨받이'(감독 임권택, 1989년)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은 것. 동아시아 배우 최초의 수상이다. 이 때부터 '월드스타' 애칭을 얻었다.  

그해, 강수연은 파격 삭발에 도전한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역을 소화한 것. 이 작품으로는 제 16회 모스크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년)와 '경마장 가는 길'(1991년)로도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그대안의 블루'(1992년)로는 일과 결혼을 소재로 페미니즘 코드도 담아냈다. 

브라운관에서도 맹활약했다. 사극 '여인천하'(2001년)에서 주인공 정난정 역을 맡았다.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를 기록하며 대히트했다. 강수연은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강수연은 국내 영화 산업의 발전에도 힘썼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 심사위원과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5~2017년에는 부국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유작은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다. 지난해, 9년 만에 장편 상업영화 복귀 소식을 알려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지난 1월 촬영을 끝마쳤고,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캐릭터도 흥미롭다. '정이'는 K-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강수연은 연구소 팀장 역할로, 전설의 용병 정이(김현주 분)의 뇌복제 실험을 책임진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배우'로 대중과 호흡할 예정이다.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 황정민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명대사. 이는 바로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직접 한 말이다. 류 감독이 이를 기억했다가 영화에 사용한 것. 

고인의 생전 화통하고 의리 있었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고인은 '영화계 안방마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교성이 좋았다. 부고 소식에 미담이 쏟아질 정도다. 

지난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를 촬영하던 시기. 한 단역배우는 강수연(정난정 역)의 가마꾼 역할을 맡았다. 당시 강수연은 (평소대로) 단역배우까지 살뜰히 챙겼다. 

이 단역배우는 고인의 부고 기사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직접 댓글을 달았다. 

"(고인이) 가마꾼들 수고하신다고 흰 봉투에 10만 원씩 넣으셔서 4명에게 직접 주셨던 것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일 끝나고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ID seba****) 

안연홍도 '여인천하'에서 만났던 강수연의 인품을 기억한다. 그는 "저처럼 새카만 후배도 항상 따뜻하게 챙겨 주셨던 언니, 언니와 카메라 앞에서 연기했던 건 언제나 저의 자랑거리 중 제일 첫 번째였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아나운서 윤영미 역시 인스타그램에 단골 가게 주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올렸다. "참 통 크고 훌륭한 배우"라며 고인을 기렸다. 

"그녀가 종종 와 술을 마시던 식당이 장마로 물이 차 보일러가 고장났다. 주인이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강수연이 연유를 묻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비 600만 원을 헌사했다. 듣기론 그녀도 당시 넉넉치 않은 사정에 온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는데…." (윤영미 아나운서) 

임권택 감독도 과거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강수연은) 통이 크고 의리있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강수연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임권택예술대학'에서 특강 강사들 초청을 도맡는다는 것. 

"수연이가 벌써 4학기째 특강 강사들을 다 부른다. 몇백만 원을 줘야 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다 데려온다. 그것도 무료로. 특강료는 대학에 기부한다." (임권택 감독) 

영화 '그 여자, 그 남자'(1993년)의 김의석 감독도 '연합뉴스'를 통해 고인의 미담을 알렸다. "스케일이 큰 여성이었다. 마음씨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겨울 촬영이 끝나면 (강수연이) 스태프에게 장갑을 선물하고 식사비도 해 주셨다. 영화인이라는 직업을 떠나,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든 사람이었다." (김의석 감독)

◆ "등대같았던, 멋진 선배…모든 순간 기억할 것"

지난 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 각계각층 인사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감독, 선후배 배우, 제작사·기획사 관계자 등 조문 행렬이 줄을 지었다.

임 감독은 고인에 대해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때문에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며 "여러 모로 감사한 배우였다"고 말했다. 

SNS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영화감독 겸 배우 양익준은 "누나 같았고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던 분"이라며 "누나라고 한 번 불러봤어야 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정이'의 연상호 감독은 "선배님과 함께 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편히 쉬시라"고 애도했다.  

김규리는 지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을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저도 나중에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에게, 저에겐 등대 같은 분이셨다.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슬퍼했다. 

정보석은 영화 '웨스턴 애비뉴'(1993년)로 강수연과 호흡했다. 그는 SNS에 "우리 영화의 위대한 배우 강수연님이 하늘로 떠났다. 부디 그 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평안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영면을 기원했다. 

이승연은 드라마 '문희'(2007년)에서 강수연을 만났다. 이승연은 고인을 "언제나 당당하고, 언제나 멋지고, 언제나 아름다웠던 전설의 여배우"라고 기억했다. 

문성근은 강수연과 영화 '경마장 가는 길'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함께 청룡영화상 남녀주연상을 수상했었다. 그는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길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넷플릭스는 '정이'의 OTT 플랫폼이다. 공식 입장을 통해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였던 빛나는 배우 강수연 님께서 영면하셨다. 항상 멋진 연기, 좋은 에너지 보여주신 故 강수연 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강수연 님의 모든 순간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한편 강수연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다, 지난 7일 사망했다.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사진=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영화 포스터, SN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