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송수민기자] "이순재 선생님께서 해주신 조언이 기억나요. 배우는 사랑받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죠. 늘 그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정일우)
배우 정일우의 20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지난 2006년 사고뭉치 소년 이윤호 역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데뷔하자마자 인생작을 남겼다.
그로부터 13년, 늘 꽃길만 걷지는 않았다. 흥행의 맛을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때론 인기에 연연하기도 했다. 지난 2년간은 대체복무로 인해 공백기도 가졌다.
그래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대신 초심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이순재의 말처럼 대중의 사랑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이는 정일우를 성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저라는 사람을 봐주신다는 것 자체에 감사합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고민하게 되더군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할 수 있을까…."
'디스패치'가 최근 SBS-TV '해치' 종영 인터뷰를 통해 정일우를 만났다. 연기 인생의 시작점을 물었고, 공백기를 복기했다. '해치'를 촬영하며 배운 점도 들었다.
◆ "20대 인생작은 '하이킥'…대표작 있다는 것에 감사해"
정일우에게 '하이킥'은 남다른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작, 대표작, 인생작이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이 '킥윤호'를 기억하고 있다.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이잖아요. '하이킥'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윤호가 없다면 연기를 시작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사실 (2006년에는) 대중이 왜 나를 좋아해 주는지 몰랐다. 인기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저 불안하고 버거웠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20대에는 변신에 대한 욕구도 컸다. "하이킥과 비슷한 장르가 많이 들어왔었다"며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쉬는 기간이 길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 점차 여유가 생겼다. 조급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버리니, 한층 단단해졌다. 연기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젠 탈피하고 싶지 않아요. 윤호 이미지를 지우거나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어떤 역할을 해도, 그건 제 일부니까요. 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들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죠."
◆ "2년 공백기는, 오히려 터닝 포인트"
그래서 2년의 공백기도, 차분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요양원에서 2년 동안 성실히 복무했다. 수많은 노인들을 만났고,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 시간은, 정일우에게 귀중한 경험이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어르신들과 마주할 일이 많았어요. 대부분 치매 환자분들이었거든요. 그분들을 케어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대보다 한층 여유있어졌다"고 설명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도 깊어졌다. 촬영장이 너무나 그리웠다는 것. "연기를 할 때 살아있고, 행복하고, 뜨겁다고 느낀다. 그래서 복귀가 한층 간절했다"고 전했다.
"20대엔 작품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어떤 역할이든 기회가 있을 때 쉬지 않고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청년 영조와의 만남…역대 가장 치열했다"
그렇게 만난 복귀작이 바로 '해치'다. '해치'의 영조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시련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끝내 왕위에 오르는 청년이다.
정일우의 목표는 단 하나. 인기가 아닌, 연기였다. "군 복무 전보다 성장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거 하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사극 특성상 대사가 어려웠다. 주인공인 만큼 대사의 양도 많았다. 그는 "데뷔 이후 가장 힘들었다. 전쟁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며 웃었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캐릭터 해석, 테크닉, 대사의 높낮이, 말투….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분석해나갔다. 이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특히 표정 연기에 공을 들였다. "시트콤으로 연기를 시작하다 보니 표정이 과할 때가 있다"며 "이번엔 얼굴과 눈을 신경 썼다.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매회 정말 치열하게 촬영했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하고 자책하기도 했고요.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거든요. 저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발악했죠."
◆ "영조는 30대 인생 캐릭터…목표는, 좋은 배우 되기"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흔히 알던 꼬장꼬장한 캐릭터가 아닌, 신선한 영조를 그려냈다는 호평이 많았다. 김이영 작가로부터 "영조가 돼 줘서 고맙다"는 칭찬도 들었다.
정일우는 "그 순간,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내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군 복무 전에는 연기하기에만 바빴던 것 같다. 지금은 심적으로 여유롭다. 그래서 단역, 보조출연자분들 한 분 한 분 챙기며 연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연기도 좀더 깊어졌다. "영조라는 역 자체가 백성을 연민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며 "촬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호흡해 나가면서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성장했다. 그는 "영조는 제 30대 인생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며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고, 얻은 것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일우의 30대는 어떨까. 앞으로도 소처럼 일할 예정이다. 특히 해외 작품들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시아 및 할리우드 대본도 검토 중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
"배우는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직업입니다. 연기도 마찬가지고, 일상적인 모습들도 그렇죠. 그런 모든 면에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