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 칸(프랑스)=김수지기자] 잠깐, 빅토리아 베컴의 한 패션지 인터뷰를 훔쳐보자.
"앞모습이나 뒷모습이 멋지다고 최고의 드레스는 아니죠. 완벽한 레드카펫을 원한다면 모든 앵글에서 훌륭해야 해요."
완벽한 드레스가 후회없는 레드카펫을 만든다. 단순히 디자인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스타일과 트렌드, 그리고 개성이 살아있는 드레스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엣지가 살아난다.
빅토리아의 말은 칸에서도 교과서였다. 제66회 칸국제영화제, 수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지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레드카펫은 아니었다. 드레스 덕분에 스타가 돋보인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드레스 때문에 굴욕을 맛본 스타도 있었다.
누구의 드레스가 그랬을까. 영화제의 꽃인 레드카펫을 분석했다. 이름하며 레드카펫 ABC다. A는 About redcarpet, B는 Brand다. 마지막으로 C는 Cool의 머릿글자. 현지 반응을 쿨과 배드로 정리했다. 여기에 드레스 비하인드 스토리도 곁들였다.
▶ 니콜 키드먼 : 레드카펫 퀸
▶ About : 니콜 키드먼은 까탈스러운 드레스 선택으로 유명하다. 실험보다 안전을 고려한다. 실례로 지난 2개월간, 키드먼은 거의 모든 레드카펫에서 검은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었다. 가죽, 홀터 등으로 기본적인 포인트만 줄 뿐, 파격적인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66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변신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개막작 '위대한 개츠비' 레드카펫과 19일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레드카펫에서 꽃무늬와 나뭇잎 모양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 Brand : 지난 15일, 키드먼이 입은 꽃무늬 드레스는 '크리스챤 디올'의 작품이다. 19일 드레스는 미국 디자이너 르웬 스콧(L'Wren Scott)의 2013년 가을 신상. 키드먼은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때도 스콧의 드레스를 입었다.
▶ Cool? : 작품 선정만큼 드레스를 고르는 안목도 뛰어났다. 프랑스 남부 휴양지인 칸을 고려한 영리한 선택이었다. 특히 나뭇잎 드레스는 '퍼펙트'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다. 뜨거운 칸의 햇살과 불타는 레드카펫, 그리고 독야청청 심사위원이었다. 'So Cool'(소 쿨)이다.
▶ 엠마 왓슨 : Come Back 샤넬
▶ About : 엠마 왓슨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샤넬 마니아다. '샤넬의 뮤즈'라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로 샤넬을 고수했다. 실제로 왓슨은 11살 이후 참석한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샤넬 드레스만 입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샤넬을 벗어 던졌다. 자유로운 영혼에 심취한 듯, 한 동안 프린트가 들어간 집시 드레스만 고집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패션 감각은 점점 산으로 갔다. 웬만한 시상식 워스트 드레서는 왓슨의 독차지였다.
▶ Brand : 왓슨이 돌아왔다. 정확히 말해 샤넬로 컴백했다. 지난 16일 '더 블링 링' 레드카펫. 샤넬 2013 봄여름 꾸띄르 드레스를 입었다. 올해 패션계를 지배한 블랙&화이트 드레스로, 등이 훤히 드러난 백리스 스타일이다. 거기에 과감한 백리스 스타일도 제 것처럼 소화했다.
▶ Cool? :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그 느낌은 각각 달랐다. 압권은 뤼미에르 극장으로 오르는 계단. "룩백"(look back)이라는 소리에 맞춰 뒤로 몸을 비틀 때 이루어졌다. 탄탄한 등근육이 백리스의 매력을 110% 살렸다. 샤넬공주의 귀환이었다. '쿨'했다.
▶ 장쯔이 : 워스트 드레서 굴욕
▶ About :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장쯔이. 수많은 영화제에서 동양적인 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장쯔이의 레드카펫 컨디션은 난조다. 심지어 드레스 아래 망사 레깅스를 입는 등 무리한 시도까지 일삼았다.
칸에서는 달라졌을까. 장쯔이는 지난 15일 경쟁 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개막식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이날은 심지어 드레스도 입지 않았다. 튜브톱에 팬츠만 매치했다. 다음날 레드카펫에서는 환골탈태. 드레스를 입었지만, 반응은 글쎄다.
▶ Brand : 장쯔이가 개막식날 입은 튜브톱과 팬츠는 모두 '크리스챤 디올' 의상이다. 16일에는 '캐롤리나 헤레나'(Carolina Herrera)의 드레스를 입었다. 실버 프린트가 산만하게 들어간 블랙 볼륨 드레스였다. 두 의상 모두 2012년 컬렉션 라인이다.
▶ Cool? : 장쯔이의 레드카펫 온도는 낮았다. 팬츠룩과 드레스를 선보였지만, 그 어떤 의상도 패션 피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디테일과 컬러 선택에서 NG였다. 비오는 칸 만큼 우중충한 드레스 코드였다는 평가다.
▶ 커스틴 던스트 : 패셔니스타의 추락
▶ About : 커스틴 던스트는 2000년 초반을 대표하는 패셔니스타다. 그가 입는 의상, 신는 구두는 모두 유행했다. 한 마디로 할리우드 트렌드 리더였다. 하지만 세월은 그의 패션 감각을 마비시켰다. 최근 포토월 드레스 모두 실패였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 과한 디테일을 선호한 탓이다. 칸에서도 그런 취향은 반복됐다. 지난 19일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레드카펫, 던스트는 블랙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 그것도 벨벳 얼룩 무늬와 해골 레이스가 섞여 있는….
▶ Brand : 던스트의 해골 드레스는 '마이클 반 데르 함'(Michael van der Ham) 2013년 컬렉션 라인이다. 이 브랜드는 패치워크를 주요 아이템으로 사용한다. 호불호가 분명한 드레스. 아직 국내에 런칭되지 않았다.
▶ Cool? : 한 번 나무에서 떨어진 패셔니스타는 좀 처럼 올라오지 못했다. 미국의 유명한 레드카펫 비평가는 "그녀가 잘 못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남자친구 가렛 헤드룬드를 위해 레드카펫에 섰지만, 결국 워스트 드레서라는 꼬리표만 달고 돌아갔다. 쿨? 배드!
▶ 제시카 비엘 : 산으로 가는 센스
▶ About : 패셔니스타의 몰락, 추가다. 제시카 비엘은 보그, 코스모폴리탄, 바자 등 세계 최고 패션지의 단골 모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결혼 이후 달라졌다. 너무 자만한 탓일까. 행사장 마다 독특한 드레스를 입고 나왔지만, 그냥 독특만 했다.
한 번 떨어진 패션 감각은 복구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했다. 비엘은 지난 19일 열린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레드카펫에서 새 깃털 드레스를 선택했다. 여기에 뱀이 꽈리를 튼 모양의 목걸이까지 착용했다.
▶ Brand : 비엘의 깃털 드레스는 '마르케사(Marchesa)'의 것이다. 국내 미런칭된 브랜드다. 드레스 디테일이 다소 생소한 것도 이 때문. 무엇보다 레드카펫보다 할리우드 파파라치 컷에 자주 나오는 브랜드로 알려졌다.
▶ Cool? : 비엘의 시크한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과한 디테일이 맵시를 망쳤다. 같은날 레드카펫에 오른 남편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완벽한 수트핏에 못미쳤다는 평가다. 내조보다 패션 센스 충전이 시급해 보인다. 역시 낫 쿨.
▶ 캐리 멀리건 : 레드카펫 신성
▶ About : 패셔니스타의 몰락 속에도 새싹은 핀다. 바로 캐리 멀리건이다. 멀리건의 평소 패션 스타일은 심플이다. 디테일을 피하고 단조로움을 택한다. 덕분에 멀리건의 패션 평가는 언제 어디서나 무난하다.
칸에서도 마찬가지. 멀리건은 모험을 멀리했다. 지난 19일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레드카펫에선 깔끔한 블랙&화이트 드레스로 시선을 모았다. 화려한 디테일을 배제하고 가슴과 다리 라인에 절개로 포인트만 줬다.
▶ Brand : 멀리건의 드레스는 '비요네'(Vionnet)의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이다. '비요네'는
여성의 곡선을 살린 드레스로 유명하다.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만큼 프랑스 브랜드를 착용하는 센스(?)를 선보였다.
▶ Cool? : 패셔니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이날 밀리건은 니콜 키드먼과 함께 나란히 베스트 드레서로 꼽혔다. 블랙&화이트로 단정한 멋을, 앞트임과 백리스로 섹시한 매력을 동시에 표출했다. 소 쿨!
▶ 판빙빙 : 색깔 잃은 레드카펫
▶ About : 국화, 매화, 용, 난초…. 지난 3년간 판빙빙이 칸 레드카펫에서 선택한 드레스 디테일이다. 오리엔탈 드레스는 어느새 판빙빙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그를 해외에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올해는 어땠을까. 아쉽게도 이번 칸에서는 그런 매력을 볼 수 없었다. 판빙빙은 15일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가슴 라인에 스팽글로 포인트를 준 드레스를 입었다. 한 단계 다운된 핑크 컬러로 빨간색 길과 구분을 준 게 전부였다.
▶ Brand : 판빙빙이 입은 드레스는 '루이비통'이다. 놀라운 것은 오직 판빙빙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콧대높은 루이비통이 아시아 여배우를 위해 맞춤 드레스를 제작한 건, 역대 처음인 것으로 알려진다.
▶ Cool? : 판빙빙의 드레스는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던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과거 뚜렷한 드레스 코드를 과시했다면, 이번 드레스에는 특징이 없었다. 그를 돋보이게하는 강렬한 메이크업도 없었다. 오직 루이비통의 선물이라는 기념만 남기게 됐다.
▶ 장우기 : 짝퉁 송혜교의 반란
▶ About : 칸에서 시선을 받는 방법은 2가지다. 유명하거나, 아니면 노출하거나. 대부분의 레드카펫 입문자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특히 외신의 카메라에서 소외되는 동양 미녀들은 과감한 노출 드레스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장우기의 전략도 마찬가지. 지난 15일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완두콩 색상의 클레비지 드레스를 입었다. 풍만한 가슴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대부분의 외신기자가 셔터를 눌렀고, 또 대부분의 외신기자가 그의 이름을 찾느라 고생했다.
▶ Brand : 장우기의 완두콩 드레스는 러시아 브랜드는 '율리아나 세르젠코'(Ulyana Sergenko)의 것이다. 국내에서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드레스로 유명하다. 깊게 파진 클래비지 스타일이 글래머 스타에게 안성맞춤이다.
▶ Cool? : 이날 장우기는 베스트 드레서에 이름을 올렸다. 우선 보색대비가 훌륭했다. 빨강과 녹색이 완벽히 마주봤다. 과감한 노출도 렌즈를 잡아 당겼다. 판빙빙이 지고 장우기가 뜨는 순간이었다. 현지 기자의 반응도 쿨.
<칸영화제 특별취재팀>
취재=서보현·나지연·김수지기자
사진= 이승훈·김주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