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박혜진기자] “칸을, 태우다” 

2018년 5월 16일까지. ‘버닝’을 태운 건, 영화 밖의 논란이었다.

2018년 5월 17일부터. ‘버닝’을 태운 건, 영화 안의 매력들이다.

“영화가 끝날 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더 이어지길 바랄 정도였다.” (지오바나 풀비-TIFF 프로그래머)

그는 “모든 프레임이 완벽하게 연출됐다”며 극찬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는 표현도 보탰다.

2018년 5월 17일, ‘버닝’은 칸의 주인이었다. 그 뜨거운 순간을, ‘디스패치’도 목격했다.

♦ 레드카펫을, 밟다

애써 웃는 느낌이었다. 미소 자체가 어색했다. 칸에 주눅 든 모습, 아니 압도당한 표정.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칸은 달랐다. 그것이 칸의 권위였다.

유아인이 분위기를 풀었다. 말을 던졌고, 모두 웃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정적. 심지어 ‘단골손님’ 이창동 감독마저 긴장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그들의 시간. 경쟁부문 진출작, ‘버닝’이 소개됐다.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등이 레드카펫에 발을 올렸다.

플래시가 터졌다. 여전히 얼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 유아인은 눈빛만 쐈고, 스티븐 연과 전종서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그래도 배우는 배우였다. 서서히 여유를 되찾았다. 유아인은 특유의 장난기로 ‘레이디 퍼스트’를 했다. 전종서는 뒤로 돌아 하트를 날렸다.

그들은 칸의 감격을 온몸으로 느꼈다. 뤼미에르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유아인은 두 손으로 눈을 닦기도 했다.

♦ 뤼미에르를, 밝히다

칸영화제, 기립박수, 우스갯소리.

“한국영화 ‘클레XXX’이 끝나도 기립박수를 칠 것이다” (어느 네티즌)

칸영화제의 기립박수는, 예의다. 칸이 선택한 작품에 대한 예우다. 예술의 열정을 향한 격려다. 즉, 박수의 크기나 시간은 수상의 바로미터가 아니다.

한국은 습관적으로 시간을 잰다. ‘버닝의 기립박수는 5 9. 하지만 진짜 주목할 것은, 박수가 끝난 다음의 연소 시간이다.

버닝은 공식 스크리닝 이후, 본격적으로 불타고 있다. 현재(17일 기준) 공개된 경쟁작 16편 중에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美 영화잡지아이온시네마에 따르면, ‘버닝의 평점은 3.9. 칸의 화제작 ‘콜드워‘(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이미지북‘ (장 뤽 고다르)보다 높은 점수다.

(물론, ‘버닝의 경우 20명의 자체 심사위원 중에 8명만 별점을 메겼다. 아직 표본이 적다. , 숫자로 예단하긴 이르다.)

비평가의 입도 타오르고 있다. 美 영화지 ‘스크린’은 “그 어떤 스릴러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스릴러다. 이 타오르는 듯한 영화 속 이야기는 계속 봐도 만족스러울 것”이라 극찬했다.

“절묘한 스토리텔링.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영화다. 주인공들은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리포트)

“이창동 감독이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영화로 돌아왔다.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더랩)

“이창동 감독과 일본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의 ‘외로움’과 ‘갈망’에 대한 집착. 두 사람의 조화는, 당연하게 조화롭다.” (인디와이어)

칸을, 태우다

버닝이 불타는 이유, 영화가 현실의 거울이라는 것. 칸이 이창동의 귀환을 반기는 것도, 영화가 현실이고 현실이 영화인 그의 신념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의 미장센은 완벽하다. 배우가 뛰어놀 수 있게 멍석을 까는 게 아니다. 배우가 느낄 수 있도록 분명한 환경을 구축한다.  

순수한 미장센으로 영화의 역할을 다했다. 영화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하다.” (티에리 프리모)

프리모 위원장이 말한, ‘순수한 미장센이 바로 그것. 이 감독은 종수와 해미, 벤을 진짜(같은) 공간에 세웠고, 진짜(같은) 연기를 이끌어냈다

(실제로 이창동 감독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장면을 위해 겨울이 오길 기다렸다.)

이창동 감독은 가장 인간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배우는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중에서도 유아인의 연기는 발군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종수. 그 자체였다.

미쉘 생 장이 극찬한살아있는 연기의 출발점은, 단연 유아인이다. 그의 연기에는목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 가공하지 않았다.

유아인 측은디스패치진짜(환경)를 만들어 그 안에 배우를 세운다. 배우가 가공하면 모든 게 가짜가 됐다.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그냥 느꼈다고 말했다.

‘버닝’의 초반은 일상적이다.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그러다, 소용돌이가 친다. 그리고 퍼즐이다. 무의미한 일상은, 곧 유의미한 은유가 된다.

티에리 프리모의 표현처럼, 영화는 시적이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의문이 애를 태운다. 그래서 관객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버닝’이 칸을 태우는 이유가 아닐까.

취재=칸(프랑스)ㅣ임근호·박혜진기자

사진=칸(프랑스)ㅣ이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