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나지연·김수지기자] 마치 '소격동'의 그 밤 처럼,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의 밤이 시작됐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고, 마침내 5년 전 그 날처럼, 폭발적인 함성이 흘러나왔다.
서태지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 이날 서태지는 2만여 명의 팬들과 '크리스말로윈'을 맞이했다.
그야말로, '사운드 샤워'(Sound shower)였다. 팬들은 세계적인 음향 디자이너 '폴 바우만'이 제작한 'JBL VTX' 최첨단 스피커로, 음악에 대한 갈증을 씻어냈다. 설치된 스피커만 130대. 공연 내내 강력한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도 역대급이었다. '크리스말로윈' 콘셉트를 적극 반영했다. 전면에 할로윈의 심볼인 '잭 오 랜턴' 구조물을 세웠다. 공중에서 호박 마차가 떠다니기도 했다. 팬들은 코스튬 의상을 입고, 우리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관객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 이른 아침부터 공연장에 모여 들었다. 9집 신곡이 소개될 땐, 잠시 야광봉을 내려두고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했다. 또 공전의 히트곡이 나오면 90년대로 돌아가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디스패치'가 '크리스말로윈'의 인상적이었던 무대 '10'을 꼽았다.
① ChristMalo.win :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 타이틀곡이다. 장르는? 팬들은 '일렉트로트하우스록' 혹은' 일렉트로트하우스팝'로 규정했다. 일렉트로닉에 하우스 트랩, 덥스텝 등을 조합한 것. 가사에는, 물론 시대상이 은유적으로 담겨있다.
☞Taiji는= 무려 5년 만에 선보이는 신보 타이틀곡. 서태지는 '긴장해 다들'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강렬한 록사운드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산타가 되었어'라는 가사에는 샤우팅으로 무대를 달궜다. 또 '요람부터 무덤까지' 가사에서는 쫄깃한 랩도 선보였다.
☞현장은= 서태지의 주특기가 또 다시 발휘됐다. 마이너한 장르를 대중화 시켰다. 적어도 이날 콘서트에 있는 2만여 명의 관객들은 '크리스말로윈'을 200% 즐겼다. 팬들은 막힘없이 '크말'을 떼창했다. 서태지의 샤우팅이 나올 때, 그보다 더 큰 함성을 보냈다.
② 소격동(With 아이유) : '콰이어트 나이트' 콜라보레이션 수록곡이다. 아이유, 서태지 버전이 각각 발표됐다. 짜임새 있는 일렉트로닉 소스에 트랩 사운드를 가미했다. 아이유가 부르면 소격동의 추억이, 서태지가 부르면 어두운 시대가 살아난다.
☞Taiji는= 서태지+아이유.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무대이기도 하다. 아이유는 1절을 차분하게 소화했지만, 라이브가 떨렸다. 음이 불안했다. 초대형 무대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서태지 역시 아이유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지 못했다.
☞현장은= 그럼에도 반응은 뜨거웠다. 아이유가 등장하자, 남성 팬들이 돌고래 함성을 질렀다. 서태지가 나올 때는 여성팬이 격하게 반응했다. 팬들은 야광봉을 좌우로 흔들면서 '소격동'을 따라 불렀다. 전광판에 나오는 소격동 뮤직비디오에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③ 90's 아이콘 : 오는 20일 공개 예정인 '콰이어트 나이트'의 수록곡이다. 서태지 버전과 콜라보레이션 버전으로 각각 발표된다. 콜라보레이션 버전에는 가수 신해철, 김종서, 이승환 등 서태지 절친들이 피처링에 나섰다. 90년대 아이콘들이 90년대를 노래한 곡이다.
☞Taiji는= 노래에 앞서 서태지는 90년대를 회상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말했다. 팬들 앞에서 처음으로 약해진 모습도 보였다. "한물간, 별거 없는 가수가 들려드린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서태지는 '나이가 들수록 늘어가는 변명들' 등의 가사를 감미롭게 불렀다.
☞현장은= '90's 아이콘'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곡. 팬들은 잠시 야광봉을 내린 뒤, 서태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광판에는 90년대 흑백 풍경이 흘러나왔다. 서태지의 노래에 맞춰 모두 한없이 열정적이었던 90년대를 회상하는 듯했다.
④ 모아이(MOAI) : 지난 2009년 발표한 정규 8집 '서태지 에잇스 아토모스' 수록곡이다. 장르는 '네이쳐 파운드'. 일렉트로니카, 테크노 등 장르를 쪼개 만든 서태지표 실험 뮤직이다. 가사에는 7대 불가사의 모아이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Taiji는= '크리스말로윈'의 오프닝 곡이었다. 지난 2009년 '뫼비우스' 투어 당시에는 현란한 록 사운드로 노래했다. 이날 '모아이'는 잔잔한 피아노 연주에 맞췄다. 서태지는 완급조절을 통해 발라드에 가까운 '모아이'를 선보였다.
☞현장은= 서태지가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이라며 입을 뗄 때, 폭발적인 함성이 터졌다. 서태지가 재해석한 '모아이'에 빠져드는 모습. 특히 후렴구 '내게 주고 싶은 걸' 부분에서는 박수와 환호, 떼창이 동시에 나왔다.
⑤ 시대유감 : 1995년 발매한 정규 4집 수록곡으로, 얼터너티브락 장르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등의 가사로 세태를 꼬집었다. 발표 당시 '공륜'(영상물등급위원회)심의에 걸려 가사 전체가 삭제되기도 했다.
☞Taiji는= 서태지가 본격적으로 몸을 푼 무대다. "달려보자"며 돌출 무대로 나간 것. 이 때 피아노와 기타의 현란한 사운드 배틀이 돋보였다. 서태지는 19년 전으로 돌아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현장은= '시대유감'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팬들은 릴레이 점프를 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고개를 흔들었다. 세월만 흘렀을 뿐, 모두의 열정은 19년 전 그대로였다. 서태지의 말, 노래 한 마디에 격하게 반응했다.
⑥ 너에게 & 널지우려해 : 먼저 '너에게'는 1993년 발표된 서태지와아이들 2집 '서태지 앤드 보이즈2' 수록곡이다. '널지우려해'는 1994년 공개된 3집 '발해를 꿈꾸며'에 담겨있다. 두 곡 모두 서태지 대표 러브송이다.
☞Taiji는= 몸이 풀렸을까. 서태지는 "옛날 무드로 돌아가자"라고 말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이야기도 꺼냈다. "여러분 꼬꼬마 시절 이야기다"라며 오리지널 버전으로 열창했다. '널지우려해'에선 눈시울이 붉어진 서태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현장은= 이날 관객은 10대부터 50대 팬들까지 다양했다. 특히 '너에게' 무대에서는 남녀노소의 입이 하나가 됐다. 가장 큰 떼창이 터졌다. 특히 서태지가 '난 이런 꿈을 꾸기도 했어'라고 나지막이 말하자, 팬들은 한 톤 높은 함성을 쏟아냈다.
⑦ 컴백홈 : 1995년 선보인 4집 '컴백홈'의 동명 타이틀곡이다. 당시 파격적인 갱스터랩으로 화제를 모은 노래다. 가사에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불후의 명곡 중 하나다.
☞Taiji는= 힙합퍼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 스윙스, 바스코와 함께 섰다. 서태지는 강렬한 기타 사운드에 맞춰 '컴백홈'을 선사했다. 무려 19년 전 노래지만, 변한 건 시간 뿐. 서태지의 랩은 녹슬지 않았다. 여기에 스윙스와 바스코의 랩도 무대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현장은= 분위기가 절정으로 이르렀다. 관객들은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라는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팬들이 서태지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같았다. 또 스윙스와 바스코가 나올 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⑧ 교실이데아 : 3집 '발해를 꿈꾸며' 타이틀곡이다.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 서태지는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머릿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 넣고 있어' 등의 가사로 청소년을 계도했고, 기득권을 비판했다.
☞Taiji는= 서태지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17번째 곡 '교실이데아'를 소화했다. 오히려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팬들의 폭풍 함성을 이끌었다. 무대 중간 서태지는 스윙스, 바스코와 빨간색 깃발을 흔드는 퍼포먼스도 선사했다.
☞현장은= 서태지만큼 팬들도 노련했다. 록 사운드가 흐를 땐 헤드뱅잉을 했고, 힙합이 나올 땐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특히 후렴구 부분에서는 온 몸으로 리듬을 탔다. 해외 유명 록페스티벌에 온 느낌?
⑨ 하여가 : 서태지의 천재성을 알린 곡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서태지 앤드 보이즈2' 타이틀곡이다. 서태지는 댄스 가수 최초로 민요를 결합해 듣도 보도 못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간주 부분에는 태평소 연주를 삽입하기도 했다.
☞Taiji는= 공연 마지막 곡이었다. 그리고 서태지 입에서 터진 한 마디. "졸빡"(졸라 빡세다)이었다. 오랜만에 만든 신조 비속어(?)다. 그럴만도 했다. 서태지는 무려 18개 곡을 연달아 불렀다. 엔딩인 만큼 록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줬다. 노래 중간 강렬한 샤우팅을 하기도 했다.
☞현장은= 무대에서 "예에예예예 야야야야야"가 전주가 흘러나오자 광란의 도가니가 됐다. 팬들은 두 손을 들고 점프를 했다. 그리고 한 치의 오차 없이 '하여가'를 따라 불렀다. 서태지가 샤우팅을 하면,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마지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⑩ 테이크 5(앵콜) : 서태지 음악적 재능을 담은 노래다. 1998년 발매된 5집 '서태지5'에 수록된 곡이다. 그는 '테이크' 시리즈를 통해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의 악기를 직접 연주했다. 이날은 '앵콜송'으로 불렀다.
☞Taiji는= 서태지는 끝까지 팬들과의 교감에 신경썼다. 무대 좌우, 돌출 구역 등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끝까지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너를 만난건 행운이었어'라는 가사로 아쉬운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현장은= 팬들의 기습 이벤트가 펼쳐졌다. 직접 접은 노란색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사실 '테이크 5' 무대에서 자주 했던 이벤트다. 하지만, 이날의 감동은 남달랐다. 서태지에게도, 팬들에게도 힘들었던 5년,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의미였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