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치치지마 섬을 알고 계시나요? 일본 본토에서 100km 남쪽에 위치한 중부 태평양에 있는 섬인데요. 언뜻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곳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곳입니다.

시기는 2차 세계 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군대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식량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죠.

때문에 몇몇 부대에서는 식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소련군은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식량이 부족해 길가에 있던 시체를 먹기도 했고요. 독일군도 스탈린그라드에 갇혀 보급로가 끊기자 주변의 시신을 식량으로 삼으며 버텼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더욱 각박했는데요.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보급로가 끊기기 일쑤였습니다. 정상적인 식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날이 잦았죠.

때문에 일본군은 다른 군에 비해 인육을 먹는 경우가 특히 많았습니다. 심지어 뉴기니전선 육군 18군사령부에서는 병사들에게 아예 인육과 관련된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내용이네요.

이처럼 인육은 반드시 살기 위해서만 먹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 알려드릴 '치치지마 사건'은 다른 식인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먼저 치치지마섬은 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쓰였는데요. 이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습니다. 당시 다치바나 요시오 장군이 이끄는 보병대대와 해병대는 5개나 됐고요. 총 병력만 약 1만 5,000명에 달했죠.

때문에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은 일본군의 보급로와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선 이곳을 가장 먼저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 타겟 중 하나는 치치지마 섬이었죠. 미군은 1945년 2월 공군을 동원에 치치지마 섬에 폭격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비행기는 일본군의 대공포에 정통으로 맞아 추락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미군 몇몇은 구조되지만, 8명의 공군은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달 뒤 이오지마 일본군이 전멸하자, 치치지마 섬에 있던 다치바나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하게 되는데요. 그는 최고사령관이 되자마자 부하들에게 끔찍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포로로 잡혀있던 미군들을 때려 죽여서 인육으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육은 식량이 없을 때만 먹는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치치지마 섬은 본진보다 식량이 훨씬 좋았습니다. 기본적인 쌀 보급량은 모든 군인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었죠. 그럼에도 다치바나 장군은 식인을 명령한 것입니다.

당시 다치바나 수하였던 마토바 스에오가는 재판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치바나 장군은 연회 중 고기가 부족해 미군을 죽였다고 증언했는데요.

그는 "당시 가토 다케무네 대좌가 우리를 위해 연회를 베푼다고 했다. 그런데 술과 안주가 충분하지 않자 장군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미군 처형과 함께 인육을 얻을 수 없겠냐'고 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결국 인육과 술 한되를 준비했다. 인육은 가토대좌의 방에서 요리됐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먹어야 했다. 물론 맛있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죠.

다치바나 장군은 당시 인육사건을 이유로 군의 사기진작을 위한 영웅주의나, 포로를 학대하는 일본군 특유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고지휘관이 직접 포로를 학대해 고문하고 인육을 먹은 사건은 일본군 전체에서도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죠.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은 다치바나 장군을 포함한 추종자 4명을 생포해 전쟁범죄 및 살인혐의로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들은 사형전날까지 두들겨 맞아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추가로 2명의 범죄자가 더 드러나게 됐는데요. 이들 역시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나카지마 노보루는 죽기 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포로가 되면 역적으로 취급하는 일본의 풍토가 결국 외국인 포로에 대한 잔학행위로 발전한 것이다. 포로학대는 일본민족 전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개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잘못 아니냐? 나는 국가를 증오하며 죽어간다."

한편, 당시 치치지마 섬에서 살아남았던 미군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치치지마 앞바다에 있다가 미군 가토급 잠수함에게 구조됐다고 하는데요.그는 출혈과 구토 증세로 정신을 잃어가며 죽기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조지 부시.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이자 걸프전을 주도한 인물이죠. 만약 그가 해군 잠수함에게 구조받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부시는 전쟁 당시 이런 경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증오가 꽤 컸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중한 전우들이 모두 일본군에게 잡아먹혔으니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그는 일본의 제 124대 덴노이자 세계 2차 대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히로 히토가 죽고 나서야 일본 정부에게 "이제야 일본을 용서해 줄 마음이 생겼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건 또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치치지마 인육사건의 주요인물인 다치바나 장군의 영령을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를 하고 있죠. 정말 섬뜩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