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한 시간,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런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어요. 늘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1998년 10월27일 오후 1시께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집주인 A(당시 34세·여)씨가 괴한에게 결박된 채 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려 살해됐다.

당시 경찰은 즉각 수사본부를 꾸려 전방위 수사에 나섰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범인으로 지목된 오모(44)씨가 검거된 것은 사건 당시에서 18년이 지난 이달 18일이다.

18년 미제사건을 해결한 것은 당시 수사본부에 '막내' 격으로 참여했다가 지금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근무하는 김응희(53) 경위의 집념과 의지 덕분이었다.

김 경위는 23일 종로구 광역수사대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한순간도 잊지 않고 범인을 끝까지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며 "범인을 잡는 꿈을 몇 번이나 꿀 정도로 검거 생각만 해왔다"고 말했다.

김 경위를 이 사건에 몰두하게 한 것은 범행 현장에서 본 피해자의 초등학생 딸 모습이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당시 11살이던 피해자의 딸이 울고 있었다. 피해자의 딸이 어머니가 사망한 모습을 보고 이웃에게 구조요청을 했던 것"이라며 "그걸 보고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경찰은 당시 범인의 체액을 확보하고 은행 현금인출기에 찍힌 사진도 찾아냈다. 체액에서 범인의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나 유전자(DNA)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되기 전이었고 현금인출기에 찍힌 사진은 흑백인 데다 흐릿했다. 엘리베이터나 거리에 폐쇄회로(CC)TV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김 경위도 약 6개월간 수사본부를 지킨 이후 다른 경찰서로 옮겨 근무해야 했다. 이후 여러 경찰서를 거친 김 경위는 최근 광역범죄수사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재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사건이 미제사건 중에서도 DNA 등 증거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DNA 대조를 통해 범인을 밝혀낼 수 있는 사건인 셈이기 때문이다.

김 경위를 비롯한 수사팀은 사건 당시 범인이 20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유사수법 전과자들을 추렸고, 다시 이들의 얼굴을 현금인출기 사진과 대조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바로 사건 당시 26세였던 오모(44)씨다.

수사팀은 오씨 주거지인 경기 양주에서 오씨가 버린 물품을 주웠다. 여기서 채취한 DNA를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체액 DNA와 대조해 달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요청했다.

결과는 '일치'. 팀원들과 함께 쾌재를 불렀다.

오씨는 검거된 뒤 경찰에서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오씨를 기소의견으로 최근 검찰에 넘겼다.

사건이 해결된 뒤 김 경위는 조용히 A씨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는 알고 있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18년 동안 전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번호였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고맙다, 고생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는 "이 사건은 혼자 해결한 것이 아니라 팀원 전체의 노고로 해결한 것인데 최근 칭찬이 너무 과분하다"며 "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형사"라고 말했다.

체대에 다니면서 아마추어 권투를 했다는 그는 "형사가 체질에 맞아 23년간 계속 같은 직군에 있다"며 "앞으로도 증거가 남은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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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년 만에 노원구 주부 살인사건 범인을 잡은 김응희 경위, 18년 전 용의자 수배 사진>